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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Nov 01. 2020

쇼핑몰 고객이 아는 사람일 때 생기는 일

후기 사진을 보고 그만...

‘우린 이제 각자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아는 사이인데 뭘'


드라마나 수필, 소설을 보면 가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각자의 집에 숟가락 개수까지 아는 사이라니. 응답하라 1988 때 이야기 아닌가 싶지만 지금도 통용된다고 느낄 때가 가끔 있다. 바로 sns로 일상을 공유하는 랜선 이웃 사이에서다.


아이 앞니를 언제 뺐는지, 지난 주말에는 어디로 단풍놀이를 다녀왔는지, 그 집은 주로 아침으로 뭘 먹는지, 그 부부의 결혼기념일은 이맘때 아니던가... 굳이 어디에 적어놓지 않더라도 피드를 읽다 보면 입력되는 정보들이랄까. 내가 유독 스치듯 보는 것도 스캔하듯 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랜선 이웃의 관계가 실제 이웃 사이를 넘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 같다.


엘슈가샵은 쇼핑몰을 열고 필요해서 sns를 시작한 상점이 아니었다. 2013년부터니까 꽤 오랫동안 블로그를 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 홈카페, 홈 인테리어부터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올리며 소통해왔다. 점점 이웃님들의 '슈가님이 찬 팔찌' '슈가님이 입은 화이트 셔츠' '슈가님이 쓴 그 울 모자'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요청이 많아졌고 나는 본격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했다.


그러면서 블로그로 인스타그램으로 후기를 올려주신 분들은 꼭 기억하고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려고 노력했다. 무료도 아니고 금액을 지불하고 구매한 상품에 후기를 써준다는 것이 얼마나 품이 들어가는 일인지, 오랜 시간 체험단 활동을 해왔던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후기를 썼다고 알림을 주면 ‘나중에 방문해야지’가 아니라 즉시 찾아간다. 가서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후에 그 고객이 재주문을 할라치면 난 뭐라도 작은 선물을 함께 보내곤 했다. 쇼핑몰 운영자들이 '후기는 사랑입니다'라는 말을 판매글 하단에 덧붙일 때가 있다. 나는 그에 더해 '후기는 여러분의 피땀 눈물임을 압니다. 제가 알아드릴게요'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소중한 후기를 읽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법은 거의 없었다. 만일 있다면 정말 정신이 없는 때였을 것이다. 바로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검색창에 '엘슈가라이프' '엘슈가샵'을 검색하는 이유는 내가 빠뜨린 후기가 없나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것이 운영자가 사용해보지 않은, 사용해봤더라도 테스트 정도의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이 아니라, 정말 내 손때가 묻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한 사이클을 써본 제품만 큐레이션(Curation, 추천)하는 내 상점이 가진 강점이라고 생각해왔다. 우리는 물건을 팔고 사는 관계만이 아니라 어떤 커뮤니티로 이어져있다고 믿는다. 쇼핑몰은 판매하고 구매하겠다는 의사가 있을 때 이용하는 안전한 결제수단이었다.


한 번은 애정하는 블로그 이웃님이 상품 주문을 했다. 처음엔 그분인지 몰랐지만 성함과 연락처를 보니 알겠더라. ‘잘 준비해드려야겠네’ 생각했다. 오래라면 오래 알고 지낸 분인데 진중하고 사려 깊은 분이다. 여름 라탄 모자를 두 개와 그 외 상품 하나 총 3점을 주문했다. 라탄 모자는 베이지 하나와 블랙 하나 색깔 다르게. 보통 이런 경우면 언니나 동생이랑 나눠 쓰기 위해 주문을 한 경우다.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분이 엘슈가 모자를 주문하셨다는 것을 잊어갈 때 즈음 사이트에 구매평 하나가 올라왔다. 사진이 들어간 포토 구매평이었다. 구매평이 올라오면 관리자센터에서 알림을 주는데 마침 나는 이동 중이라 바로 확인을 하지 못하였다. 그날 저녁 주방을 대강 마무리하고 작업실로 쓰는 작은방 내 작은 테이블에 앉아 후기를 확인하는데... 나는 그만 테이블에 엎드려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예전에 그 이웃님의 sns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나이를 먹어서도 왜 아직 엄마 앞에서 철없는 딸인 걸까? 옆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여전히 염려를 끼치는 못된 딸이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툴툴거리게 된다. 여전히 난 못된 딸이다.


