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존재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초등학교 1학년, 처음으로 내 손으로 골라 읽은 두 번째 책은 『파브르 곤충기』였다. 책 보다 숲 속이 더 익숙하던 그 시절,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숨 쉬던 작은 우주였다.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작디작은 생명에게도 저마다의 서사가 있고, 끝내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세계로 나를 이끈 사람, 곤충을 ‘작은 생명체’가 아니라 ‘생명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로 바라보던 사람.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였다.
1823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파브르는 책 보다 들판이 먼저였던 소년이었다. 흙냄새를 기억하는 손으로 세상을 만지고, 돌 틈과 풀잎 사이에서 자연의 언어를 배웠다. 성인이 되어 교사가 된 뒤에도 그의 진짜 연구실은 언제나 숲과 들판이었다. 돋보기를 들고 바람 부는 길가에 엎드려 곤충을 바라보던 그의 모습은 학자라기보다 자연을 읽는 시인이었다.
그가 40년 동안 기록해 만든 『파브르 곤충기』는 과학 보고서인 동시에 자연을 향한 기도문이며, 한 인간의 생명철학이 깊게 스며 있는 일기장이다. 매미의 울음, 쇠똥구리의 분투, 개미의 노동, 거미의 기다림. 그 사소하고도 고요한 일상 속에서 파브르는 존재가 품은 엄숙한 빛을 찾아냈다. 찰스 다윈이 “곤충을 이토록 깊이 이해한 이는 없다”라고 말한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처음 『파브르 곤충기』를 펼쳤을 때 어린 마음에는 글이 조금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느 여름방학, 다시 책장을 넘기며 나는 오래된 페이지 사이에서 파브르의 체온과 숨결, 그리고 따뜻한 애정을 발견했다. 많은 이들이 '곤충에게 무슨 애정이 있겠느냐'라고 말하지만 파브르는 달랐다. 그들의 질서와 침묵 속 꾸준함, 생존의 철학을 이해하려는 그의 태도. 바로 그 마음이 이 책을 한 세기 넘게 살아 있게 하는 힘일 것이다.
파브르를 곤충의 세계로 이끈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경외였다. 자신보다 무거운 것을 끌어가는 힘, 자식을 보호하는 섬세한 본성, 먹이를 죽이지 않고 마비시켜 보관하는 노래기벌의 전략까지. 그는 잔혹해 보이는 생존 방식의 뒤편에서 자연의 질서와 정직함을 읽어냈고, 그 관찰을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로 확장했다. 그 불씨가 그의 평생을 태웠고, 그 열정이 『파브르 곤충기』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어린 시절, 시골 마당과 논밭을 뛰놀던 나는 특히 쇠똥구리가 둥근 흙덩이를 굴리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한다. 그 작은 곤충이 굴리던 것은 단순한 공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의지이자 생명의 무게였다. 그 당시엔 그저 '신기하다'라고 생각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 돌아보면 그 모습은 삶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작고 느리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존재들. 그 꾸준함이 자연을 지탱하고, 세상을 조용히 움직인다.
요즘 나는 다시 『파브르 곤충기』를 펼친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아들과 함께. 가을, 곡식이 여물어가는 계절을 따라 도서관으로 걸어가던 날. 노란 은행잎이 소리 없이 떨어지는 숲길에서 아들이 내게 물었다.
“아빠, 겨울이 오면 곤충들은 어디로 가?”
그 한마디는 오래전 내가 서 있던 시간의 문을 조용히 열어젖혔다. 잠들기 전, 아들과 함께 한 장씩 책을 넘긴다. 공룡 책을 지나, 이제 곤충 책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신기한 듯 눈을 반짝이는 아들을 바라보며 나는 오래 전의 나와 다시 만난다. 그리고 자연을 향한 경이로움이 이렇게 대를 이어 흐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파브르 곤충기』는 곤충의 기록을 넘어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 작은 것을 깊이 들여다보는 눈, 끈질긴 관찰과 호기심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서 시작된 이 책은 이제 내 아들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지만, 한때 나를 매혹시켰던 작은 곤충들의 세계는 여전히 마음을 고요히 붙드는 작은 질서로 남아 있다. 삶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으로도.
그 작은 생명들의 세계가 나의 첫 번째 자연 수업이었고, 이제는 아들의 두 번째 자연 수업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