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 흩어질 때 국화 한 송이

#월동하는 나비의 잠

by 닥터파브르

나에게 겨울은 언제나 고요하고 적막하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겨울은 늘 조용하다. 소리들이 낮아지고, 꺼내지 못한 말들이 마음 안에 머무는 그런 계절이다. 그 이유를 굳이 찾자면, 아마도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일 것이다. 어떤 계절은 하나의 기억으로 굳어, 이후의 모든 겨울 위에 얇게 내려앉는다.


2019년 12월, 눈발이 조용히 흩날리던 날이었다. 하늘은 유난히 낮고 무거워서, 고개를 들면 금세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외할아버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오랜 병상 끝에, 더는 버틸 힘이 남지 않았다는 듯 조용히 삶을 내려놓으셨다.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리며 (2019.12.31.)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내 기억 속 외할아버지는 평생 세 번쯤 만났을까. 파도가 출렁이는 외딴섬에서 거주하셨던 외할아버지는 말이 적었고, 눈을 오래 마주치지 않았으며, 늘 한 박자 늦게 반응하던 분이었다. 쓰러지신 뒤로는 걷지 못하셨고, 다리에 힘이 없어 요양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다 그렇게 운명하셨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슬픔보다는 낯섦을 먼저 느꼈다. 슬퍼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할아버지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나 자신이 겹쳐 보인다. 아들은 엄마를 닮고,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들 하지만, 어쩌면 엄마가 외할아버지를 닮았고, 그 닮음이 다시 나에게로 흘러온 건 아닐까. 말수가 적고, 감정을 쉽게 꺼내지 않으며, 마음속에 쌓아둔 생각들을 오래 묵히는 성격까지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핏줄이라는 말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닮음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의 어느 날이 문득 떠오른다. 집 앞 뒷산에 눈이 아주 많이 내렸다. 세상이 소리를 잃은 것처럼 조용했고, 발밑에서는 뽀드득, 눈이 부서지는 소리만 났다. 그 소리를 나는 유난히 좋아했다.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어딘가에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는 혼자 산에 올랐다. 사람 하나 없는, 고요가 층층이 내려앉은 산이었다. 나무들은 모두 말을 멈춘 채 서 있었고, 숨소리마저 눈 속으로 파묻힌 듯했다. 그 적막 속에서 나는 나비를 보았다. 살아 있는 나비였다.


겨울에 나비라니. 그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날개는 얇고 연약해 보였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금세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나조차도 나 자신을 의심했다. 혹시 잠깐 스쳐간 환영은 아니었을까. 눈과 침묵이 만들어낸 착각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 나비는 분명히 존재했다. 고독하고, 처량하고, 외로워 보였지만 그 가냘픈 날갯짓은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활짝 날아오르기보다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 공기 위에 머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적막한 숲 한가운데서, 마치 자기 몫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


성인이 되어 알게 되었다. 나비도 월동을 한다는 사실을. 어떤 나비는 번데기의 몸으로, 어떤 나비는 애벌레의 형태로, 또 어떤 나비는 성충의 모습 그대로 낙엽 아래와 나무 틈에서 겨울을 난다. 모든 생명이 같은 방식으로 계절을 건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살아남기 위해 각자의 침묵과 멈춤을 선택한다는 것.

'입춘이 반가운 겨울나비, 네발나비와 각시멧노랑나비'_출처: 한겨레 신문 (2017.02.03.)

그날 내가 본 나비는 아마도 네발나비였을 것이다. 주황과 적갈색이 섞인 날개를 가진, 비교적 드물게 어른의 몸으로 겨울을 견디는 나비.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 나비는 날고 있었다기보다 버티고 있었다. 움직임은 최소였고, 존재는 미약했지만, 분명히 살아 있었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방식으로.


적막한 숲에서 만났던 그 나비처럼,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깊은 내공은 요란함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오래 참고, 조용히 견디며, 드러내지 않은 시간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을. 어쩌면 외할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그렇게 겨울을 건너는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만약 다음 생에서도 인연이 허락된다면, 그때는 외할아버지를 다시 만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다. 말도 걸어보고, 괜히 투정도 부리며, 한 번쯤은 응석을 부려보고 싶다. 묻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묻고, 듣지 못했던 대답을 듣고 싶다. 늦었지만, 이제야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겨울은 여전히 고요하다. 그러나 이제 그 고요는 텅 빈 침묵이 아니다. 눈 아래에서, 낙엽 밑에서, 말없는 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숨을 고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생의 온기가 조용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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