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나는 말보다는 글로 더 자세하게 표현하는 사람이다.
말도 못 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의 말하기가 최적화된 상황은 남에게 뭔가 물어보거나,
불합리를 따지는 상황이다.
전화가 편한 사람이 있고, 문자가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글로 쓰는 게 더 정제된 표현이다.
가끔은 이렇게 말과 글 사이의 나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하고 싶은 대로 습관대로 말하다가 글에서는 따뜻한 사람인척(물론 내 안에 따뜻한 면이 있지만) 다정함을 담아 쓰다 보면 나중에 나는 글에서는 보기 좋게 포장된 사람인가? 생각할 때가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도 모르게 이게 내가 맞나? 날 아는 사람 누군가는
' 다르다 생각하겠지?'라는 자기 검열을 할 때가 있다.
오랜 시간 편하게 써온 블로그와 달리,
브런치에서는 글하나하나를 공들여 쓴다.
하나에 많게는 두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그만큼 신중하게 쓰고, 다듬고, 고민하고, 애쓴다.
그런데, 말은 일단 그렇게 신중하게 하지 못한다.
일단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끝이니까 말이다.
입이 무거워야 되는 걸 알면서도 순간의 다짐이 무섭게,
금세 나불거리는 가벼운 입이 아쉬울 때가 많다.
가끔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랑 대화를 할 때,
'이 사람들은 지금의 내 모습만 보고 ,
내 글을 보면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생각이 들면 살짝 제동이 걸리기도 하지만,
곧 이내 괜찮아진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 안에 한 가지 모습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안에는 천의 얼굴, 만 가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모순이라는 것도 누구나 그런 지점 하나쯤은 갖고 살지 않을까?
나를 밀도 있게 아는 사람이라면,
내 글의 무게만큼 말이 못 따라오더라도, 현재의 모습과 함께
내가 추구하는 방향은 이해하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을 알아주고 응원할 것이다.
반대로, 나를 가볍게 아는 사람이라면
말과 글이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판단받는 것에 대해 예전보다는 덜 신경 쓰기로 했다.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나 역시 누군가를 내가 느낀 만큼만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도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내 안의 시선에 비친 일부를 보고 있는 것뿐이다.
말도, 글도 마찬가지다.
그건 그저 지나가는 순간의 한 장면, 일부일 뿐이다.
그러니까 덜 두려워도 된다고 생각했다.
나를 완전히 아는 사람은 결국 나뿐이고,
어쩌면 나조차도 나를 다 알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래도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면 괜찮다.
그 변화가 1년 뒤 10년 뒤 완성될지 모르니까 말이다.
이렇게 약간은 가벼운 말과 신중한 글 사이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리고 이 간극을 인정하는 지금의 내가, 예전보다 조금 더 솔직해졌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