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독자였던 언니들에게
내가 처음으로 좋아한 가수는 슈퍼주니어다. 남들 다 가는 학원에 다니지 않아서 지루했던 2006년 여름방학에 우연히 쥬니어네이버에서 U의 뮤비를 본 순간, cuz I can’t stop thinking ‘bout 슈주. 학교에서 영어를 열심히 배울 때이기도 해서 나는 슈퍼주니어의 스펠링을 열심히 외웠다. 동생한테 슈퍼주니어의 춤을 선보이고, 같이 뮤직비디오를 봤다. 그렇게 유구한 덕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학교에선 같이 슈퍼주니어를 얘기할 만한 친구가 없었다. 그 친구들과는 당시 인기 만화였던 슈가슈가룬이 추구해야 할 방향과 캐릭터의 입체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그냥 쇼콜라와 바닐라 흉내를 냈고, 공기놀이나 줄넘기를 했다. 대신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 카페에서 사귄 친구들과 슈퍼주니어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대부분 고등학생이었고, 미숙했던 내게 많은 문화를 알려주었다. 또 직접 만든 쿠키와 손편지를 보내줬고, 슈퍼주니어 사진과 스티커를 제작해 나눠주기도 했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어린 동생한테 이렇게까지 베풀어주다니. 나는 언니들의 정을 그때 처음 느꼈다. 그때 받은 편지들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내가 활동했던 카페에선 회원들이 직접 쓴 팬픽을 올리는 게시판이 있었다. 팬픽을 처음 접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신세계가 이런 걸까? 복도를 걸어다니며 책을 읽다가 혼날 정도로 활자 중독 어린이였던 나는 이곳이 바로 성지였던 것이다. 언니들이 쓴 팬픽을 읽으며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팬픽 게시판엔 일정 등급 이상이면 아무나 게시글을 올릴 수 있었으므로 나는 11살에 팬픽 작가가 되었다.
다만, 나는 팬픽의 주인공을 초등학생으로 설정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아는 세계는 초등학교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용은 좋은데 주인공이 너무 어려요.” 하는 몇 개의 피드백을 받고 내상을 입었다.
팬픽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유명작을 모조리 찾아 읽었다. 몰입은 나의 재능이었으므로 학교에 있는 시간과 피아노 학원에 있는 시간, 방과 후에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컴퓨터 앞에 앉아 팬픽을 읽었다. 팬픽을 읽으며 매일 울고 웃었다. 팬픽은 내게 문학 그 이상의 의미였다.
그렇게 명작을 섭렵한 뒤, 심기일전해 다시 팬픽을 썼다. 주인공을 고등학생으로 설정한 학원물이었다. 고등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티가 확연히 났을 것임에도 카페의 언니들은 실력이 많이 느신 것 같다며 따뜻한 댓글을 달아줬다. 나에게 가장 행복감을 줬던 댓글은 “다음 글이 기대되네요.” 하는 댓글이었다.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니. 11년 인생 최고의 쾌감이었다.
그 후로도 몇 개의 글을 더 올렸지만, 나는 쓰는 것보다 읽는 것에 더 재능이 있다는 걸 깨닫고 팬픽 쓰기를 중단했다. 카페 활동도 자연스레 뜸해졌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약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나는 글과 먼 사람이었을 것이고, 이 글도 당연히 쓰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나에게 존경심마저 든다. 서툴고 조잡했을 초등학생의 글을 무시하지 않고 감상해준 익명의 언니들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