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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28. 2023

한 부모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

한 부모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로서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이다. 아이가 부모인 나와 성별이 다를 경우는 그 가짓수가 더 많아진다. 내가 처음 느꼈던 것은 워터파크에서였다. 아이가 10살 때부터 혼자 아이를 키웠는데 지역에 생긴 워파크에 가려니 탈의실 이용을 아이 혼자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어딘가를 못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고맙게도 내 이야기를 듣고 후배네 가족이 자기들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워파크를 다녀왔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이 더 늘어났다. 아이의 2차 성징이 시작되는 것 같은데 아는 채 할 수가 없어 내가 뭐 도와줄 것은 없는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궁금한 것도 많을 텐데 혼자서 어떻게 신체적 변화들을 견디고 있으려나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농구, 축구와 같이 더 이상 내가 함께 몸으로 해줄 수 없는 놀이가 늘어나는 것이다. 아이에게 아빠가 있다면 축구 슛 연습을 맘껏 하고, 농구도 함께 할 수 있을 텐데 엄마인 나는 아무리 체육 좀 했던 엄마라도 쉽지 않다. 아이랑 같이 나가도 아이는 아이대로 농구나 축구를 하고 나는 나대로 달리기나 하다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정도가 돼버렸다.


한 부모로 그 누구보다 아이를 잘 키워왔고, 잘 키울 자신이 있지만 빈틈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에게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해 보지만 내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게 사실 늘 안타까웠는데 이제는 아이도 나도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다. 아픈 손가락을 계속 쳐다봐서 달라질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아픈 손가락은 아픈 손가락대로 사랑해 주면 되는 것이다. 단 아픈 손가락을 꼭꼭 숨길 생각은 없다. 숨기려면 우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늘 한 가지 주제에서 만큼은 입을 다물게 되고, 아이는 나쁜 아빠라도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이에게 언제든지 아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으면 그게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말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엄마랑 친한 삼촌 선생님들처럼 좋은 아빠들이라면 바람 정도는 그냥 넣어줄 건데." 아이가 제일 아끼는 농구공을 닦으며 말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물어보니 농구공에 바람이 빠져서 바람을 넣고 싶단다. 학기 중에는 학교 체육관에서 바람을 넣고 오면 되었는데 방학이니 그리 못하니 안타깝다고 했다.

"엄마도 그 삼촌들처럼 좋은 남편이 있었으면 지금 쯤 그냥 자고 있었을 텐데." 설거지를 하다가 아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서로의 말에 웃으며 결국 모든 잘못을 한 사람에게 기분 좋게 몰아넣어버렸다.


아이가 잠든 시간. 조용히 공에 바람을 넣을 수 있는 기구를 온라인으로 주문했고 며칠 뒤 도착했다. 아이가 농구를 하러 나가는 길 아이를 뒤에서 불러 세웠다.

"공 줘봐." 조금은 단호한 목소리에 아이는 소지품 검사라도 받듯 조심스럽게 내민다.

"공에 바람을 넣어줄게. 가지고 가." 아이는 내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넣..?" 아이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 앞으로 공기주입기를 보여주었다.

"헐... 대박. 엄마 이것도 산 거야?" 대답대신 부지런히 공에 바람을 넣었주었다. 빵빵해진 공을 아이에게 건네니 아이는 한 달에 한번 보여줄까 말까 한 함박웃음을 보여준다.

"엄마 다녀올게!" 그 어느 때 보다 문 밖을 나서는 아이의 모습이 경쾌하고 내 마음은 행복으로 빵빵해졌다.

한 부모로 사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이다. 그래도 부모와 아이가 일상에서 눈 크게 뜨고 틈이 생긴 서로의 마음을 찾아 온기로 채워 넣으면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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