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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Sep 08. 2024

무화과 주막

4. 토문재, 소소한 이야기 - 9월 6일

 토문재 입주 닷새째이다. 방파제로 아침 산책 나간다. 마을 옥수수 밭 정리된 밭두렁에 엉덩이 하늘로 치켜들고 무엇인가를 심고 있는 호미처럼 굽은 허리 둘. 그 뒤를 이어서 무릎은 황토 땅에 부딪히며 바스락거리는데 엉금엉금 기어가며 마늘쪽 심는다. 바튼 숨결소리에 길 멈추고 바라보다 한쪽 끝이 아려오는 억척같이 살다 간 엄마를 본다. 나의 학창 시절에 본 엄마 모습이 꼭 저랬다.     

    

 이 넓은 땅 새벽부터 시작해도 끝이 없는 밭일. 무릎이 다 닳아 두 번의 인공관절 수술 그러나 쉴 수 없는, 아니 땅을 놀릴 수 없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자식들은 자꾸 쉬라고 하는데 일이 뼈에 박혀 일하지 않으면 더 아프다고 한다. 이게 시골 사는 농부의 일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며 나팔꽃 같이 웃는 모습에서 그윽함과 환함이 교차한다.  


 “여그는 마늘 심고, 쩌그는 양파 심고 이 짝은 배추 심을 거여.”

 “이 밭 말고 다른 곳에 밭이 또 있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아침을 연다.

 “땅 부자로 시골 갑부시네요.”

 “땅 부자? 갑부? 뭔 소리여! 땅이 많으면 할 일 많아지니 일부자이지라우 일 갑부 랑께.”     


 밭을 놀릴 수 없으니 농사짓다 세상 뜨는 게 시골의 삶이라 한다. 잡풀처럼 구멍 송송 난 고구마순잎은 약을 치지 않아 지랄 맞게 생겼지만 해풍으로 고구마는 맛이 있다고 하며 다른 밭에는 애플고구마를 심었다고 한다. 애플 고구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애플 고구마에서는 세 가지의 맛이 난다고 한다. 단맛도 나고 짠맛도 나고 자식들이 먹어 보았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맛은 기억이 안 나 잘 모르겠다고 하니 나는 그 맛이 궁금하여졌다.      



 활짝 문 열린 창고 안에서 어망 손질하는 소란스러움을 지난다. 초록의 고춧대 사이 붉어진 고추 따면서 모기떼와 맞짱 뜨고 있는 고추밭주인의 혼자 넘는 시간은 바깥을 닫아건 고요와 고추를 들여다보는 침묵의 시간이다. 해뜨기 전 폭염을 피해 새벽부터 하루를 여는 사람들 곁으로 들어가다 보면 왠지 그들에게 나의 어슬렁거림이 미안해지기도 한다.         


 난초 실 앞의 아침은 이불 널어놓기 좋은 햇볕이다. 한 여름날의 열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뜨겁고 덥다, 답답함을 가장하고 북 카페로 나와 노닐다 해가 남쪽으로 이동하면 난초 실 앞은 그늘지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의 뼈를 붙잡아 놓고 싶지만 바람은 살을 찾아 자꾸 멀어져 간다. 그럴 땐 후덥지근한 열기가 툇마루를 덮쳐오지만 파랑의 바다가 토닥거려 준다.    

  

 툇마루에 앉아 고재종 시집 『독각』를 읽는다. ‘불교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성문과는 달리 자신의 노력만으로 깨달음을 얻은 자. 독각은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남을 깨닫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므로 완전한 부처와는 구별된다.’고 백과사전은 독각을 설명한다.  

   

 시인은 ‘폭우에 생채로 찢긴 석류가지들 중 남은 가지에 터진 석류 속 맑고 붉은 보석들이 독각의 사리’라 표현한 시어가 눈으로 읽는다와 마음으로 본다는 것, 눈으로 본다는 것과 마음으로 읽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툇마루 끝에 목줄 단 풍산개 재돌이가 나와 눈 마주칠 때마다 함께 놀자고 자꾸 짖어대며 고요를 깬다. ‘재돌이’는 토문재의 ‘재’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진돗개 ‘토순이’는 작년에 새끼 낳다 죽었다고 한다. 인송정 아래 ‘문돌이’는 촌장님 바라기다. 촌장님이 나타나면 어쩔 줄 모르는 재돌이의 춤사위는 보는 즐거움을 준다.

      

 


 오전의 시간을 끌어 모아 툇마루에서 놀다 노역을 마친 해가 약주 한잔 걸친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처럼 발그레 녹슬어가는 시간쯤 카페에서 아이스커피 두 잔 사들고 ‘해남농산’ 간다. 어제 부탁해 놓은 ‘참치’ 가지러 왔다.      


 ‘무화과 주막’ 나는 이곳을 이렇게 부른다. 본업인 고구마와 무화과 판매보다 주변 공장 사장들의 사랑방이자 주막의 주모 같다. 어제와 똑 같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소주잔이 오가고 안주로 차려진 전복과 갓 잡아 삶은 문어에 잔을 건 낸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는 자꾸 권하는 전복과 문어에 거절하지 못하고 기름장에 초고추장에 내 입안은 버무려지고 있다.     

  

 함께 어울린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혼자 넘는 시간을 살아온 나는 이곳에서 많이 유연해지고 있다. 김 공장 옆 집 젊은 아이 엄마의 구수한 남도 창 한가락 뽑고 간다. 트로트 가수 아들의 노래를 들려주는 사장의 자랑과 오전에 잡아 온 참치 회 먹고 가라고 한다. 술도 회도 먹지 못하는 나는 참치 값 20,000원을 지불하고 붙잡음을 뒤로한 채, 돌아서는데 사장의 정성이 담긴 시골집 된장 준다. 돈으로 지불할 수 없는 사장의 마음을 또 그렇게 받고 말았다.

      

 오전에 조업하여 싱싱한 참치는 간장 세 스푼과 고춧가루 한 스푼 만으로도 맛이 있다. 재료가 좋아 싱싱한 본연의 맛은 설명이 안 된다. 사장의 시골 된장 또한 설명되지 않는 맛이다. 이곳만의 정서가 깃든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내 마음을 울린다.     



 금요일 저녁은 입주 선생님들과 만남의 시간이다. 눈썹달 마중 나갔다 돌아오니 막걸리 파티가 시작되었다. 조금 전에 사 온 참치 호박 졸임 한 접시 막걸리 안주로 드밀고 나는 선생님들의 시간에서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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