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의 언어

#어둠 속에서 만난 인연

by 닥터파브르

반딧불이는 오래도록 ‘개똥벌레’라 불려 왔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투박한 호칭 속에는 묘한 정서가 남아 있다.


개똥벌레.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이름, 아무 데서나 불릴 수 있는 존재의 이름.


아마도 그 이유는 단순했을 것이다. 논과 개울, 축축한 여름밤이 있던 시절, 반딧불이는 너무 흔해서 굳이 이름을 귀하게 부를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밤새 짝을 찾다 날이 밝아버린 반딧불이가, 미처 숨지 못하고 마을 가장자리의 개똥이나 소똥 아래에 몸을 숨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습기를 좋아하는 곤충에게, 그곳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그늘이었을 것이다.

반딧불이(무주반딧불축제 제공)

그러나 이름과 달리, 반딧불이는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곤충.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불타오르되, 태우지 않고 사라지는 빛. 그 빛은 공격도 과시도 아닌, 오직 신호다.


반딧불이는 말 대신 빛으로 대화한다. 수컷은 날아다니며 짧고 정해진 리듬으로 깜박이고, 암컷은 풀잎 위에 머물며 그 신호에 응답한다. 종마다 깜박임의 간격과 횟수가 다르기에, 그들은 실수하지 않는다. 잘못된 언어로는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빛은 사랑의 언어이자, 생존의 언어다. 포식자에게는 '나는 위험하다'라고 알리는 경고이고, 같은 종에게는 '나는 여기 있다'라고 전하는 인사다. 말이 없는 세계에서, 반딧불이는 가장 정교한 문장을 쓴다.


반딧불이의 삶은 길지 않다. 알에서 애벌레로, 다시 번데기를 지나 성충이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빛을 내며 날아오르는 시간은 여름의 한순간에 불과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반딧불이는 모든 생을 걸고 신호를 보낸다. 만나기 위해, 이어지기 위해. 그래서 반딧불이는 언제나 환경의 언어이기도 하다. 깨끗한 물과 축축한 땅, 오염되지 않은 어둠이 없으면 그 빛은 켜지지 않는다. 반딧불이가 사라졌다는 말은, 우리가 어둠을 잃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2025년 7월, 고려대학교 — 반딧불처럼 조용히 길을 밝혀주신 황재삼 교수님과 함께

2025년을 돌아보면, 나에게도 두 개의 빛이 있었다. 황재삼 교수님, 그리고 최재화 대표님.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시기, 앞이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두 분은 각자의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주었다. 크게 흔들리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빛이었지만 분명히 알아볼 수 있는 리듬이었다.


“괜찮다.”

“계속 가라.”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언어. 어쩌면 인연이란 것도 반딧불과 닮아 있는지 모른다. 밝아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어둡기 때문에 서로의 빛을 알아보는 것. 개똥벌레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반딧불이처럼 우리의 인생도 때로는 초라한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누군가에게 닿는 빛을 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개똥벌레'를 노래한 신형원 가수의 그 노래는 이상하게도 늘 구슬프다. 아마 그 노래는 빛에 대한 노래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신호를 멈추지 않았던 작은 생명들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재화 대표님과 그의 작은 연구실에서 함께 만든 결과물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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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