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온 보관으로 변질되었을 위험이 있습니다
Caution! 이과 접근을 금합니다.
1. 추운 건 싫지만.
나는 맨날 춥다. 아침, 저녁, 여름, 겨울, 실내, 실외. 언제 어디서든 춥다. 한 줌의 한기에도 몸을 떠는 체질이기에, 늘 따뜻한 곳을 그리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온, 고온의 불안성에 취약하다. 민감하게 다루지 않으면 상하거나, 발효되거나, 데일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변화는 단순히 잃어버리거나 없어진 것과는 좀 다른 타격이 있다. 차라리 얼려버리는 건 오래가는 데 말이다.
2. 따뜻한 게 마냥 좋지만도.
은근 예민한 종류의 사람이라, 또라이의 기습을 제일 싫어한다. 그래서 사람을 가린다. 무방비 상태에서 은근한 자기 과시와 무례한 판단, 계산적인 속내를 보면 타격이 오래간다. 좋은 사람은 쭉 좋아하고, 안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은 최대한 피해다닌다.
그럼에도 중간에 변질된 것까진 어쩔 도리가 없다. 슬픔과 당황속에 왜 저럴까를 탐색했을 때. 그도 인생의 피해자라 그런 것이라면 대충 이해해보려 하지만. 욕심과 자만에 의해 거라면 성급히 손절 각을 세운다. 상온에 있다 맛탱이가 가버린 건 돌아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관 내 장기 근속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낯선 인류다. 윗 사람-아랫 사람을 대할 때의 태도 차이, 업무를 입으로만 하거나 태만하게 하는 모습, 자기 방어와 약한 멘탈... 그래도 오래 다닌 직원중에 유일하게 '괜찮은 편'이라고 말해온 사람이 있었다.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하며 가치가 좀 더 귀해지려던 차였는데. 실망은 한 순간이다.
3. 마음과 영혼에 잠입한 부패균.
인간은 복잡하다. 물질로만 구성된 존재가 아니기에,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에 눈빛, 표정 근육, 아우라 같은 것들이 눈에 띄게 변질되면 비물질 세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심란하다.
인간을 변질되게 만드는 위험한 따뜻함은 무엇일까. 짐작한 이론이 여럿 있긴 하지만 섣불리 판단하긴 어렵다. 돌변한 인간에게 당한 피해자들의 모임에서 숱하게 토론해 보았지만 뾰족한 답을 찾은 적이 없다. 케이스도 너무 다양하다.
하지만 방지하는 법에 대해선 대강 알 것 같다. 따뜻한 자리가 당연하게 나의 권리가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뭐가 됐든 언제나 중요한 건 '자기 정체감' 관리. 노동자의 권리, 인간의 존엄성 같은 기본 권리 외에 내가 응당 누려야 할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 그 보상심리가 자기 정체감으로 탈바꿈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업적, 수고, 연차, 나이에 걸맞는 대우와 존경은 제공자 입장에서 설정하는 것이지, 수혜자가 디폴트를 셋팅해 놓는 순간. 실망, 분노, 아쉬움이 생기거나 혹은 디폴트 값은 점점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
너무 따뜻하면 상한다. 나를 존중하고, 수용하고, 사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따뜻함에 익숙해지진 말아야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상해갈까 삼가 두려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