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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Oct 30. 2020

건강한 대표가 건강한 회사를 만든다

목디스크와 우울, 그리고 대인기피


어느 날 아침,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목이 뻐근했다. 목을 좌우로 돌려보니 역시나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 증상이 있을지는 꽤나 되었던 때였다. “어제 잠을 쫌 잘못 잤나 봐, 또 담이 왔네.”라는 습관적인 말을 했다. 회사를 시작하고 1년, 나는 여느 스타트업의 대표들처럼 밤낮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 당시 나는 '일' 그 자체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내가 일을 좋아했던 탓도 있지만, 일을 놓으면 안 된다는 강박과 불안의 탓도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일이 바쁘다 보면 한 두 끼 정도의 식사는 거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한다는 것은 사치와 같았다. 아마 스타트업을 만들어가는 1년 차 대표들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작은 여유시간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그때,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다.


내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던 것은 창업을 하고 1년이 넘는 시점에서였다. 스물두 살의 젊은 대표가 몸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냐지만, 나 또한 나의 젊음에 자신만만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밤새 일을 해도 금방 회복할 수 있었고, 특별히 운동을 하지 않아도 체력이 좋았으며, 밥을 잘 안 챙겨 먹는 거 치고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노트북에 앉아 일을 하며 보냈던 내가 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목이 너무 아파서 잠에 들지 못하곤 했고, 아침에 일어날 때면 목에 자주 담이 와서 뒤로 돌아보지 못했다. 그러한 증상이 있고서도 꽤 시간이 흐른 후, 점점 왼쪽 팔에 저릿한 감각이 느껴질 때가 많았고 충분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증상이 지속되어 검색을 해보니, 그것이 목디스크의 초기 증상이라고 하더라.


우선 작업실에서 가까운 병원을 예약했다. 의사 선생님은 경미한 목디스크가 진행 중이라고 했고, 디스크가 신경을 눌러서 팔이 저린 증상이 지속된다고 했다. 한 달여 한방치료와 양약 치료를 받으며 증상이 조금 나아질 때쯤 치료를 중단했다. 3개월 이상 받아야 하는 치료비는 생각 외로 부담이 컸고, 지속적으로 병원을 왔다 갔다 할 만큼의 여유도 없었다. 조금 나아진 증상에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겠다'하는 생각으로 치료를 중단했다. 이제 건강을 좀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할 때쯤, 우리의 회사는 흔들리고 있었고 나는 내 건강보다 회사를 먼저 챙겨야만 했다. 함께했던 팀들이 깨지고 온전히 혼자가 되었을 때, 너무 많은 신경을 쓴 탓인지 나의 몸은 나에게 더 많은 신호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목의 디스크는 호전되는가 싶다가 다시금 통증이 시작되었고, 그즈음 나는 알 수 없는 알레르기 증상으로 지속적으로 병원을 다니는가 하면, 두 번의 대장내시경을 받아야 할 만큼 장의 활동이 좋지 않았다. 내 몸이 계속 아픈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병원에서는 늘 원인을 모른다고 하였고 증상이 그리 심하지는 않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차라리 큰 병이라도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른다고 하니, 나는 스스로 내 몸을 챙겨보기로 했다. 목디스크에 좋다는 배게를 사는가 하면, 알레르기의 증상을 완화시키려 밀가루를 먹지 않았고, 맵고 짜고 차가운 음식과 유제품은 되도록 피했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지 않나. 스트레스는 몸을 아프게 하고 아픈 몸이 또다시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몸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했지만, 실제로 내 몸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많은 스트레스를 극복했을 때였다.


팀이 깨지고 행정적인 절차들로 이런저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나에게는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다양한 문제들이 안겨져 있었다. 팀원들과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고자 결정했던 그때, 회사에는 6000만원에 가까운 부채가 있었고 유동 가능한 현금은 이미 다 써버린 상태였다. 팀이 깨지고서 나는 사업을 배워가는 입장으로 도트윈이라는 브랜드를 다시금 만들어가기로 결심했었다. 투자사에 도움을 요청드려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 사업계획서를 검토받기로 했고,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이끌어갈지 도움을 받고자 했다. 자존심이 강했던 나는 평소 주변에 도움을 구하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정말 절박한 마음으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도 사업을 2년 이상하셨는데, 이런 거까지 알려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투자사 입장에서 고민이 있습니다
본인이 디자이너라는 생각으로 이렇게 자료를 준비해오시는 것 같은데, 비즈니스 현장에 있으면 비즈니스 용어를 쓰셔야 합니다


