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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Nov 01. 2020

높은 연봉보다 매일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삶

노동요가 중요한 이유

회사를 다닐 때 장거리 출퇴근을 하던 때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이직한 회사의 그 부서만 TFT(Task Force Team)으로 분당에 떨어져 나와 있었는데 집에서 20분 거리라는 요소도 다른 회사가 아닌 이 회사를 택한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회사가 급격히 성장하고 삼성동에 사옥에 입주하게 되면서 우리 부서도 편입하게 되었다. 계약서에 없었던 삼성동 사옥 출퇴근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나는 조그만 경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침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자가로 삼성동에 출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렇다. (세상의 모든 출퇴근하는 워킹맘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하지만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1시간 20분 정도의 출근은 약 2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때 당시 나에게 구세주 같았던 것은 바로 출근길에 듣는 '라디오'였다. 본래도 라디오를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쭈욱 내내 밤마다 틀어놓고 자곤 했다. 나는 남들도 다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큭큭 거리며 잠이 드는 줄 알았다. 대학 졸업 후 친구들이 내 원룸으로 놀러 와서 생일 파티를 해주었는데 그때 라디오를 켜고 자는 걸 보고 친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때 알았다. 아 모든 사람들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자는 건 아니구나...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2년 동안 버틴 건 8할이 라디오였다. 그만큼 음악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하는데, 회사를 다니면 어떠한가. 출입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음악과 거리가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물론 이어폰으로 가끔 음악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건 점심 식사를 일찍 하고 서둘러 돌아온 동료 없는 사무실에 서라든지, 홀로 야근할 때라든지 였으니까. 회사를 다니는 동안은 '내가 원할 때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삶'은 내려놓아야 했다.


자영업, 쇼핑몰을 운영하는 삶을 택하면서 회사 생활이 주는 소속감, 타이틀,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월급은 모두 반납하게 되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기쁨을 거머쥐게 되었다. 바로 '음악을 곁에 두어도 되는 삶'이었다.


아침에 식구들을 출근, 등교시키고 돌아와 집안에 있는 모든 창을 열고 간단히 청소기를 민다. 어떤 날은 누룽지를 어떤 날은 모닝빵을 어떤 날은 시리얼을 먹은 그릇을 대강 정리해두고 반찬을 꺼낸 날은 더 확실히 환기를 시킨다. 그리고 월 정액제로 듣는 음악 서비스에 접속한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플레이리스트 중에 가장 먼저 듣고 싶은 곡을 선택한다. 음악은 아이폰에 연결해둔 사운드가 좋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가끔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거나 무료할 때는 라디오를 켠다. 즐겨 듣는 프로는 주기적으로 바꾸는데 정착한 프로가 있어도 편성이 바뀌면 한 번씩은 꼭 들어본다.


그리고 캡슐 커피를 뽑거나 드립 커피를 내리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달달한 맥심 한 봉지에 우유 추가해서 내 맘대로 방구석 라테를 만들어 먹으며 생각한다. 이거 말고 별게 또 있을까? 내가 확실히 느끼는 행복이라는 것. 내 의지대로 아침을 열고 좋아하는 음악과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를 마시며 상상으로는 어디든 활개치고 다니는 일상. 우스개 소리로 '불러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지만 원치 않으면 그 어디라도 안가겠다는 나의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나는 지금 자영업자가 되어 쇼핑몰을 운영하며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있다. 좋은 회사, 좋은 직함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회사 다니니 이 정도는 써도 돼.라는 위안성 소비를 버렸더니 진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회사의 그 정도 직함이면 갖춰야 할 답답하고 불편한 OOTD(Outfit Of the Day)를 훌훌 벗어버리고 내가 가장 일하기 편한 옷과 신발로 갈아 신었다. 바깥에서는 '염려 마세요!'라며 믿음직스러운 그이지만 집에 오면 늘 '쓰담쓰담'을 원하는 그에게도 날이선 대화가 아니라 '걱정 마 여보, 잘하고 있어, 내가 알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 무엇보다 가슴이 벅찬 건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아이 옆에 있어주는 엄마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 할머니 댁에서 다녔던 그 세월을 보상해주기라도 하듯 나는 아이가 손을 내밀 때 잡아줄 수 있는 거리에서 일하고 있다.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높은 연봉을 받는 삶과 아침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삶 중 후자를 택하겠는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여전히 ‘네’이다. 아침마다 또는 작업을  때마다 내가 직접 고른 음악을 듣는 삶이  그리 대단하고 행복하냐고 스스로 되묻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시간이 없었더라면 내가  상점을 9년째 즐겁게 이어오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


 하나 확실한 것은 음악이 있었기에 매일 아침 기분 좋음을 머금고    있었다,  작은 상점의 택배 상자를 배송 받은 분들에게  기분 좋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것이  괴짜 상점 배송의 비밀이다. 상품이 받으면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배송 노하우  하나라면 조금 과장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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