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tti Apr 27. 2020

나는 나와 내 가족을 팔아먹을 수 있을까.

과거의 나를 마주할 때의 기분이란

 3월부터 온라인 강의를 이어가던 학교에서, 이번 학기는 전면 비대면 강의로 진행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교수님의 얼굴을 실제로 뵙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쨌든 안심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조심해야 하기에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온라인 강의와 함께 몰아치는 과제들, 그리고 지난번 수술에 문제가 생겨 또 수술을 받은 우리 강아지 A, 게다가 다음 달 즈음에 있을 이사 준비까지 겹쳐 요즘은 도통 혼자 생각에 잠길 시간이 나질 않았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미뤄두었던 꿈인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브런치에 도전해보고, 친구들과 글쓰기 모임을 만들어 매주 작성한 창작글을 합평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방향이 점점 모호해졌다. 처음에는 일상에서 소재를 찾던 시선이 점점 넓어졌고, 그 무거운 소재들을 이렇게 가는 방향도 모른 채 써 내려가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교수님들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교수님들마다 스타일은 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소설을 읽고 그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대해서 나만의 손바닥 소설을 써서 제출한다던지, 혹은 신화를 읽고 시간 순서대로 줄거리를 요약한다던지 하는 과제들이었다. 매 과제마다 읽어야 할 책이 적게는 한 권에서 많게는 세 권이었다. 듣는 과목이 다섯 과목이니, 적어도 일주일에 세 개 이상의 소설을 읽어야 했다. 그렇게 과제마다 딸려오는 읽을거리들에 지쳐, 대학 학부시절처럼 과제를 얼른 해치우려(?)는 자세로 글을 쓰는 나를 발견했다. 하고 싶어 시작했으면서, 나는 왜 또 부담과 권태를 느끼는 걸까. 참.





 지난주에 제출한 과제 중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글을 써서 내라는 주문을 했던 교수님이 있었다. 형식은 소설과 에세이 뭐든 관계없다고 했다. 나는 일단 소설로 형식을 정하고, 글의 주제를 계속 떠올려 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일까. 먼저 1차원적인 발상으로, 그저 떠오르는 대로 끄적여 보았다. 도입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화자가 느끼는 감정으로 시작했다.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것도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화자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그 어떤 슬픔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란다.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꼭 남의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것처럼 조문을 하고서 장례식장을 떠나고, 상복을 입은 동생들은 그런 화자를 이해한다. 그다음은 화자의 어린 시절 회상으로 들어가는데, 그 회상에 내 어린 시절을 조금씩 떼서 가져다 붙였다. 경험과 허구가 모두 들어갔지만, 가장 비참하고 충격적인 부분은 내 경험으로 채워 넣었다. 그리고 한참을 퇴고한 끝에 업로드를 마쳤다. 자 이제 과제도 마쳤고 쉴 시간인데. 근데 이상하게 의자에 붙은 엉덩이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아 노트북 뚜껑을 덮을 수가 없는 거였다.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날것인 어린 시절을 글로 옮겨 적고 난 뒤에 온 불쾌감이었다. 그건 슬픔도, 우울도 아니었다.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봐야만 할 때 느끼는 그런 느낌. 이런 느낌은 직장생활을 할 때 많이 느꼈던 거였다. 누군가를 칼로 찌르거나, 사기를 쳐서 피해자가 자살시도를 하게 만들었거나, 보이스 피싱에 가담하여 요즘 물정 모르는 노인들에게서 억대의 돈을 편취했거나 하는 사람들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해야 할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 감정들보다는 한층 더 검고, 악취가 나는 것 같은 불쾌감이었다. 그냥 이대로 노트북을 덮으면, 저 게시판에 올려둔 내 글이 하루 종일 신경 쓰일 것만 같았다. 게다가 저 글의 독자는 함께 수업을 듣는 동기들과 교수님이었다. 그들은 내 이름을 알고 있고, 아직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학기가 바뀌면 한 공간에서 수업을 들을 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날 것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을 그들을 대면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홀딱 벗고 그들 앞에 서는 느낌일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업로드했던 글을 삭제했다. 그리고 이틀간 고민을 했다. 과거를 시원하게 드러내며 솔직하게 한 발 다가서고 싶은 마음과, 불행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수치심이 계속해서 상충했다. 그리고 결국 후자가 이겼다. 나는 그 글을 다시 올리지 않았고, 훨씬 우회적으로 쓴 다른 글을 새로 작성하여 게시했다.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나의 힘들었던 시절을 남의 이야기하듯 별 감정 없이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많아 나아진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상처 받은 채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울고 있는 꼬마 그대로였다. 남들 앞에서 아닌 척, 강한 척하며 살면 뭐하나. 내가 아는데.



 이번 과제를 통해 나는 교수님이 첫 시간에 강조한, ‘작가는, 나와 가족을 팔아먹을 수 있는 자’의 자격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만둘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노력해볼 것인지 고민해봐야 했다. 이게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상처와 얼굴을 함께 드러내는 것이, 내게는 아예 불가능한 일인 걸까. 그래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나는 글을 쓸 때 경험을 뺄 수 없는 사람이므로.  경험은 내가 쓰는 소설 속에서 화자의 독백으로, 또 주변인물이 겪는 사건 혹은 대사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내 경험과 생각이 녹아있다. 나는 '나의 글'을 쓰고 싶기 때문에 이제라도 조금씩 용기를 내볼까 한다. 혹시 모른다. 처음만 어렵지 다음은 쉬울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변한 건 너 때문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