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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Nov 01. 2020

사회적 기업가로 살았던 나의 청춘에게

감히 그대들을 심사해도 괜찮을까요?


"이번에 멘토로 참여해주시는 도트윈스튜디오 박재형 대표님입니다." (박수) 언제부터인가 나는 강단에 서는 일이 잦아졌다. 어떤 행사의 연사로, 혹은 누군가의 멘토로, 또 어떨때는 심사위원으로 초청되었다. 간혹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누구길래 이들 앞에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일까. 또 이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박수를 치는 것일까. 내가 그대들보다 무엇이 더 나은 줄 알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회사를 정리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더 커졌던 것 같다. 나에게 강연과 심사자리는 늘 영광스러운 기회였으나, 늘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했다. 내가 사회적기업에 대해서 처음 알았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열여덟의 여름이었다. 사회적기업에 대해서 처음 알고 8번의 여름이 지나는동안 나는 내 회사를 폐업하게 되었고, 나의 청춘은 나의 회사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창업을 하고 종종 인터뷰나 강연제안을 받아오곤 했는데, '멘토링'을 제안받은 것은 창업을 하고 2년정도가 지났을 때 였다. 처음 멘토링을 제안받았던 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멘토링을 받던 내가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야한다니 기분이 묘했다. 나에게 멘토링을 제안한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담당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니 부담가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사회적경제에 대해서 공부하고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나에게 청년 사회적기업가로서의 강연과 프로그램에 참가한 청소년 친구들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조언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처음 사회적경제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2011년, 열여덟 고등학생일때였다. 2011 소셜벤처경연대회의 참여로 알게된 ‘사회적기업’은 내 삶을 바꿨다고 할 만큼 나에게 큰 영향을 줬다.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이 업계에서 일을 해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런 내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국내의 경우, ‘사회적기업’은 정부에 의해 주도되었던 영역이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2010년에 설립되었는데, 내가 소셜벤처경연대회를 출전했던 그 해가 2011년이었으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교육이 있을리 없었다. 그 당시, 나와 동생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아카데미를 쫓아가서 수업을 듣곤 했다. 그러니 내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프로그램이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관련 교육 및 강연에서 제안이 오면 늘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고등학생 시절, 사회적기업에 대해서 알게 된 후 나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린 것과 같았다. 그것이 더 넓은 의미에서 '사회적 경제'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추후 알게된 사실이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사회적 경제'와 관련한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의 내가 처음 사회적기업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봤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단순히 '사회적기업'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러한 교육은 사회문제를 발견하는 눈을 가지게 했고, 문제를 해결하는 머리를 발달시켰으며,  사회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처음 멘토링을 제안받은 이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는 다양한 행사에 나를 초대해줬다. 청소년을 대상으로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을 부탁받는가하면, 그 다음해에는 대학동아리지원사업의 심사를 제안받기도 했다. 그러고는 2019년 여름, 나에게 전국 소셜벤처 경연대회 청소년 부문 심사역을 제안하는 연락이 왔다. 나는 순간 8년전 2011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의 발표현장에서 긴장한채로 심사위원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열여덟의 내가 떠올랐다. 내가 청소년시절 참여했던 그 대회에서 나에게 심사위원을 제안한 것이었다. 생각만큼 이 제안은 나를 기쁘게 하지 않았다. 나를 불러준 이들에게는 너무 감사한 일이고, 나에게도 너무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내가 과연 그대들을 심사할 수 있는 자격의 사람인가를 고민해야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고민을 했다. 과연 내가 가도 되는 자리인지. 아무리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라고 해도, 스물 여섯의 나에게 그 대회의 심사위원 자리는 특별한 의미였다. 잠깐의 생각 후 청소년 부문 심사역을 수락한 것은 내가 그만한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업계에서 유일히 같은 열여덟살에 그 무대에 서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였기에, 나만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심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심사위원의 제안을 수락하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들이 대회를 준비하며 적극적으로 실천했던 경험들이 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또 그것이 오래도록 남아 사회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야를 바꿔줄 것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그들 중 성과가 좋은 팀이 있는가 하면, 성과가 아쉬운 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이룬 성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낀 감정들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발표자도 아니었음에도, 긴장을 한 탓인지 나는 행사장에 조금 늦게 도착했다. 행사가 시작하기 전이라서 다행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각 부문별로 심사위원이 위치했다. 청소년부문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그들의 발표를 듣고 있는 순간순간, 8년전의 내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맑은 두 눈동자로 그들이 해온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모습은 멀리서도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실제로 대단했고, 무엇보다 그들의 열정은 진정성이 있었다. 사회를 바꿔보겠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열여덟의 나와 동생의 모습 같았다. 워낙 유능한 심사위원들과 함께 심사를 했기에, 나는 기술적인 측면의 피드백은 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대회를 준비하며 배운 것과 느낀 것,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중점을 뒀다. 나는 나의 질문을 통해 그들이 이 대회를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남긴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청소년 부문의 심사를 끝내고, 최종수상발표를 하는 행사까지는 시간이 꽤 비었다. 함께 심사한 심사위원들은 먼저 자리를 일어났지만, 나는 그들이 직접 수상하는 모습까지 보고싶었다. 결과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수상결과가 궁금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열여덟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영광에 함께하고 싶었다. 나는 그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청소년 부문 대상에 나와 동생이 호명됐을 때 그 순간을. 우리의 이름이 호명되고 상을 받으러 올라가는 순간부터, 상을 받고 내려와 함께한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엄마의 축하를 받고, 부산에 계신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그 기쁜 소식을 알렸던 그 모든 순간들을 기억한다. 어쩌면 나는 그 시절의 내 모습을 회상해보고 싶어, 그 자리에 앉아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나와 동생은 대학을 갔고, 대학을 다니면서 소셜벤처를 창업했고, 투자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각자의 길을 찾아 서로 헤어졌고,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했고, 빚을 갚아나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느새 이 긴 여정을 시작하게했던 경연대회의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있더라. 나는 이제 곧 이 여정을 끝내려 하는데 말이다. 사회를 바꾸겠다던 열여덟 나의 순수한 생각은 현실에 부딪혀 나는 좌절시키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창업이라는 것이 내가 발표했던 것처럼 나의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님을 알았다. 때로는 사람한테 상처를 받고, 때로는 사회에 실망하기도 했다.


