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애정을 위한 헌정과 아우라]

{1. 거울로 보는 시의 표정 찾기}

by 이승섭 대중문화평론가
[필자 저서]


시는 시인의 표정이다. 꾸밀 수도 없고 절대 우회가 없는 정신의 내밀한 고백이기에 어떤 계측보다 정확하고 정당하다는 점에서 시인이 쓴 시는 곧 자신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이치에 접근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는 곧 시인의 정신을 나타내는 온도계이고 정직한 삶의 표정이 담기기 때문이다.

물론 시적 장치 -

비유에서 은유 혹은 직유나 상징 혹은 역설 등의 장치를 통해서 의식을 기록하기 때문에, 언제나 낯설게 하기라는 장치를 가동하지만, 시의 특성을 열어보면 대부분 자기를 나타내는 방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닌 진실성에 무게를 갖는다

자기를 꾸미는 것, 혹은 과장하는 것과 진실성은 확연히 다른 것이다. 진실한 삶의 바탕 위에서 시의 요소로서의 의상을 입는 방법을 갖출 때, 그의 시는 진솔성에서 감동이 따라오는 것이다. 이런 기저에서 시는 곧 그 시인의 자신을 나타내는 그림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는 데는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서 시인 정신의 응축을 나타내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을 보여주는 거울이고 삶의 표정이며 또한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이라면 시인은 정성을 다해 자기를 표현한다. 독자가 한 권의 시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그런 점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거울 보기라는 뜻이다. 거울 속에 시인의 모습을 독자는 자기화의 거울로 환치할 때, 문학적인 감동에 숨은 교훈적인 가치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2. 거울 속 무엇?


1) 삶의 거리의 조정


시집 제목인 거리(distance)는 삶과 가장 상관을 갖는다. 가까이는 부모나 애인 등의 거리를 위시해서 멀리 사회적 거리에 이르기까지 삶이란 늘 거리에 속한다.

이는 관계 설정이고 이 한계는 곧 사회생활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엔 공간(空間)이라는 영역에서 접촉의 빈도와 경계선의 의미로 한정하는 뜻이 내포되는 것이다. 넓게는 국가라는 경계선을 위시해서 좁게는 집과 집 그리고 개인과 개인이라는 경계는 언제나 그리고 항상 의미로 작동되는 것이다.

아울러 경계의 침범은 전쟁이나 이기 다툼의 살벌한 싸움도 곧 거리에 따른 자기 지키기 혹은 그런 정리에서 비롯된다.


거리에 대한 정리는 Edward T. Hall의 이론이 가장 유명하다. 4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친밀한 거리(intimate distance)는 자신과 타인의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가장 근접의 거리로 15cm에서 30cm라고 하면서 남녀 간의 관계나 부모 간의 거리를 뜻한다

2. 사적인 거리(personal distance)로는 보통 30~60, 내지 90cm 정도에 해당하며 대개 친구들 간의 있게 되는 거리를 의미

3. 사회적 거리(soccial distance) 보통 120cm의 거리로써 사람들이 사회적 상황에서 맞게 되는 거리를 의미한다. 이 같은 거리에서 상거래나 취직 면접 혹은 복도나 길에서 인사하고 지나는 거리를 말한다.

4. 공적인 거리(public distance)는 겨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210cm~280cm 이상의 거리이다. 이에는 사람들의 공적인 모임 혹은 정원을 낀 정도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거리라고 말한다. 고산지 시인의 시로 인용해서 말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다가서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거리가 있지요

서로에게 다가가서

모음(母音)은 모음끼리

자음(子音)은 자음끼리

삶이라는 무대를 연출하지요.

먹거리를 가진 자 먹거리를 나누고

일거리를 가진 자 일거리를 나누고

근심거리 가진 자 근심거리 나누면서

어우러져 부대끼며

살아가게 되지요.

거리를 걷다가

낯선 사람 만나면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며

필요한 거리를 나누게 되지요.

다가가 나누면서

함께 걷는 거리에는

우리들의 꿈이 녹아 있지요.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지요


<거리>에서


거리(距離)는 접촉에 대한 원근(遠近)이 작용이 되면서 사회생활의 일들이 파생되고 또 접촉에 따른 친밀도가 나타난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거리를 조정하는 일이고 이로부터 희로애락의 일들이 파생되며 인연이라는 줄기가 연결 고리로 작용하면서 일생을 살아간다.

마지막 시어인 “우리들의 꿈이 녹아 있지요.”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지요”의 파생은 결국 거리의 조정에 따른 일들이 의미역을 형성한다. 이는 “어우러져 부대끼며/살아가게 되지요”의 생활 모습은 자음은 자음끼리와 모음은 모음끼리의 유유상종을 이룩하는 의미로 상징성을 갖는다. 물론 자음과 모음이 결합하여 비로소 언어의 기능하는 이치를 대입하면 인간의 경우 여자와 남자 또는 해와 어둠이라는 이원성의 결합은 분리가 아니라 자연의 이치이면서 조화를 상징할 때, 비로소 인간의 삶에 대한 무대는 넓고 깊은 유대로 이어질 것이다.

나, 거울이고 싶네.

숱한 사물 거부하지 않고

보는 대로 보여주는 거울이고 싶네

나, 거울이고 싶네.

셀 수 없는 시간 가리지 않고

묵묵히 수용하는 거울이고 싶네

나, 거울이고 싶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주는 거을 이고 싶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이승섭 대중문화평론···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현 :금요저널 주필. 칼럼리스트. 대중문화평론가 전(사) 한국 한울문학 예술인협회 회장 3년 역임. 한국 예술인협회 사무총장 역임 (작가나 시인이 되고자 하시는 분만 일독을 권함

1,24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숨김의 미학과 이미지의 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