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할미 May 15. 2024

홈메이드 쑥 인절미 놀이


 서울 충정로에 사는 막내 여동생이 11년 전, 충남 부여 외곽 내산면에 지은 세컨 하우스에  들렀다. 97세 친정엄마랑 집주인 포함 세 딸이 함께 한 4박5일 봄나들이. 늦게 핀 겹벚꽃이 진다는 소식 때문이기도 했다.     


 창고 면적 포함 11평 정도로 자그마한 집이다. 수북이 쌓인 연분홍 꽃잎들이 전하는 벚꽃 엔딩! 잠시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데 눈을 돌리니 마당 꽃들과 나무들 사이에 쏙이 지천이다. “쑥부터 캐자.” 누군가가 외치자, 저마다 엉덩이 방석을 끼고 과일칼과 가위를 든 채 흩어진다. 텃밭 뿐 아니라 마당 꽃밭까지 우리 모두 좋아하는 나물 캐기 놀이마당이 된다. 엄마가 제일 신나 보인다. 이래봬도 농경시대, 쌀농사 지역에서 태어난 딸들이다. 쑥 캐는 재미에 순식간에 빠져버린다.       


 1시간도 안 돼 바구니와 비닐봉지들을 가득 채운 쑥. “이걸로 뭘 하지?” “쑥 부침개 만들고 쑥국 끓일까?” 다들 고개를 끄덕끄덕.  당장 쑥을 다듬고 씻기 시작한다. 그러나 많아도 너무 많은 쑥. 국 끓이고 부침개 부쳐서 해결될 물량이 아니다. 

    

 그렇다면 쑥인절미가 아닌가? 동네 방앗간에 가야한다.  하지만 바야흐로 쑥인절미의 시즌,  동네 방앗간은 밀려드는 쑥 보따리로 설 대목이 부럽지 않은 호황을 누린다나. 동네 모든 할머니들이 쑥인절미나 쑥절편을 만들어 도시의 아들딸네 집으로 택배를 보내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에나 우리 쑥인절미 예약 대기가 가능하단다. 그렇다고 포기할 막내가 아니다. 즉시 ‘쑥인절미 집에서 만들기,’  폭풍 검색을 시작한다. 혹시나 싶어, 도깨비 방망이로 불리는 핸드 블렌더와 찹쌀가루, 볶은 콩가루도 미리 주문해 뒀다나. 모녀단의 봄놀이로 이보다 더 재밌는 게 있을까 싶었다는 막내다. 은밀한 기획과 준비에 모두 흥분한다. 흙 놀이를 좋아하는 노모에게 부여집에 딸린 작은 부추밭을 선물한 것도 그녀. 꽃과 나무를 좋아해 심고 가꾸기에 진심이다.    

  

 막내가 잘 씻은 쑥에 소다를 조금 넣고 삶아 잘게 썰어놓는다. 핸드 블렌더로 갈아 낼 차례.  이때 쑥의 입자가 조금씩 남아 씹히도록 갈아내는 게 꿀 팁. 그 다음, 찹쌀가루를 섞어 버무린다. 소금과 설탕을 넣는다.  수제비보다 조금 무른 농도로 반죽을 만들어 전기밥솥에 넣고 만능취사 버튼을 누른다. 반죽의 양에 따라 20분 내지 40분 정도 기다리면 된다.      


 큰 쟁반에 랩이나 비닐을 깔고 볶은 콩가루를 펴놓은 뒤 뜨거운 반죽을 꺼내 펼친다. 그 위에 또 한 번 볶은 콩가루를 골고루 입혀 주무른다. 플라스틱 접시나 칼을 사용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면 완성. 물론 손으로 반죽을 조금씩 떼어내 콩고물을 입혀도 좋다. 손맛 더 가득한  쑥인절미를 빚어내는 방법이겠다.   

  

 난생 처음 홈메이드 쑥인절미를 성공시키다니. 자랑스럽다. 흥분에 겨워 인절미 쟁반을 끌어안고 자랑스런 인증샷을 남긴 후 달려들어 함께 먹방 시작. 진한 쑥향과 고소한 콩고물 범벅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황홀하다. “바로, 이 맛이야!” 다들 웃고 떠드느라 집이 떠나갈 듯하다.    

   

 어릴 적 쑥국을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쓰디쓰기만 하던 쑥의 맛이나 강렬한 쑥향이 어지럽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들판에 아무렇게나 돋아난 풀이었던 쑥과 친해진 건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본 다음이었을까.    

 

 쑥인절미엔 설탕으로 덮어버릴 수 없는 쌉싸름함이 있다. 씨앗을 뿌리거나 제철에 신경을 써가며 모종을 옮겨 심지 않아도 어디서나 쑥쑥 자란다. 발 맡에 밟혀도 다시 일어나는 생명력!  가냘픈 겉모습을 지닌 한낱 들풀이지만, 어쩌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불끈 일어나는, 이 땅의 사람들을 닮은 것 같다.   

  

 쑥의 색깔은 말 그대로 쑥색. 밋밋하다.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는 컬러는 아니다. 자기주장이 없는 듯 순한 색감. 하지만 일단 데치거나 삶으면 확연히 강한 톤의 쑥색이 발현된다. 천진난만하던 소녀시대를 지나 세상사의 단련을 거치며 강한 전사로 거듭난 중년 여성의 의젓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쑥인절미는 쓴맛과 단맛, 삶의 희로애락을 통과해온 이들이 공감하는 세상살이의 맛이 됐을까. 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 쑥인절미의 맛을 강요할 수 없다. 나도 그 시절엔 쑥을 그저 쓴맛으로만 여기지 않았던가. 그들 또한 어느 순간 쑥인절미에 입문할 것 같다.     

  

 지는 겹벚꽃을 바라보며 쑥인절미를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엄마는 깔깔 웃는 중년의 딸들을 바라보며 기뻐하신다. 쑥인절미를 다섯 개의 봉지로 나눠담는 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윽한 눈빛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 순간을 영원처럼 안고 계신 엄마. 그렇게 엄마의 봄날과 딸들의 봄날이 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