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희나 - 연이와 버들 도령]을 읽고
옛날 옛날에
연이라는 어린 여자애가 있었대.
나이 든 여인과 같이 살았는데 연이에게 일을 아주 많이 시켰어.
추운 겨울날이었어.
갑자기 나이 든 여인이 상추를 뜯어 오라고 했어.
추운 날씨에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하고 걸어 다녔더니,
연이는 그야말로 쓰러질 지경이었지.
그런데 마침 커다란 나무 밑에 작은 굴이 있는 거야.
좁은 길 끝에는 작은 돌문이 있었어.
연이는 마지막 남은 힘을 그러모아 돌문을 밀었어.
세상에,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분명 바깥은 한겨울인데, 동굴 안은
따스한 봄날이었어.
저쪽 작은 집에서 이쁘게 생긴 도령이
하나 걸어 나왔어.
도령은 연이에게 무슨 일로 이 찾기 힘든 곳까지
왔냐고 물었어.
연이는 상추를 구하러 나왔다가 길을 잃었다고
대답했지.
도령은 상추 걱정은 말고 일단 쉬라고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뜨끈한 국과 함께 상을 차려 내왔어.
연이가 밥을 다 먹자,
도령은 뒷마당으로 연이를 데려갔어.
도령은 버들잎을 한 줌 따서
빈 밭에 뿌렸어.
눈 깜짝할 사이에 자라나 푸릇푸릇한 상추밭이 되었지.
도령은 연이에게 상추를 한 바구니 따 주며
마다에서 살살이, 피살이, 숨살이라는 이름의 귀한
꽃을 꺾어 주었어.
"다음번에는 힘들게 돌문을 열지 말고
이렇게 말하세요.
버들 도령, 버들 도령, 연이 나 왔다. 문 열어라.
그러면 내가 문을 열어 줄게요."
연이가 상추를 한 바구니 가져오니, 나이 든 여인은
놀라 자빠졌지.
그래서 다음 날
화전을 부쳐 먹고 싶으니, 진달래꽃을 따 오라고
또 심부름을 시켰지.
연이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오히려 들뜬 표정으로 바구니를 메고 집을 나섰어.
진달래꽃을 한 아름 받아 든 연이도 버들 도령도
꿈에도 몰랐어.
나이 든 여인이 몰래 숨어,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는 줄 말야.
연이가 집으로 돌아와 화전을 부치고 있을 때
나이 든 여인은 나무 밑 작은 굴을 찾아가 주문을
외우니 문이 열렸어.
"니가 감히 우리 연이를 꾀어내!"
그러고는 불을 질렀어.
다음 날, 나이 든 여인은 연이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는데
연이는 버들 도령을 만나러 몰래 밖으로 나왔지.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돌문이 활짝 열려 있고
작은 집도, 버들 도령도 시커멓게 타 버린
재와 뼈만 남아 있었지.
연이는 목 놓아 우는 대신
버들 도령의 뼈를 하나하나 소중히 주워 모았어.
연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리 슬프지 않았어.
연이에겐 그동안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거든.
그래서 이런 기막힌 일이 닥쳤어도
그래, 그러려니 싶은 거야.
그저 가엾은 버들 도령 곁에
연이가 받은 꽃들을 놓았지.
살살이 꽃은 앙상한 뼈 위에 뽀얀 살을 붙여 주었고
피살이 꽃은 온몸에 발그레한 피를 돌게 했고
숨살이 꽃은 도령이 쌕쌕 숨을 쉬게 했어.
비로소 연이는 울음을 터트렸어.
되살아난 버들 도령이 연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어.
두 사람은 꽃가루가 무지개가 되어
하늘까지 이어지자 타고 올라갔어.
나이 든 여인은 어찌 되었을까요?
뻔한 결말일지 모르겠지만 그림만큼은 꼭 눈으로 직접 보셨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어요. 미처 글로 전달되지 못한 감정이 그림에 담기며 아이 못지않게 어른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어느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백희나 작가님의 그림을 좋아해요.
뭉특한 듯 실사에 가까운 표정 묘사가 그림이 더 친근감 있게 생생하게 전달되기도 하고 때론 절절하게 들려오는 이야기도, 웃음이 가득 담긴 이야기도 정말 동화책 내용처럼 꼭 이루어질 것만 같은 꿈을 꾸게 만들거든요.
[구름빵]이 그랬어요.
제가 더 좋아해서 아이들에게 수없이 읽어주다 너덜너덜해진 책이 되었고
[장수탕 선녀님]은 아이들 초등학교 때 책 읽어주는 학부모로 2년간 참여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실감 나게 읽는다고 아이들이 막 웃고 손뼉 쳐주던 때가 생각나는 추억이 있는 동화책이고요.
여러분도 오늘은 잠시 어려운 책 내려놓고 어린 날의 나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늘도 함께 쉬어가요.
<책 내용은 일부만 소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