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편에 펼쳐진 길이 2m가량의 상자면 위에 앉았다. 포스터물감 뚜껑을 열었다. 한 손에 든 물감 나이프로 초록, 파랑, 노랑, 주황, 자주, 남색을 즉흥적으로 떠서 펼침면 위에 덩어리째 덜어놨다. 나이프를 내려놓고 너비 10cm쯤 되는 크고 납작한 붓을 쥐었다. 떠놓은 색을 여러 비율로 섞어 가며 크리스마스트리를 그렸다. 상자가 곧 팔레트이자 캔버스였다. 망쳐도 누가 뭐라 할 일 없는 택배 상자라 마음이 편했다.
경계가 불분명한 삼각형에 가까운 나무를 칠했다. 나무가 평면이기 때문에 오너먼트(크리스마스트리 장식)는 나무의 양옆 실루엣에 메달 생각이었다. 가위질로 나무의 형태를 분명하게 해 주면 되었다. 나무의 좌우 테두리가 스탠딩 옷걸이처럼 울룩불룩 튀어나온 선을 유지하면서 꼭대기로 향하는 폭이 점차 좁아지게 잘랐다. 똑같은 형태의 나무를 한 장 더 그려서 두 장의 나무를 완성했다.
그려진 나무의 세로 중심선을 따라, 한 그루는 위에서 중앙으로, 다른 한 그루는 아래에서 중앙에 이르게 일자로 칼집을 냈다. 나무 두 그루가 십자로 맞물리게 끼워서 세웠다.
엄마 뭐 해?
기억 나무를 만들어.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물었다. 사실 아이에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든다고 말했지만, 그 속에는 아이와 나의 기억에 남을 만한 시간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오래전 한 뉴스에 사람이 나이들 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를 연구한 결과가 보도된 적이 있다. 결론은 다소 웃프게도 노화로 인한 기억력 감퇴로 세세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기억에 남지 않는 시간을 보내면 기억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의미를 두고 싶지 않은 상황과 반대되는 의미 있는 기억을 남긴다면, 훗날 기억에 남은 데로 회상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은 기억에 각인된 데로 기억한다. 상황을 무던히 겪어 내기 위해 때로는 의도적으로 기억을 조작할 필요가 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 당신과의 시간을 돌이켜 글로 쓴 적이 있다. 그때 내가 주로 적은 것은 아버지에게 들은 진심 어린 말과 감싸 안아주듯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었다. 나뭇가지에서 덜 떨어진 낙엽도 일부러 흔들어서 떨어뜨릴 것 같은 상황에 처한 내가 이 시간을 나와 아이의 기억에 어떻게 남기고 싶은지 생각했다. 아버지와의 시간 속에서 건져낸 기억들의 속성을 짚어 봤다. 언젠가 내 아이도 자신의 엄마와 보낸 시간을 돌아보며 건져낼 기억을 찾을 거다. 그때 찾아낸 모습에 엄마도 참, 하면서 피식 웃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내게 해줬던 말 중 좋아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는 왜 이렇게 예뻐', '나는 엄마지기'만큼이나 감동적인 말이다.
엄마는 왜 이렇게 엉뚱해?
아이가 캄캄한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그까짓 것 엉뚱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힘을 갖길 바란다. 그 힘을 엄마인 나도 많이 키웠으면 한다.
곧 7살을 앞둔 아이에게 나와 같이 트리를 만들자고 손 내밀었다. 아이가 붓을 건네받았다. 초록 트리 위에 제 맘대로 빨간 물감을 주욱 짜서 칠 해댔다. 순간 깜짝 놀란 내 오른팔이 무의식적으로 뻗어 나갔다. 붓을 든 아이의 손을 말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무는 초록색이잖... 하다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아이가 칠한 빨간색이 이상하게도 나무와 잘 어울렸다. 초록 침엽수에 달린 빨간 열매처럼 말이다. 맘에 들었다. 수년을 묵혀둔 내 손에서 나온 것보다 훨씬 나았다. 자유롭고 본능적인 에너지가 시선을 끌었다. 사실이 초록이라면 기억은 빨강으로 칠하는 게 나을 때도 있다.
페인팅된 나무 표면 위에 특별한 장식을 더했다. 아이의 백일잔치 때 집안에 포토존을 만든 적이 있다. 그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오려둔 펄 부직포 장식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걸 꺼내서 트리 장식에 활용했다. 트리 장식의 대미는 핑크 펄지로 만든 고깔을 맨 위에 얹는 것이었다. 아이의 백일 때부터 생일마다 씌운 탄생 축하 모자다. 한국식 백일잔치와 펄 핑크 고깔은 생뚱맞다고 여길 지 모르겠다. 나는 아이의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 산후조리가 끝나지 않은 몸으로 핑크 펄지를 자르고 있던 여자다. 그 고깔을 크리스마스트리 맨 위에 얹고 나니 비로소 세상에 둘도 없는 너와 나만의 트리가 됐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나무이자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나무 같았다. 아이와의 시간을 새긴 상징적인 나무이자 택배 상자 세계의 문을 열어준 나무가 되기도 했다.
트리를 만들기 위해 맞잡은 우리의 손이 일 년 가까운 오늘까지 따로 떨어지지 않았다. 매달 한 작품씩 고심해서 완성하는 엄마표 미술 놀이로 이어졌다. 하지만 엄마표 아이 미술 놀이인지, 엄마표 내 미술 놀이인지 분간할 순 없다. 왜 컬러링북이 여러 해 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영혼 없는 무아경에 가까운 막무가내 붓질이 주는 희열은 택배 상자 미술 놀이의 하이라이트였다. 명치끝 체기가 가시고 잡념이 저절로 걷혔다. 그렇다고 우리의 결과물이 결코 영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룡도 홀릴 만큼 깨발랄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