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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Nov 01. 2020

감사를 전하며

내 곁을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게


브랜드 회고록을 쓰고자 마음을 먹고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도트윈을 완전히 폐업하는데만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도트윈을 폐업하고도 1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쓰고자 했던 것은 아마 지난 시간들을 붙잡아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열여덟 고등 시절부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도트윈’이라는 브랜드 없이는 나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내게는 자식과도 같은 브랜드였으니까. 1년을 가까이 도트윈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며, 그때의 시간들을 새롭게 마주할 수 있었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그 많은 사건들 속에서 나에게 가르침을 준 것은 언제나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 세상을 구하는 이들을 보면 멋있어 보이지 않는가. 어쩌면 사회를 도울 수 있는 그런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그 순수한 마음이 지금까지의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가 고등 시절 사회적기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스물두 살의 나이에 꿈에 그리던 소셜벤처를 창업했다. 그러고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브랜드를 폐업하고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많은 시간이 지나긴 했나 보다. 이 책은 내가 가장 젊었을 시절, 순수하게 꿈꾸고, 이루고, 좌절하고, 다시금 일어났던 그 10년의 시간을 담은 것이다.


내가 써온 글을 보면, ‘나이’와 ‘시간’에 대한 내용이 자주 언급된다. 누군가는 이를 불편하게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일종의 ‘나이’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했던 나의 노력이었다. 스물두 살, 창업을 한 후 나는 줄곳 내 나이를 숨기기에 바빴다. 이제서라도 나는 나의 ‘나이’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보내온 젊은 날의 나의 ‘시간’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얘기해보고 싶었다. 나는 늘 누군가 내 나이를 물어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해왔다. 내 나이를 듣고서는 ‘대학 졸업은 하셨는지’, ‘군대는 다녀오셨는지’, ‘부모님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창업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와 같이 나의 사적인 정보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불편했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군대나 다녀오셔야 할 말이 있겠네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언제나 내게 ‘나이’는 콤플렉스와 같은 것이었다.


내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고 존중해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의 나이와 관계없이 나와 좋은 친구가 되어줬고, 또 나의 경력과 관계없이 좋은 업무 파트너가 되어줬다. 그들은 내가 그들보다 한참은 어린 나이임을 알았음에도 나에게 존대의 표현을 잊지 않았고, 그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와 관계없이 나를 존중해주었다. ‘나이’로 인해 늘 노심초사했던 나는 그들 앞에서만큼은 나이와 관계없이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었고, 나 또한 그들을 온전한 그들로 대할 수 있었다. 나를 대하는 그들의 행동들은 그들을 더욱 빛나 보이게 했다. 본인의 위치와 상관없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 그들은 나에게 ‘좋은어른’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창업을 하면서 좋은 투자사를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 듯하다. 나는 스물두 살 어린 청년들에게 투자를 결정해준 우리의 투자사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과연 그들은 나와 동생에게서 무엇을 봤던 것일까. 그들도 나와 동생의 ‘나이’, ‘경력’ 등에 관계없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바라봐줬고, 우리의 가능성을 믿고 투자해준 이들이었다. 내게는 ‘우리를 믿고 투자해주셨는데, 실망시켜드리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폐업을 결정짓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투자사 대표님에게 마지막을 이야기했을 때, 그는 나에게 실망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모든 투자는 리스크를 안고 하는 것이라며, 실패라고 생각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언제나 나를 ‘피투자사’가 아닌 한 명의 인격으로 존중해주었다. 한때 투자사는 내게 아픔을 주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기다려주었던 시간들 덕분에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이 10년의 긴 여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동생 재성이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나의 여정은 시작도 못했을 것이고, 이토록 오래 지속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2011년 소셜벤처경연대회를 출전했을 때도, 도트윈을 창업했을 때도, 그리고 도트윈을 폐업하였을 때도 언제나 그는 나와 함께 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처럼 쓰여졌지만, 사실은 ‘우리’의 이야기였다. 비록 그는 도트윈을 떠나기도 했었지만, 실은 내 곁에 남아 내가 도트윈을 온전히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꿈을 꿨고, 함께 성장했다. 그는 항상 나에게 좋은 조력자였고, 좋은 동료였고, 또 좋은 친구였다. 심지어 이 책을 끝까지 쓰기까지도 그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항상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성장해가는 그에게 감사를 전한다.


스물두 살, 나와 동생은 부모님에게 어떤 동의도 구하지 않고 법인회사를 설립했다. 동생은 이처럼 언제나 혼자였으면 절대 못했을 일들에 용기를 줬다. 스물두 살의 성인이다 보니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데에 부모님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었지만, 어머니는 그게 퍽 서운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우리의 이런 무모한 모습조차 응원해줬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도 우리가 창업한 것에 대해서 단 한 번의 반대를 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도트윈의 가장 큰 팬이 되어 언제나 우리의 행보를 응원했고, 아버지는 늘 멀리서 우리를 조력했다. 당신들은 언제나 우리가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게 하셨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든 응원했고, 항상 믿음으로 우리의 편에 섰다. 내가 폐업을 결정했을 때, 도트윈을 나보다도 더 아까워했으니 말이다. 당신들의 무한한 믿음 덕분에 나는 이 귀한 경험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된 듯하다. 늘 믿음으로 응원해준 나의 가족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시간들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그 시간들을 다시금 기억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써내려가는 동안 나는 과거의 나를 마주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고 다시 배울 수 있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나에 대해 꽤나 큰 자만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20대 초반의 내가 용기를 내어 창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만이라고 여겨지는 자신만만한 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모습이 나를 오래도록 지켜주지는 못했지만, 그 시절의 내가 한편으로는 대견하다. 20대 중반을 다가가면서 나는 타인의 시선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나 자신의 잃어갔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고 또 뭐가 나를 그렇게 주눅 들게 했었을까. 너무 꼿꼿한 갈대는 쉽게 부러진다고, 자만했던 나는 너무나도 쉽게 부러졌다.


회사를 정리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나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찾을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돌아 결국 다시 찾은 원점은 ‘디자인을 통한 사회복지실현’이라는 나의 미션이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에 꼭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게 그 방법은 비즈니스가 아닌 디자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찾은 답은 단순히 직업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무조건적으로 나를 확신하지 않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타인의 의견을 충분히 들으려 한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남들의 의식을 과도하게 신경 쓰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주변을 잘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진정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타인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나는 ‘배움’의 가치를 간과하며 지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도 자만했던 탓이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한 후, 요즘 나는 내가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가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이 책이 나올 때쯤이 되면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내게 비즈니스는 아니라고 했지만, 또 어디선가 창업을 해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창업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이 책이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줬을까. 당신에게 위로가 되거나, 용기가 되거나, 영감이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런 글도 책이 될 수 있구나’하며 당신에게 위로나 용기나 영감이 되었더라도 나는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를 그토록 성장시켰던 ‘소셜섹터’에서 만나온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곳은 나에게 두 번째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 덕분에 도트윈을 창업할 수 있었다. 도트윈과 함께 만났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영광스러운 경험이었고,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더라. 부족한 대표였지만, 도움을 줬던 모든 이에게 감사하다. 여전히 ‘소셜섹터’라고 불리는 이곳은 뜨거운 줄 모르고 성장하고 있다. 사회를 바꾸겠다는 그들의 열정이 우리의 사회를 얼마나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지 나는 안다. 이 사회를 바꿔나가는 이들을 가슴 깊이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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