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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Jun 02. 2020

02. 출근 버스는 노동자를 싣고

출근 풍경

아침 6시.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알람을 끈다. 그리고 잠시 이불 위에 앉아서 한숨을 쉰다. 오늘은 물류창고에 가는 날이다. 잠시 가지 말까 고민도 해본다. 그냥 다시 누워서 자면 된다.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내 결근율이 늘어난다. 그건 다음에 문자로 일용직 근무를 지원할 때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는 소리다. 그럴 수는 없다. 더욱이 이번 달 용돈 계획에도 맞지 않는다. 쉴 수는 없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본다. 화장실에 가서 간단히 세면한 다음,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다. 사실 물류창고에서 입지 말라고 하는 옷은 있어도 무언가를 입고 오라고 구체적으로 정해준 적은 없다. 그래서 물류창고 알바 초기에는 꽤나 캐주얼하게 입고 간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잘 입던 옷이 금방 더러워지자, 점퍼와 츄리닝 차림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결국 창고에 갈 때마다 그런 옷차림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작업복으로 불렀다. 꽤나 멋없어 보이지만, 물건을 들고 날라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편한 복장도 없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니 6시 20분이 되었다. 집을 나서는 시간은 6시 30분. 10분이나 남았다. 망설임 없이 의자에 앉아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청한다. 평소에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내게 너무 고역이었다. 수 없이 이 시간대에 일어나야지 다짐하고도 못 지켰을 때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돈을 벌러 갈 때는 눈이 번쩍 떠져 늦잠 때문에 물류창고 알바에 늦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건 긴장 때문이지 피로가 말끔히 풀려서는 아니었다. 일어나서 찬물로 세수해도 이렇게 꾸벅꾸벅 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6시 30분. 느리게 의자에서 일어나고 현관문을 나선다. 가족들은 아직 다 자고 있다. 평일이었으면 하나 둘 일어났을 테지만, 오늘은 주말. 잠시 부러움을 느끼지만 평일에 내가 다소 늦게 일어나는 편이니, 역할 교대라고 생각하게 된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다. 처음에는 그것이 너무 번거로워서 시내버스를 통해 모란역으로 향해서 그곳에서 출근 버스를 탔다. 하지만 곧 불어나는 교통요금을 보고 집에서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출근 버스 정류장으로 바꾸었다. 돈도 아끼고, 아침 운동도 한다 생각하면서 열심히 걷는다. 성남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여러 개의 언덕을 건너야 한다. 성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언덕은 익숙해질 만하면서도 그렇지 않다. 출근하는 오늘도 언덕 중턱에서 잠시 멈춰 헉헉 거린다.


물류창고 통근 버스가 멈추어 서는 곳에 도착했다. 아직 버스가 오려면 10분 정도 남았다. 나는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승차권 어플을 켜서 내일 승차권을 신청한다. 버스에 타면 승차권을 스캔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버스 맨 앞에서 번호를 따로 입력해야 하는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미리 방지하려면, 부지런하게 출근할 때부터 내일 승차권을 신청하는 게 좋다.


버스가 오기 3분 전. 이때부터는 바짝 긴장해야 한다. 여러 대의 버스가 뒤섞이거나 등산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에 막혀 출근 버스가 온 것을 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에 특히 그런 위험성이 높다. 쉬는 사람들이 산으로 향하기 때문에 평일보다 관광버스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오늘은 관광버스가 많지 않다. 코로나 19 확산에도 꽤나 자주 있던 등산객들이 오늘은 없다. 덕분에 출근 버스가 오자마자 바로 탑승할 수 있게 되었다. 운이 좋은 날이다.


승차권 어플을 켜고 버스 운전석 옆에 붙어있는 태블릿 pc에 스캔한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버스 좌석 배치도에 자신이 앉을자리에 이름과 전화번호 뒤 4자를 적는다. 이건 코로나 19가 확산되기 시작할 때부터 하던 조치다. 아무래도 나중에 혹여나 발생할 확진자의 동선을 용이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귀찮은 일인가 하고 투덜대던 노동자들도 이제는 지시를 곧잘 따른다. 그만큼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매섭기 때문이다.


나는 뒷좌석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안전벨트를 매고 곧 잠에 빠져든다. 잠을 보충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버스에 타는 노동자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하거나. 나는 주로 전자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전 근무 도중 너무 피곤해져서 심신이 약해진다. 물류창고를 장기적으로 하는 나에게 있어 신체는 중요한 재산이다. 최대한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야 한다.


버스는 힘차게 달린다. 피곤에 절어있는 사람들을 태우고 힘차게 달린다. 외관만 보면 영락없는 관광버스다. 물류창고 버스라는 간판만 없었으면 놀러 간다고 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말 고속도로를 등산객들 소유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주말임에도 노동자들의 소유다. 그들은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떠나 주말에도 일하러 간다. 그래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 고속도로의 주인인 것이다.