아래는 그분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올려준 포토 후기다.


엘슈가샵의 라탄 모자는 사실 30-40대에게 어울리는 패셔너블한 디자인이라는 설명이 맞을 것이다. 그 타겟층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셀렉했으니까. 그런데 이 분은 엄마랑 하나씩 쓰려고 엘슈가 모자를 주문했다. 딱 보아도 우리 또래 엄마 같은 분이 엘슈가 모자를 쓰신 사진은 어떠한가. 엄마는 딸의 이 선물이 고맙고 기분 좋아서 '엄마 앞에 봐봐, 사진 좀 찍게'하는 딸의 요청에 순순히 그러라고 하셨을 것 같다. 그런 딸과 엄마의 모먼트가 그대로 느껴지는 후기였다.



"엄마, 왜 또 그걸 사달라는 거야? 집에 내려갈 때 짐 되게, 나중에, 나중에 사"

"숙아 엄마 이 삼발이 찜기가 진짜 필요했어. 집에 건 낡아서 이가 빠져서"

"엄마, 그거 얼마나 한다고 지금 꼭 그걸 사자는 거야. 짐돼~ 얼른 집에나 가자"


아이를 낳고 오십일이 넘었을까? 나는 이전 회사에 돌아갈 기약 없는 애매한 휴직 상태였다. 아직 산후조리도 다 안된 상태인데 뭐가 급하다고 나는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해 놓았고 나이 많은 친정엄마를 불러들였다. 하루에 2시간 운전면허학원 주행 실습은 내가 학원에 가지 않으면 도저히 안되니까. 50일이 넘은 갓난아이를 남에게 봐달라고 할수도 없는 노릇이라 친정 엄마 찬스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엄마가 일주일 동안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나는 매일 반찬도 신경 쓰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옷이랑 액세서리도 많이 사드리고 나름대로 막내딸 노릇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도 선선한 저녁 유모차를 밀며 엄마가 드시고 싶은 과일을 사러 집 근처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대형 그릇가게에 미끼 상품으로 밖에 내놓은 '삼발이'를 보고 그걸 사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구멍이 숭숭 뚫어진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찔때 쓰는 구식 삼발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서 엄마가 대중교통을 타고 내려가셔야 했던 것 같은데, 합리적이어도 너무 합리적이었던 갓 30살 남짓 된 막내딸은 대뜸 엄마에게 쏘아붙였던 것이다. ‘엄마 왜 하필 지금 삼발이를 사시겠다는 거에요? 여행가방에 넣으면 날카로워서 옷에 올이라도 나가면 어쩌려구? 얼른 가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삼발이 5천 원도 안 하는데. 이해안간다는 마음이었다.


아직도 그 그릇가게 앞에서 자꾸 삼발이를 만지작 거리는 그날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말 돈도 문제가 아니라면서 그럼 뭐가 문제였나? 나는 가끔 그렇게 엉뚱하게 구시는 나의 철없는 엄마가 답답했던 것 같다. 아니면 앞날을 모르는, 휴직인지 무직인지 애매한 내 상태가 불안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나는 끝내 엄마에게 삼발이를 사드리지 못했다. 그거 사드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5천 원도 안 하는 걸 왜 안 사드렸는지...이제는 사드릴래야 사드릴 수가 없는 것을...



엄마와 엘슈가샵 함께 쓴다는 후기를 보면 내 마음이 더 애틋해진다. 나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고객들을 보면 대리 만족이 되기도 하면서도 끝없이 부러워지곤 한다. 나도  예쁜 소품을 사서 딸을 위해 애쓰는 우리 엄마와 같이 커플처럼 하고 다니고 싶은데...이제 나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나눠 썼다는 후기를 보면 어딘가에 꼭 저장해둔다. 찾아보니 몇 건이 더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물건 판매만 하는 운영자였다면 몰랐을 일이다. 나는 내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눌 어떤 공간을 만들어두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쇼핑몰 업무가 안정이 되었어도 여전히 sns로 소통을 하는 이유다. 내가 고심해서 고른 상품들을 정말 잘 쓰고 있다고 그녀들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특히 엄마랑 커플 아이템으로 알콩달콩 잘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줄때면, 내가 왜 이 작은 상점을 오래도록 지켜가고 싶은지 잊고 있던 이유를 떠올리게 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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