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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21. 2024

즐거운 잔소리

사람들과의 관계가 두어 번 삐걱거리면서 '내가 맞아' 결론을 내리며 당위성을 부여하다가도 결국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 성격이 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몽글 솟아오르는 요즘이다. 타로카드의 말 탄 기사가 번쩍거리는 칼을 들고 달려가는 모습이 마치 내 모습 같은가 싶기도 하다. 타인에게  비 내가 칼을 휘젓으며 비켜라! 외치는 차가운 기사는 아닐까? 생각이 깊어지다가 무릇 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건지 궁금해졌다. 나와 15년째 살고 있는 사춘기 아들을 불렀다. 본가 식구들 빼고 나랑 가장 오래 산 사람이다. 나름 정확한 답을 줄지도 모르는 유일한 인물이다. 아이는 신나는 음악을 듣는지 이어폰을 한쪽만 끼고 나오며 왜 불렀냐고 물었다.


"네가 보기에 엄마 어떤 사람이야?" 내 질문에 갑자기 아이는 요란한 지진 재난문자  온 것처럼 작은 눈이 커진다. 이어폰을 빼고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되물었다.

"그냥 네가 보기에 엄마 좋은 점과 고쳐야 점, 또는 바라는 같은 있을 아니야?" 특별한 설명도 없이 무조건 답을 보채는 나에게 아이는 의외로 서슴없이 답을 주었다.


"엄마는 첫 번째로 일단 예뻐." 예상치 못한 대답에 헛헛한 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아들 눈에 곱게 비쳤으니 싫을 이유는 없다. 싱거운 대답에 아이와 같이 웃고 그렇다면 예쁜 엄마의 두 번째 장점은 또 뭐냐고 물었다.

"엄마는 두 번째로 루스한데 단단해." 루스한데 단단하다. 루스는 뭐고 단단은 또 뭐란 말인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다. 아이 말에 따르면 엄마는 자기에게 허용적이어서 늘 편하게 풀어주는데 놔두는 게 아니라 원칙이 있다고 했다. 썩 마음에 드는 표현이었다. 루스 한데 단단한 엄마는 변치 말아야지 하고 마음속에 밑줄을 그었다.  

"엄마는 세 번째로는 압박하지 않아." 내가 종료 전 1분을 남겨두고 존프레스 하는 농구 수비수도 아니고, 압박이라니. 아이는 내가 공부로 절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 엄마들은 중학교 2학년이니 공부하라고 엄청 잔소리하는데 엄마는 그런 잔소리를 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오히려 자기가 공부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성격인 것 같단다. 아이가 말해준 나의 좋은 점 3가지를 들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라앉았던 기분이 유쾌해졌다. 공부 스트레스를 받아 그 짜증을 내게 푸는 사춘기 중2 아들이 그래도 엄마 성적표에 매우 잘함을 준 것 같아 어깨가 솟았다.


다음은 엄마인 내가 고쳐야 할 점이다. 

"엄마한테 바라는 거? 있잖아 그런 거. 안 했으면 하는 거."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여느 때보다 유쾌한 아이가 "없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망설임 없이 말을 꺼냈다.

"첫 번째로 내가 남긴 밥 먹지 마." 아이의 얼굴은 자못 진지하다. 내가 저녁 퇴근이 7시는 되어야 돌아오다 보니 아이의 학원시간과 겹쳐서 주 2~3회 정도는 저녁 밥을 따로 먹게 된다. 나는 7시, 아이는 8~9시가 될 때가 많다. 학원을 다녀온 아이가 늦은 저녁을 먹는데 아이가 밥을 먹고 남기면 버리기는 아깝고 보관하자니 양이 적은 그런 애매한 상황이 생긴다. 한두 숟가락이면 끝날 양이다 보니 버릴 바에는 그냥 내가 종종  먹는다. 아이는 그 모습이 그렇게 싫다고 했다. 아까워도 그냥 버리고 엄마도 자기처럼 먹다 남은 밥 말고 깨끗한 밥으로 새로 먹어 달라고 했다.


"두 번째로 엄마 집에 오면 그냥 쉬어." 아이는 내가 퇴근하 책을 읽지 말고 그냥 피곤하면 자거나 뒹굴거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을 읽는 게 왜? 엄마는 이게 스트레스 푸는 거야!" 내 소중한 시간을 지적받았다는 작은 침범에 목소리를 높였다. 자녀가 공부하게 하려면 부모부터 모범을 보이라고 했거늘 다소 억울했다.

"엄마는 스트레스를 푸는 거라지만 엄마의 뇌는 쉬는 게 아니야. 하루종일 일만 하는 거라고." 아이도 지지 않았다. 쉬지 못하는 나의 뇌. 아이의 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아이가 떠난 거실에 혼자 놓인 나는 아이가 내게 바라는 두 가지에 대해  되새김질했다. 밥 잘 먹고 잘 쉬기! 아이는 내가 스스로를 남보다 소중히 여기기를 문했다.

나에게 대접하며 식사하고, 살면서 나에게 관대한 시간을 하나쯤은 줘야겠다, 아이말처럼 내 뇌가 쉬도록. 역시 사람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면 되는 거다. 늘부터 1일인데.. 앗! 밥이 딱 한공기만 남다. 아이가 남 밥을 또 먹다가 걸렸다.

"엄마 내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지!" 아이의 잔소리가 참 듣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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