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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03. 2024

옆구리를 찌르는 엄마

중학교 2학년 엄마로 사는 법(1)

15살 아이는 평범한 지구인 아니다.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서면 강아지처럼 엄마 왔냐며 나를 반겨 준다. 기분이 좋은 날은 수고했노라고 안아주기까지 하니 집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이 아이의 엄마이길 잘했다 싶다. "엄마 다녀왔어?" 사춘기 아이의 낮고 성긴 목소리는 언제나 반갑다. 어쩐 일인지 집에 들어왔는데 불만 켜져 있을 뿐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 왔어!" 크지도 않은 조그만 집에서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아이의 대답은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의 방으로 가보니 아이가 책상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아이의 시그니처 반달눈은 흔적조차 없고 지극히 낮은 일자 모양으로 성이 나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두 시간 공부했는데 겨우 6문제를 풀었다며 자기가 멍청한 거 같다고 하소연을 한다. 현실 엄마는 순간 '또 시작이구나' 피로감이 밀려왔다. 중학생이 되면서 아이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지 공부를 하다가 잘 안되면 자주 짜증을 냈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한없이 작아졌다. 그럴 필요 없다고 달래보아도 자기만의 탁한 세상에 들어간 아이는 자주 부정적인 말들을 내뱉곤 했다. 이 공부 문제만 없다면 우리 집은 평화로울 거라는 막연한 원망이 솟아났다. 공부가 늘 원흉이었다.


고민을 많이 해서 그럴 수 있다고 대충 많이 풀어서 틀리는 아이들보다 네가 올바르게 하고 있다고 달래보아도 소용이 없다. 급기야 나에게 자신의 처지를 쏟아내던 중 작은 두 눈이 눈물을 꾸역꾸역 짜냈다.

"엄마가 도와줄게 뭐 있을까?" 아이에게 물었지만 아이는 울기만 했다.

"엄마가 수학 직접 공부해서 모르는 거 가르쳐줄게. 너무 걱정하지 마." 뭐라도 위로를 해야 될 것 같은 상황에서  평상시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늘 하기 싫으면 공부 안 해도 된다고 세상 쿨하던 엄마의 에 아이는 차마 더는 울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수학 싫어하잖아."

"수학을 싫어하지 못하지는 않아. 공부하면 할 수 있을 거야." 사실 나는 지극한 문과라 수학을 싫어한다. 그래서 아이가 수학을 싫어할 때마다 수학은 좋아할 수 없는 과목이니 당연한 거라고 편을 들곤 했다.


아이를 억지스럽게 달래고 아이가 풀다만 문제지를 가지고 거실 마루에 혼자 앉았다. '도대체 얼마나 어렵길래 이 난리란 말인가?' 한 장씩 걷어보니 아이는 제법 잘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숙제는 많은데 아이가 푸는 속도대로면 남은 숙제를 해결하는데 얼마나 더 시간이 들지 막막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풀다 막힌 문제를 봤다. '이런 게 중학교 2학년 수학에 나왔었나?' 생각이 들 만큼 개념과 문제들이 내게는 너무 생경했다.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보기 시작했다. 맞게 푸는지 틀리게 푸는지 모른 채 꾸역꾸역 문제를 풀어나갔다. 어찌 이 문제지는 그 흔한 객관식 하나 없단 말인가! 투덜투덜 거리며 문제를 푸는데 어느 순간 달리기를 할 때 기분 좋아지는 순간이 오는 러너스하이처럼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됐다. 내가 나이 마흔 중반을 훌쩍 넘어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문제를 풀고 정답을 찾아가며 확인을 해보니 거의 다 맞았다. 개념만 이해하고 차분히 풀면 아이도 너끈히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엄마 다 풀었어. 지금 설명해 줄까?" 아이 앞에 문제지를 내려놓았다.

"여기서는 이 개념을 봐야 돼.  이 선분의 길이가 평행한 다른 선분의 길의 반이 된다고 하잖아. 그걸 보면 여기도 반일테고..." 아이는 갑자기 뭔가 아는 듯한 엄마의 설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나를 설명해 주니 아이가 술술 답을 말해서 순조롭게 쉬운 문제들은 넘어갔는데 유형문제를 설명하려니 막혔다.

"이거 풀긴 했는데 설명을 못하겠네... 있어봐." 나의 머뭇거림에  아이는 아까는 엄마가 어쩌다 푼 거 아니야? 하는 불신의 눈빛을 보다. 그러나 나는 오늘 공부한 엄마다! 그런 눈빛이 머무를 틈도 없이 바로 아이에게 설명 마쳤다.


아이의 공부를 도와줘 보니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이 반신반의하는 부분들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다. 답지도 학원에서 주지를 않으니 답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는 아이는 불확실 속에서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 같다.

아이가 문제를 풀면 내가 답을 확인주기로 하고 아이 스스로 남은 숙제를 마무리했다. 난리가 났던 우리 집의 저녁 소동은 마무리가 됐다.

자기 전 가라앉은 아이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어때? 아직 엄마 잘하지?"

"응. 생각보다는 잘해. 그런데 엄마 심화까지는 풀 수 없을 것 같아."

"중학교 문제가 어려워 봤자 얼마나 어렵겠어!" 큰소리를 쳤지만 난 분명 풀 수 없을 것이다.


그 뒤로 아이는 변했다. 이해 안 되는 문제로 자신에게 쌀쌀해하며, 칙칙한 한숨을 내뱉기보다는 나를 찾았다."엄마 여기서 이 개념이 이해가 안 되는데 같이 봐줘." 문제지를 보니 이번에는 일차함수다! '아.. 겨우 도형의 닮음이 해결했는데...' 아이에게는 티 나지 않게 미간에 인상을 쓰며 문제를 이해하려고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알겠노라며 됐다고 한다. 뭐가 모르는지를 나에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순간 다시 보면서 뭔가 번뜩 떠오른 모양이었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이해 덕분에 소중한 나의 일요일 아침 자유시간은 다행히 사수할 수 있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공부를 제대로 해야 될 나이가 되니 둘 사이에 이런 칙칙하고 차가운 대화들이 오고 갈 수밖에 없다. 어릴 적에는 말도 안 되는 몸개그와 춤, 말장난과 놀이, 그림책들로 하루를 채워가며 둘이 뒹굴거리며 살았는데 그런 호시절은 이제 정말 끝나버린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영어 단어를 잘 외울 수 있는지, 내신 시험은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 선행은 어디까지 해야 되는지 아이의 공부 궁금증을 채워주고 같이 고민해 주는 엄마로 다시 서야 된다. 내가 피곤하다고 학원선생님에게 물어봐라, 네가 더 노력하면 될 거다라는 말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이가 필요했던 것은 수학 잘 푸는 엄마가 아니라 그저 자기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해결해 주려 애쓰는 엄마였다. 그동안 내가 피곤하다고 아이의 고민을 함께 해준 시간이 적었던 것 같다. 공부가 원흉이지만 피해 갈 수 없으니 아이와 같이 부지런히 공부하며 살 생각이다.

바쁘더라도 자주 아이의 옆구리를 쿡 찔러주며 먼저 물어봐주는 엄마로 진화해야겠다.

"오늘은 뭐 안 풀리는 문제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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