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요
부동산 사무실은 아파트 상가 안에 있었고 주변에 큰 마트가 있다. 사무실 운영 시간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꽤 오랜 시간을 사무실에서 상주하는 셈이었다. 보통은 한 끼, 어떤 날은 두 끼 정도를 그곳에서 해결했다. 깔끔한 성격인 남편은 사무실에 음식 냄새, 정확히는 반찬 냄새가 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초반에는 거의 사 먹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 메뉴들로 연명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자 우리는 입을 모았다.
"우리, 밥은 좀 밥답게 먹자"
점심은 교대로 나가서 먹었다. 바통 터치를 하듯 각자가 먹고 싶은 메뉴를 찾아 나섰다. 먼저 먹고 온 사람이 맛있었던 메뉴를 상대방에게 알려주곤 했다. '당신이 좋아할 것 같은 맛이야'라며 알려준 식당을 다음 날 가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떤 날은 취향에 맞았고 어떤 날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저녁까지 해결하기엔 집밥이 그리웠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TV를 보면서 밥 먹는 시간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작전을 짰다. 오후 6시쯤이 되면 내가 먼저 퇴근해 사무실 옆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집에 가서 밥을 짓기로. 남편이 퇴근하면 따끈한 집밥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별것 차린 게 없어도 맛있는 갓 지은 밥. 그런 날들이 쌓이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꼭 신혼으로 돌아간 것 같잖아'
사실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의 신혼은 이렇지 않았으니까. 공채 출신에 일이 늘 우선이었던 남편은 삼십 대 중반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내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정말 일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히 퇴근 후 함께 저녁을 먹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나도 대기업에 다니며 만만치 않은 일상을 보냈으니까. 그 생활이 퍽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불행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창 바쁠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나도.
그런 시간을 지나 결혼 18여 년 차. 주 5일을 함께 저녁을 먹는 일상을 맞았다. 남들이 진작 보냈을 신혼 같은 시간을. 갓 지은 쌀밥에 싱싱한 상추, 풋고추와 생마늘 그리고 제육볶음이나 소불고기 같은 일품요리 하나. 그리고 즐겨보던 연애 예능 프로그램 하나. 우리와는 하등 상관없는 타인의 연애사에 시시콜콜 참견을 하며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다.
하나 분명한 건 있었다. 저녁이면 뚝배기에 애호박, 두부 넣고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가 있는 이 일상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 시기도 언젠가는 지나간다는 걸 짐작했기에 그래서 더 소중했는지 모른다. 신혼 때는 없었고 18년 차에는 있었던 그와의 이 소박한 저녁상이.
그 시절 사무실에서 퇴근하면서 장을 보고,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저녁을 짓고, 입시 중이라 우리보다 훨씬 늦게 귀가하는 아이의 저녁상을 다시 차려도 피곤하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당시 나의 이 기분 좋은 분주함을 그도 알았을까. 가끔 궁금하다.
하지만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나던 저녁이 있던 일상은, 예상대로 지속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