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의 사태로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샤워하는 게 괴로운 날이 지금은 가끔이지만
만에 하나 폐가 더 망가지면 그 괴로운 날이 매일이 될 것 같았다.
내 몸도 못 씻는 날이 많아지면 다시 우울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겨우 하루 4시간 하는 일이지만 그걸 그만두자니 앞으로는 뭘 하나 고민이 생겼다.
“나 뭐하지?”
질문하자마자 요요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림 그려 여보!”
결혼 전부터 주야장천 해오던 말.
나는 재능이 없다는 걸 잘 안다.
미대에 다니면서 하나 배운 게 내가 얼마나 재능이 없는지였으니까.
그림도 못 그리지만 이야기하는 건 더 자신 없었다.
나는 어디서나 듣는 사람이었고 내가 입을 열면 분위기가 싸해지기 일쑤였으니까.
그래도 이젠 그려야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건
뭐라도 그리지 않으면 요요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5년이나 얘기를 했는데 이 정도면 뭐라도 그리는 게 예의 아닌가.
아무튼 나는 재능이 없고 요요는 재능이 있다고 하니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