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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Oct 30. 2020

팀이 해체되고 폐업을 결심하다

포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쳤던 것들 중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책임감’이다. 어렸을 적의 나는 늘 시작은 좋지만 마무리가 아쉬운 사람이었다. 학원을 등록하면 의욕에 앞서 시키지도 않았던 공부까지 하면서, 늘 마지막에는 말도 없이 학원을 자주 빠지다가 결국 그만두곤 했다. 뭐든 의욕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마무리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마무리를 잘 못하는 나의 모습을 아셨는지, 무엇이든 시작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업을 시작하고 정처 없이 2년을 달려오고 나니 내게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꽤나 많이 쥐어져 있었다. 그 책임이란 내가 올곧게 믿었던 신념이기도 했고,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이기도 했고, 내가 사업을 하며 내뱉었던 말들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이었는지, 나는 그 많은 것들을 책임져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책임을 다하는 방식이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하는 것 또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었더라.


그날의 대화가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늦은 밤, 나와 재성과 애나는 여느 때처럼 각자가 좋아하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날의 대화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대화 도중 여러 차례 침묵이 이어졌다. 하우스메이트로 만난 우리들은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함께 취미를 즐겼고, 직장동료가 되어 함께 일을 했고, 같은 집에 살아가며 가족이 되어줬다.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던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소중했지만, 여느 친구관계처럼 자주 투닥거리기도 했다. 일을 함께하는 관계이니만큼 우리들의 관계가 회사에 영향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우리의 성숙하지 못했던 대화방식과 문제 해결 방식들은 회사를 운영하는 데까지 크게 영향을 줬다.


우리를 잘 알던 어떤 이는 나에 대해 "재형이는 도트윈 경주마 같은 사람이잖아"라는 평을 했다고 한다. 앞을 보는 사람과 달리 말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앞뒤 좌우를 살펴볼 수 있다. 이런 말들을 경주마로 참여시키기 위해 양쪽 눈의 일부를 가려, 뒤쪽과 옆쪽을 볼 수 있는 시야를 차단한다고 한다.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어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때의 나는 자존심과 고집이 세서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은 사람이었다. 재성과 애나의 생각을 듣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생각들을 주장하며 밀고 나가기 바빴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사업은 꼭 해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합의'했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은 그저 그들이 나의 고집을 꺾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업은 나만의 독무대가 아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같은 무대에 있는지 확인했어야만 했다.


우리의 대화는 꽤나 길어졌다.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것, 각자의 역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졌다. 하지만 나는 그날이 우리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 당시 내가 그들의 생각을 잘 수렴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더 나은 결정을 했을까? 그 당시 나는 그럴 재목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날따라 대화는 새벽이 늦도록 이어졌다. 아마 서로에게 쌓인 서운함이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는 서로가 원하는 방향이 조금씩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우리는 모두 지쳐있었다. 무엇이 재성과 애나의 동기를 떨어뜨렸는지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독단적이었던 나의 결정들이 그들을 좌절시켰을 것이다.


재성이는 나에게 도트윈은 본인이 원했던 것과 다르다고 했다. 그러고는 본인은 다른 길을 가고 싶다는 얘기를 전했다. 사실 나에게 그날의 대화는 큰 충격으로 남았었다. 나는 여태껏 우리가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본인이 원했던 것과 달랐다고 한다. 기지를 발휘하자던 우리는 진정 기지를 발휘해야 했을 때 그러지 못했다. 애나는 그날 본인의 생각을 더 고민을 해본 후 다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몇 일뒤, 고민 끝에 나를 찾아온 애나는 나와 둘이서라도 도트윈을 해보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우리의 팀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깨지고, 많은 것들이 내 탓이라는 생각에 자존감과 자신감은 바닥을 찍었다. 나는 애나에게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재성과 애나는 우리 회사의 주식을 처분하는 방향으로 정리하기로 했고, 회사에 남아있는 융자금은 온전히 내가 다 갚기로 합의를 했다. 그것이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책임 방식이었다.


