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충도에 담긴 신사임당의 섬세한 관찰법
한국의 대표 여성 화가, 신사임당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우리는 너무 쉽게 한 단어로 그녀를 정리하고 만다. 현모양처. 그리고 그 옆에는 으레 따라붙는 또 다른 이름, 율곡 이이의 어머니. 중학교 미술 시간에 처음 보았던 초충도의 이미지와 5만 원권 속 익숙한 초상은 오랫동안 그녀를 ‘훌륭한 어머니’라는 틀 안에 가두어 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림 앞에 멈춰 서는 순간, 신사임당은 그 틀을 가만히 밀어내고, 조선의 한 여성으로서 그리고 한 예술가로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초충도는 ‘풀과 벌레를 그린 그림’이라는 단순한 뜻을 지녔지만, 그 안에는 놀라울 만큼 풍부한 세계가 숨어 있다. 쇠똥벌레, 개미, 잠자리, 나비, 방아깨비... 그리고 우리가 밭에서 늘 보아왔던 오이, 가지, 수박, 패랭이꽃, 봉선화들.
조선시대, 여성의 이름은 종종 기록에서 지워졌고 재능은 규방에 갇혔지만, 사임당만은 달랐다. 그녀는 오죽헌의 뜰에서 피고 지는 풀꽃과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곤충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관찰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생활을 지탱하는 수단이었고, 자녀의 교육을 위한 자료였으며, 한 여성 예술가의 내밀한 시선 그 자체였다.
그녀의 붓은 자연을 모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풀과 벌레 속에서 사람의 삶을 읽어내고, 그 안에서 기원의 상징을 찾았다. 덩굴처럼 뻗어 나가는 포도와 수박은 자손의 번창을, 씨앗을 가득 품은 열매는 풍요를, 날아드는 나비는 즐거움과 행복을 암시했다. 이 얼마나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염원이었을까. 어떤 화려한 말보다 진심이 깊게 배어나는 그림이었다.
초충도에서 가장 익숙한 장면 중 하나는 수박과 들쥐가 함께 등장하는 그림이다. 수박을 갉아먹는 들쥐라니, 요즘 기준으로는 ‘못된 장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옛사람들이 읽은 의미는 달랐다. 넝쿨식물은 덩굴처럼 번식하라는 소망을, 씨 많은 과일은 자손의 번창을 의미했다. 들쥐가 수박을 먹는 모습은 오히려 그 번창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패랭이꽃은 검은 머리 청춘을 뜻했고, 나비는 예로부터 기쁨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림 한 폭 속에 이렇게 많은 상징과 삶의 기원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초충도는 단순한 ‘자연화’가 아니라, 당대 여성의 삶, 가족을 향한 마음, 예술가의 섬세한 감성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적인 언어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하지만 그녀는 단지 ‘어머니’가 아니었다. 유교 경전을 익히고 시와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렸던, 조선 시대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자주적인 여성 예술가였다. 그녀의 그림은 생활을 위해 팔리기도 했고, 문인들과 임금에게까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초충도는 특히 그 섬세함과 생동감 때문에 조선 회화사에서 독보적인 흔적을 남겼다.
유정은 작가의 『사임당 평전』에서 말하듯이, 그녀는 집안을 지키는 어머니였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였다. 초충도는 그 세계의 중심이었다. 조선 여성의 재능과 자존,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이 붓끝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 오늘 우리가 신사임당의 그림 앞에 선다는 것은, 그녀를 단지 ‘현명한 어머니’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제약을 넘어 자기만의 시선을 그려낸 한 예술가로 바라본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풀과 벌레, 꽃과 열매 속에 담긴 생명력.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스스로의 세계를 확장했던 한 여성의 조용한 혁명. 그 모든 것이 초충도 한 폭에 살아 있다. 자연을 바라보되 그 안에서 삶을 읽어내던 시선. 조용히 스스로의 재능을 증명해 낸 용기. 그리고 시대를 거슬러 오늘까지 살아남은 예술.
초충도를 다시 보는 순간, 우리는 신사임당이라는 인물을 다시 쓰게 된다. 그녀는 현모양처를 넘어, 조선의 시간 위에 자기 목소리를 남긴 완전한 예술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