마냥 호의적일 것만 같았던 투자사는 나에게 냉정한 피드백을 줬다. 나는 매번 이를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 좋은 자료를 준비해 가려하곤 했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투자사의 반복되는 냉정한 평가에 나는 객관적으로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했고, 나의 역량과 능력이 비즈니스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은 그즈음 나는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를 이겨내 보고자 했던 나의 노력은 스스로를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 오히려 자책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투자사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조차 잃기 시작하자, 나와 나의 브랜드는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그즈음 몸의 증상은 점점 나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와, 나의 마음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면의 나를 지켜주기에는 나의 몸이 너무 약해졌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지부진한 나와 나의 브랜드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이를 이끌어나가야 했던 나는 스스로에 대해 실망했고, 자책했고, 좌절했다. 나 자신을 지켜내 주기에 내 몸은 튼튼하지 못했고, 그때 내게는 우울이 찾아왔다. 그로부터 약 2년을 우울과 함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30평이 넘는 작업실에 혼자 남아있을 때면,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찾을 수 없었다. 또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자존심 다 버리고 요청했던 도움들은 오히려 냉철한 비수로 돌아와 나를 더욱 아프게 하곤 했다. 그 시절 나는 많이 외로웠다. 그때 나는 한 회사의 대표이기 이전에, 스물네 살의 청년으로서도 긴 방황을 하고 있었다.


2017년 12월, 나의 증상은 점점 더 심각해져 상담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담을 가게 된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둔 메모가 있었다. 지금에서 이 메모를 다시 꺼내보니, 그때의 나는 꽤나 깊은 우울에 빠져있었더라. 우울의 감정과 더불어 대인기피 증상이 겪었던 나였다. 이 메모를 공유하고자 하는 것은 누군가 나와 같은 감정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이다. 당신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상담 때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우울한 감정을 느낍니다. 올해 1년 동안 너무 힘든 슬럼프를 겪고 있고, 요즘은 사람 한 명 한 명 만나는 것도 너무 힘듭니다. 조금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었는데도, 정말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우울한 감정으로 빠져듭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늘 만나오던 사람에게는 미움받고 있었겠구나. 실망시켰겠구나. 내가 믿어왔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합니다. 또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 소개를 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늘 자신감 있게 나를 소개하고, 나에 대해서 말하는 게 좋았는데, 요즘에는 무섭습니다. 나를 소개하는 차례가 오면,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되고, 나를 소개하고 나면 늘 후회해서, 늘 그 자리에 갈 때면 내가 처음 소개했던 그 모습에 후회를 합니다. 누군가가 도트 윈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혹은 도트윈에 대해서 알고 나에게 다가오면 무섭습니다. 내 나이를 알았을 때, 그들이 나에게 보여주는 실망한 표정과 내 부족함을 알았을 때 더 이상 영양가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떠나가는 모습들이 무섭습니다.

요즘에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아닌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다 내팽개치고 싶지만, 내가 이 일을 그만둠으로 주변에 남길 실망과 나의 실패가 무섭습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에 크게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내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열정이 넘치고, 누구보다 자존감이 높고, 당당했던 젊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2년을 셰어하우스를 살았는데, 늘 내가 같이 사는 이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과 나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방에 있을 때도, 음악소리 하나 높게 키지 못했고, 화장실을 갈 때면, 극도로 예민하게 생각했습니다. 전 주변에 늘 미안하고, 죄송하고, 잘못한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정신을 한번 놓으면, 과도하게 잠을 잡니다. 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생각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고, 힘들고, 짜증 나서, 그냥 다 잊고 싶고, 그냥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또다시 잠을 잡니다. 잠자는 순간만큼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근데 저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인데, 꿈에도 내가 걱정하는 것들, 그리고 주변의 실망감과 주변의 시선들이 나와서 너무 괴롭습니다.