아침 8시 20분. 나는 눈을 뜬다. 그 순간 출근 버스는 여주 톨게이트를 지나간다. 그 풍경을 볼 때마다 나는 사람의 본능에 대해 놀라게 된다.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매번 항상 이 시간에 깨는 걸까? 이 살덩이가 자연스럽게 ‘이제 일하러 가야 한다’고 학습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분명 아침 7시에 버스를 타서, 8시 20분에 자동으로 일어난다. 무엇이 되었든 덕분에 일어나지 못한다는 스트레스는 겪지 않게 되었다.


출근 버스는 천천히 물류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창문을 통해 뒤를 보니 여러 대의 버스들이 따라온다. ‘원주’, ‘용인’, ‘노원’, ‘충주’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버스들이 모두 같은 창고를 향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잠시 보다가,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곧이어 출퇴근 시간을 기록하는 어플을 작동시킨다. 이 어플은 매우 중요하다. 해당 어플을 통해 근무 시간이 기록되고 익일 급여를 지급하는데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근로계약서도 이 어플을 통해 작성해야 한다. 처음에 물류창고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수기로 일일이 모든 근로계약서에 서명해야 했지만, 이제는 어플을 통해 한 번에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출근할 때마다 기계적으로 하는 행동이지만, 나의 친구들은 아르바이트할 때 근로계약서를 거의 써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쓰더라도 그 내용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니 이 물류창고에서 쓰는 근로계약서가 처음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스스로 서명한 첫 번째 근로계약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여기서 처음으로 근로계약서를 썼다.


버스가 정차한다. 나는 재빠르게 내린다. 성남 노선은 사람이 많이 타지 않기 때문에, 맨 뒤에 타고 있더라도 금방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내려도 창고로 들어가기 위한 줄은 너무나 길다. 여러 대의 버스가 한 번에 정차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나는 하품을 하며 줄을 선다. 뒤이어 또 다른 지역에서 온 버스의 문이 열리고 줄은 더 길어진다. 벌써부터 질리는 기분이 든다.


원래 줄은 이렇게 길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만 그 부근에 모여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나도 평소에는 망설이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가 출근 등록을 해왔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확산하자 물류창고의 입구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열화상 카메라를 통과하고 손소독제를 발라야 했다. 최근에는 이 물류창고에서도 확진자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런 조치는 더 강화되었다. 그래서 나는 경비 노동자가 발열 체크하는 것을 기다려야만 했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경비 노동자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열이 일정 이상 넘어가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급도 받지 못하고 바로 집으로 가는 건 너무 처량한 일이었다. 아픈 기운을 가지고 다시 먼 길을 달려 집으로 혼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보다 쓸쓸한 일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다행히도 그런 상황을 마주하지 않게 되었다. 한 번도 열이 높다는 이유로 귀가 조치를 당한 적은 없지만, 발열 체크는 늘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이렇게 관문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관문이 남아있다. 이제 출근 등록을 해야 한다. 이는 2단계로 나누어진다.


우선 지하 1층의 교육장에서 수기 출근 서명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라 정신 차리고 해야 한다. 나는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아 서명하고 내일 출근 가능 여부에 동그라미 표시를 한다. 이렇게 해야 내일 출근자 명단에 등록이 된다. 그리고 들고 온 가방을 사물함에 담고 자물쇠로 잠근다. 빈 사물함을 찾는 사이에 사람이 더 붐볐다. 처음 등록하는 노동자들이 유난히 많은 날이다. 이들은 출퇴근 어플 사용법부터 시작해서 출근 등록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주변을 서성인다.


신규 노동자들을 뒤로하고 2층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2일 이상 근무한 일용직 노동자들과 계약직 노동자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줄이 길게 늘여져 있다. 나는 직감적으로 ‘관리자가 아직 오지 않았네’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자신이 일했던 파트를 말하고 원바코드를 찍어야 하는데, 관리자가 늦으면 바코드를 찍지 못한 사람들의 행렬이 길어진다.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노동자들과 동일한 출근 버스를 타고 오기 때문에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긴 줄을 서다 보면 지루함이 커져서 버스에서 잠으로 풀었던 피곤함이 다시 돌아오기 쉽다.


관리자가 ‘아이고 많이 서 있네’하면서 허겁지겁 사무실로 들어간다. 곧 줄이 빠르게 줄어든다. 나도 내가 일한 파트를 말하면서 내 원바코드를 내민다. ‘삑’. 그리고 끝. 다른 사람을 위해 얼른 비켜선다. 그리고 사무실에 비어 있는 의자 하나에 앉는다. 원래는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의자 간격이 띄어져 듬성듬성 있다. 관리자가 사람들에게 ‘줄 좀 간격 있게 서 주세요’, ‘간격을 두고 앉으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이 오고 가다 보니 잘 지켜지지 않는다.


나는 그 풍경을 보다 벽에 기댄다. 벽에 붙어 있는 의자를 나는 참 좋아했다. 기대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비록 10분 정도 뒤에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향해야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면 이제 4시간 동안 다시 앉을 일이 특별히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되도록이면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이렇게 멍하게 벽에 기대어 출근 등록을 하는 다른 노동자들을 지켜보다 눈을 시계로 돌린다.


오전 8시 45분.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일하러 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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