나는 그해 겨울, 12월의 마지막날 폐업을 했다. 내가 그 대회의 심사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은 아마 과거의 나와같은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011년 소셜벤처 경연대회를 시작으로 2019년 폐업을 하기 까지, 8년의 시간이 흘렀더라. 어쩌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이토록 달려온 것을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내게 전부와도 같았던 도트윈이라는 브랜드를 놓아주는데에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고민의 시간을 지나, 인정을 하고, 또 이를 정리하는데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동안 나는 또 다시 성장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도트윈스튜디오의 대표로서 살았던 나의 청춘에게 위로를 건내고 싶다. 예상처럼 흘러갔던 것은 없었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나를 잃기도 했고 또 나를 찾기도 했다. 막상 작별을 고하는 지금, 내 감정은 생각보다 무던하다. 이 글을 온전히 끝내고 싶다는 생각 뿐, 도트윈에 대한 어떤 미련이나 아쉬움은 크지 않은 듯하다. 이런 이별을 맞이하고 싶어,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나보다.


폐업신청은 생각외로 간단했다. 마우스클릭 몇 번이면 끝나는 과정이었더라. 그토록 어렵게 일궈온 나의 회사였는데, 마지막은 이렇게 쉽게 끝날 수 있는 것일까. 허탈하기도 했다. 나는 나의 브랜드와 온전히 이별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부족하고 못난 창업자를 만난 나의 도트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의 브랜드와 함께한 나의 청춘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다. 그래도 도트윈과 함께 했던 시간, 그 속에서 성장했던 나와 도트윈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내겐 전부와도 같았던 나의 브랜드 도트윈에게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한다. 굿바이 마이 리틀 브랜드 도트윈. 잘가라 작고 소중했던 내 브랜드 도트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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