나는 실제로 상담을 받으러 가지 못했다. 이 정도의 우울감은 누구나 다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의 우울감이면 상담받으러 가도 아무 문제없다고 얘기할게 뻔하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목디스크, 알레르기,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 내가 느끼는 증상들은 나에게 심각하게 다가왔는데 병원에서는 늘 원인이 없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꽤나 오래 들어왔던지라, ‘내게는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 우울도 전문가가 보기에는 별일 아닌 거겠지’ 하는 생각으로 결국 상담을 받으러 가지는 않았다. 우울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한 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폐업을 결정하고 난 후였다. '폐업을 해야 할까?'를 1년 넘게 고민했는데, 막상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우울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내게 남겨진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모든 것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자'는 결심을 했다. 우울을 극복해보고자 휴학을 하고 있었던 학교에 복학했고, 작업실은 다른 창작자들에게 쉐어하며 혼자 있는 시간들을 줄여보고자 했다. 그 시기 즈음부터 나는 '자존감 노트'라고 이름 지은 노트를 쓰기도 했다. 내게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는 말, 글, 생각 등을 메모장에 써두곤 했는데, 그것들이 하나씩 모이면서 나는 그것을 '자존감 노트'라고 불렀다. 나는 갖갖은 방법들로 내 육체적, 정신적 쇠약을 극복해보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자존감노트 중 일부


나는 오히려 혼자가 되고 나서 끼니를 잘 거르지 않고, 밥을 더 잘 챙겨 먹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일명 '혼밥'은 절대 못하는 성격이라 한동안 매 끼니를 포장해와 작업실에서 먹곤 했지만, 머지않아 식당에서의 '혼밥'은 내게 일상이 되었다. 나는 우울이 찾아온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처방해줘야 하는 것이 '하루 세끼를 모두 챙겨 먹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내 밥을 스스로 챙겨 먹으면서 우울감을 극복하기 시작했다. 사서 먹든 요리를 해서 먹든 밥을 챙기기 시작하면, 내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식사는 몸에 에너지를 돌게 한다. 본인의 식사시간을 낼 수도 없을 만큼 바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면, 그 회사는 실패한 회사이다.


나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빚을 갚아나가면서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은 여전했지만, 우울감을 극복하고 건강을 되찾아보고자 용기를 냈다. 가장 처음으로 시작했던 것이 클라이밍이었고, 그로부터 1년 뒤 요가를 시작했다. 일할 시간도 부족했던 내게 운동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라고 생각했던 나날들이 있었다. 내게 우울이 찾아오고서는 나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운동이 도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운동의 중요성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것이 좀처럼 쉽지가 않다. 남들이 다 헬스장을 간다고 똑같이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꾸준히 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운동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더라.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줄 수 있는 당신만의 운동을 찾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기 좋은 몸이 아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를 지켜줄 몸이다.


나에게 휴식이자 운동이 되어줬던 클라이밍


나는 우울에서 회복하는 데에 운동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찬 하루에서 운동하는 시간만큼은 그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회사를 창업하고 유일하게 후회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을 소홀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휴식을 취하고, 밥을 챙겨 먹고, 운동을 하고,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우리의 회사는 출근시간은 있지만 퇴근시간이 없었더랬다. 퇴근시간이 없으면 짧은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일도 '저녁 먹고 와서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일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게 했다. 회사가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으려면, 일 하지 않는 시간을 더 많이 챙겼어야 한다. 사회복지를 전공했다는 내가 그 당시에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요가를 시작하고서 나의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픈 몸은 마음을 지켜내지 못하고, 때로는 아픈 마음이 몸을 아프게 했던 것 같다.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건강은 '좋다'와 '나쁘다'로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건강은 언제나 좋고 나쁨 그 사이를 계속 오고 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건강하게 지속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나는 더 이상 뒷목이 아파 뒤를 돌아볼 수 없다거나, 원인모를 알레르기로 신경이 곤두서거나, 화장실을 자주가며 고생하지 않는다. 증상은 아주 드물게 나타나긴 하지만 예전과 달리 하루 이틀이면 금방 다시금 회복을 한다. 그토록 병원을 갈 때는 잘 낫지도 않았던 증상들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을 보면 나의 몸은 스스로 회복하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자연치유나 자가치료 뭐 그런 민간요법을 설파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나도 여전히 몸이 아프면 병원을 간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 제때 밥을 잘 챙겨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예전의 나를 돌이켜보면 나의 몸과 마음은 온종일 긴장해있었다. 불안과 초조함이 가득했고, 곤두서 있는 정신은 내 몸속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나 보다. 이제 나는 몸이 아플 때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를 먼저 확인한다. 스트레스는 다시금 나의 몸을 아프게 할 테니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긴장하지 않는다. 기운이 없는 날에도 밥을 챙겨 먹고, 귀찮더라도 꾸준히만 하자는 생각으로 운동을 하며, 휴식할 때는 죄책감을 갖지 않고 푹 쉬려고 한다. 여전히 잘 안 되는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도 나는 노력할 것이다.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기 이전에, 스스로가 지속할 수 있길 바란다. 당신이 당신을 챙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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