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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Jul 11. 2021

또 택배가 잘못 오고 말았다

쇼핑몰을 운영 하지만 나도 구매자가 되어 물건을 주문할 때가 있다. 10년째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타 쇼핑몰 운영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도 사실인데, 이를테면 웬만하면 배송 재촉을 하지 않는다는 것. 


배송을 빨리 보내서 좋은 사람은 쇼핑몰 운영자이다. 배송 완료가 되고 구매 확정이 되어야 정산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늦게 보낼까...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못 보내고 있는 운영자의 마음은 어떨까. 언젠가 보내주겠지의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열화와 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쇼핑몰 연차가 쌓이면서 생긴 둔감력이었다.


한편 쇼핑몰 운영에 대해 속속 알고 있기 때문에 둔할 수도 있는 부분도 알게 되고 보이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가끔 이렇게 '이건 분명 잘못 보냈다'고 알아차리기도 하는 것이다. 


아니, 물건은 제대로 보내야 할 것 아닌가?

잘못 온 물건을 구매자가 확인해서 운영자에게 알림 하고 그걸 다시 반품시키고 운영자는 다시 보내주고... 요즘같이 택배 대란일 때는 평소보다 시간이 배는 더 걸릴 텐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너그러워지려고 해도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택배 하나를 받았다. 마침 나가야 할 일이 있어서 수령만 하고 나갔어야 했는데, 사진을 일일이 찍어두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 온 택배에 대한 증거(?)를 남겨야 했달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나씩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주문한 것보다 많은 것들을 보냈다. 

내가 주문한 것은 수경 재배용 몬스테라 2 뿌리와 투명한 화병 1개였다. 그런데 상자에는 몬스테라 2 뿌리와 투명한 화병 2개, 마침 집 앞 아파트 정원에 마침 예쁘게 피었다며 예쁜 생화 꽃을 보내주었다. 그 꽃의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생기와 색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컬러도 은은한 라벤더 컬러로 튀지는 않았지만 기품 있고 아름다운 컬러였다. 세상에 예쁜 꽃들이 많지만 그 꽃의 기품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두 번째, 박스를 잘못 보냈다. 배송 온 박스가 타 식물 배송 업체 박스보다 고급스러워도 너무 고급스러웠다. 행여 생화에 상처가 생길까 박스 안에는 종이로 된 충전재를 채워서 환경까지 생각했다. 이 충전재는 심지어 재활용하라고 보낸 듯 하다! 정성스럽고 안전한 배송을 위해 평소에 얼마나 고심했을지가 느껴지는 포인트였다. 


세 번째, 빨라도 너무 빨랐다. 심지어 이 모든 것들이 주문한 다음날 도착했다... 생물 중의 하나인 생화 몬스테라를 미리 확보했다가 보냈다는 증거다. 이렇게 되면 저를 포함한 다른 스마트 스토어 판매자들은 어떡하라고요, 네?


네 번째, 고객이 어떤 마음으로 주문했는지까지 헤아린 잘못이 있다. 몬스테라를 주문할 당시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그저 초록이가 햇볕을 보고 반들반들 빛나는 걸 보고 싶었는데 내 손에 들어온 초록이들은 며칠 또는 몇 주 안가 시름시름하다 갈변하곤 했다.


남들은 잘 키우는 초록이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나? 조금 지쳐있었다. 다신 키우지 않으리라 번번이 다짐했지만, 그 쇼핑몰 상세 페이지에는 '그런 당신도 키울 수 있습니다'라고 용기를 주고 있었다.


속는 셈 치고 주문한 이 배송은 정말 나같은 초보 식물 집사도 바로 깨끗한 물만 화병에 채워서 잘 보이는 곳에 놓으면 되도록, 모든 것을 다 정리해서 보내준 것이다. 그 잘못이 판매자에게 있었다.

[잘못 온 배송임을 확인하기 위해 찍어둔 사진들]



쇼핑몰을 하다 보면 동종업계의 타 쇼핑몰 운영자들이 보인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쇼핑몰을 운영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는지 조금은 보인다면 과장일까?


우리나라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기술도 서비스도 앞서 나가는 편에 든다. 쿠팡의 미국 상장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얻었다. 최저 가격, 높은 품질, 빠른 더 빠른 배송으로 고객들의 눈높이는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그런데 쇼핑몰 운영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상품이 품절이 날 수도, 오배송 할 수도, 늦게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것들이 고객의 컴플레인으로 이어질 때 자칫 운영자로서 멘털이 흔들릴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하는 것이다. 쇼핑몰 운영자가 운영자로 롱런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돌봐주면서 가야 되는 이유다.


그러다 만나게 되는 인상적인 쇼핑몰은 즐겨찾기를 하면서 가끔씩 들어가 보게 된다. 동종업계 동료로서 응원의 마음에서다. 잘못 온 택배에서 인생 꽃을 만나는 일도 있는 것이다. 이 날의 택배를, 뜯었던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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