그 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재성이는 함께 살던 쉐어하우스 디웰을 나갔고, 학교에 복학했다. 아마 그것이 그가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애나는 한 두 달을 힘들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서는 그녀가 꼭 가고 싶었던 회사로 이직을 했다. 3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 회사를 잘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어울리는 자리로 간 것 같다. 만약 그들이 도트윈을 나간 후 각자의 길을 찾지 못했더라면, 아마 나는 더 큰 죄책감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 준 덕분에 나 또한 그 시간에서 나의 길을 찾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혼자서 도트윈을 이끌어가야 했기에 나에게도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흰색 철문을 따고, 캄캄한 작업실의 불을 켰다. 동료들로 북적이던 우리의 작업실은 텅 비어있었다. 나는 외로움을 감춰보기 위해 쓰지도 않는 공간까지 모든 불을 켜 작업실을 밝혔다. 그러고는 적막한 공기를 가리기 위해 팟캐스트를 들었다. 무엇으로든 그 쓸쓸한 공간을 채우고 싶었던 것 같다. 혼자가 된 나는 모든 것을 처음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이 회사와 나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가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완전히 혼자가 된 것이 홀가분하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내가 원하면 누구의 동의도 없이 혼자 할 수도 있었고, 누군가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한 편의 위안이었다. 혼자였던 그 시간들은 스스로를 반성하게 했고 되돌아보게 했다. 오랜 시간을 거쳐 팀이 깨졌던 것은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벌어졌던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던 중 하루는 업계에서 존경하는 대표님을 찾아갔다. 진정성은 물론이고 사업을 이끌어가는 데에 수완이 좋으신 분으로 배울점이 많은 대표님이었다. 그가 그때까지 회사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버티기'를 잘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결국, 끝까지 버티는 것만이 대표로서 회사를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었다. 오래도록 버티고 나면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소셜섹터에서 성공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고 계신 대표님들을 상상해봤다. 그들은 모두 내가 존경할만한 사람들이었지만, 과연 내가 바랬던 모습이 그들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사실 나는 창업을 하고서 줄곳 나의 역할이 디자이너인지 회사를 운영해나가는 경영자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과연 나라는 사람은 한 회사를 이끌 대표로서 적합한 사람일까?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경험을 통해, 나에게 적합한 일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경영자로서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랜 고민 끝에 내가 내린 답은 한 회사를 이끄는 경영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디자이너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이 답을 내리기까지 1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다.


혼자가 된 1년 동안 도트윈은 예전처럼 제품을 제작했고, 점자를 각인했으며, 누군가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주변의 다양한 팀들과 협업도 계속적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2017년. 이 한 해는 짧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2017년 한 해, “브랜드를 정리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담은 이메일만 5건이 넘게 썼다. 전부 보내지 못한 메일이었다. 지금이 진정으로 정리를 해야 할 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조차 어려웠다. 정리를 하자니 나의 생각과 철학, 디자인스타일 등 20대 초반의 내가 가진 전부를 담아 만든 자식과도 같은 브랜드였기에 미련이 남았다. 내가 도트윈을 그만둔다고 하면, 주변에서 나에게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실망시키는 것은 아닐까, 사업으로 만났던 주변 사람들은 떠나가게 될까, 내가 이제껏 쏟았던 시간과 노력들은 전부 물거품이 되는 것일까 하는 고민들로 1년을 보냈다. 또 내가 시작한 일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은 나의 결정을 더욱 어렵게 했다. 나름의 답을 내렸다고 생각했지만, 브랜드를 정리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에는 꽤나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미숙한 부분과 잘하는 부분들을 구분 짓고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나가야 했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회사의 경영자로서 성장한 나의 모습은 내가 바라던 모습과는 달랐다. 도트윈이라는 회사는 '디자인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나의 신념이 오랜 시간에 거쳐 회사의 모습이 된 것이었다. 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디자인으로 담아내어 푼다는 것이 하나의 회사를 경영하고 운영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영에 역량이 부족했을뿐더러, 내가 잘하는 것은 비즈니스가 아닌 디자인이었다. 비즈니스와 디자인은 확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것을 조금 더 빨리 알았어야 했다.


1년의 고민 끝에 브랜드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던 것은 더 무책임한 결과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한 회사를 정리하는 데에는 수많은 것들이 연관되어있다. 사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회사를 믿고 투자해준 투자사를 비롯하여 주변의 많은 관계들도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 투자사와 주변 이해관계, 지인, 가족, 나 스스로를 위해서는 빠르게 의사결정을 해야 했다. 그들과의 진중한 대화들을 통해 나는 브랜드를 정리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당신이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진정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이 ‘회사를 만드는 것’인지, ‘창작의 주체’가 되고 싶은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회사가 성장한다는 것은 작년보다 올해의 매출이 많아야 하며, 회사에 속한 구성원들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것이 창업을 한 후 당신이 해야 할 몫인 것이다. 이 사실이 당신을 압박할 수도 있다. 이를 이겨내면서까지 당신은 회사를 창업하고 싶은가?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잘하는 일이 회사를 운영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당신이 무언가를 창작하는 예술가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당신이 진정하고자 하는 일이 회사를 만드는 것인지, 창작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기를 바란다.


나는 여전히 사업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하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내가 회사를 창업하고자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본다. 어머니는 내게 무언가를 시작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셨다. 그것은 ‘포기하면 안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당신이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한다면, 그 일의 책임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러고 만약 당신이 시작하고자 하는 일에 마지막이 있다면, 어떻게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포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본인의 부끄러운 민낯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인정하면서부터 용기가 조금씩 생겨날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회사를 정리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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