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아니 최고임금이 오던 날에
1월 1일, 새해. 물류창고에 나온 일용직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인사한다. 물론 처음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다. 하지만 그 이후는 다르다.
“무사히 출근하셨군요.”
“그러게.”
일용직 노동자들은 서로의 살아남았음을 짧게 축하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몸값이 올랐다는 사실을 비로소 기뻐하기 시작한다. 그렇다. 1월 1일은 새로운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되고 나서 그것이 인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최저임금은 그 폭이 어떻든 항상 증가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매년 1월 1일이 되면 임금이 인상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오른다고 좋은 일은 아니었다. 최근 최저임금은 가파르게 인상되어 2020년 8,590원을 달성했다. 비록 정부가 약속했던 최저임금 1만 원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달성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이전의 인상 정도를 생각해보면 최근 최저임금 인상은 경이로울 정도로 높았다. 이렇게 높아진 최저임금은 나와 같이 그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삶의 질을 조금씩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최저임금이 올라갈수록 나는 학교에서 1천 원 더 비싼 학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친구와 좀 더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었고, 교재를 구매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확실히 더 많은 임금은 노동자의 삶을 작게나마 바꾸게 된다. 비록 최저임금을 최고 임금으로 받는 노동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인상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늘어난 인건비 때문에 기업에서 사람을 줄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알바를 시작하기 전에는 신문에서 기업들이 그런 소리를 하면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실제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협박도 이런 무서운 협박이 없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보니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이제 ‘얼마나 내 삶이 윤택해지는가’보다 ‘내 자리를 무사히 보전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실제로 2019년 1월 1일 이후에 나는 그런 두려움을 갖고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2018년 12월 31일에 출근해서 내일 나온다고 명부에 동그라미를 치고 1월 1일에 나와버리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은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동료 노동자는 ‘그래도 설마 이렇게 상문이처럼 자주 나오는 애를 티오 없다고 자르지는 않을 거다.’라고 말하고는 했지만 출근 확정 문자가 올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속에 신정을 보낸 뒤 나는 원래 내 일정대로 물류창고에 가기 위해 문자를 넣었다. 평소와 같이 오전 9시 1분이었다. 빠르면 오후 1시, 늦어도 오후 3시 안으로는 출근 확정 문자가 도착할 것이다. 만일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준다면 말이다. 불안함을 잊어보고자 코미디 영화를 보기도 하고, 문명과 같은 게임을 실행해보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오직 ‘출근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다른 알바를 구하면 되는 거 아니야?”
어느 지인이 이런 불안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1월 초반이었다. 다른 곳도 최저임금이 인상되었다고, 사람을 뽑지 않았고 설사 뽑더라도 내 조건에 맞지 않는 곳이 많았다.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었고, 지원한다고 해도 알바에 뽑힐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문자를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결국 오후 1시가 되었는데 문자는 도착하지 않았다.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스트레스 때문인지 속이 좋지 않아서 조금 먹다 말았다.
오후 2시가 되었다. 역시 문자는 도착하지 않았다. 불안감은 더 커진다. 잠깐 고민하다 ‘근무 확정 언제 되나요’라고 문자를 넣어본다. 그리고 또다시 기다림의 시간. 나는 초조하게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방 안에서는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들린다. 때마침 집에 아무도 없어서 적막함은 더 커져 갔다. 책을 몇 페이지 넘기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휴대폰을 확인해 본다. 아무 문자도 오지 않았다. 오후 2시 15분이었다.
“그래 보낸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중얼거리면서 다시 책을 읽는다. 서너 줄을 집중해서 읽어본다. 그러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다시 손은 휴대폰으로 향한다. 방금 휴대폰을 확인한 지 3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문자는 오지 않았다. 나는 짧게 신음 소리를 내며 다시 ‘근무 확정 언제 되나요’를 보낸다. 그리고서 휴대폰을 책상 위에 올려 둔다. 머리가 어질 해지는 기분이 든다. 잠시 거실로 나가 정수기에서 찬물을 따른다.
거실 한 구석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세상이 참 무섭다는 것이었다. 글로 배웠던 세상과 노동은 명확했다. 헌법에는 노동삼권이 있다. 최저임금제를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이런 내용들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상식으로 배웠다. 그래서 동생이 알바를 간다고 했을 때 ‘근로계약서를 꼭 서야 한다.’와 같은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그런 것들이 제대로 적용되더라도 나의 신분이 이렇게 불안정하면 어떨까?
하지만 이 불안정함을 없앤다고 최저임금을 없애거나 인하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최저임금이 내려갔다고 하더라도 1월 초반에 항상 불안했을 것 같다. 임금이 인상되어서 사람을 더 안 뽑다는 기사는 봤어도, 인하나 동결되어서 대규모의 채용이 이루어졌다는 기사는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저임금이 없어진 이후에 내가 좀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별로 없었다.
결국 나는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했다. 아니, 사실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머리가 더 아파와서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서 휴대폰을 확인해 봤는데 여전히 문자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최저임금이든 뭐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 감정은 너무 지쳤고, 휴식이 필요했다.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버렸다.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평소에 꾸지 않던 꿈도 꾸었다. 나는 토론회의 사회자였다. 사람들은 최저임금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상문 씨의 삶의 질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내 불안정한 지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내가 되묻자, 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내게 말했다.
“그럼 최저임금을 인하하거나 없애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 삶은 윤택해질까요?”
역시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꿈은 그렇게 끝났다. 일어나니 벌써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지 배가 몹시 고팠다. 라면이라도 끓어볼까 생각하던 찰나에, 책상 위에 올려진 휴대전화에 눈길이 갔다. 잠시 잊고 있었던 불안함이 올라왔다. 나는 조심히 엎어져 있던 휴대폰을 다시 뒤집었다. ‘내일 출근 확정되셨습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었다.
2019년 1월 초, 나는 이런 고민들을 안고서 고통스러워했다. 2020년 1월 초에도 그랬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물류창고 일용직으로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무사한 일이다. 이런 갈등은 2021년에도 2022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 누가 최저임금에 대해 좋은 말을 하든, 나쁜 말을 하던 간에 내 신분이 불안정한 이상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1월 1일. 최저임금 아니 최고임금이 오던 날 이후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