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시기별로 제때 배워야 하는 일들이 있다. 갓난아기가 기어 다니다가 곧 걷고 또 뛰는 것은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해나가는 일이지만, 어떤 것들은 교육과 꾸준한 연습으로 익숙해지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알약 먹기와 자전거 타기 같은 것이다.
약국에서 일하며 알약을 못 삼키는 성인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방전을 내밀며 미안한 목소리로 가루약으로 해줄 수 있냐고 요청하곤 하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대부분 여자라는 사실이다. 내 경험에 한정된 사실이긴 하지만 알약을 못 먹는 사람들 중에 남자는 없었다.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부모들의 양육방식과 관련된 것일까? (아들은 어릴 때부터 용감해야 되고 알약도 못 삼키면 안 된다고 교육받고, 딸은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된다'는 식 아닐까? 물론 나의 추측이다.)
예전에 약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10살짜리 여자 아이가 엄마와 함께 처방전을 들고 약을 타러 왔는데, 아이는 알약으로 조제해 주고 엄마는 가루약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의아해서 혹시 반대로 말한 건 아닌가, 하고 한 번 더 확인하는데 아이가 엄마에게 알약도 못 먹는다고 놀리는 것이었다.
"우리 엄마는요, 알약도 못 먹어요! 저는 알약 먹는데요, 엄마는 못 먹어요"
사실 알약을 잘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알약을 못 삼키는 것이 이해가 안 될 법도 하다. 어떻게 하면 된다고 가르쳐줄 수도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냥 입에 넣고 물먹고 꼴깍 삼키면 되는데 그걸 대체 왜 못 먹는 거지?'라는 의문을 가진다. '가루약이 더 쓰고 먹기도 힘든데 그냥 알약을 먹으면 될 텐데'라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초보 약사 시절 바로 내가 이렇게 생각했다.
그날 저녁 운동길에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문득 약국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걸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비 오는 날이면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만 핸들을 잡고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다. 솔직히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거의 서커스 기예단을 보는 느낌이다.
나도 자전거를 안 타본 것은 아니다. 어릴 때 세발 자전거에서 두발 자전거로 넘어가기 전,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로 연습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연습을 해도 계속 균형을 못 잡고 이리저리 넘어져서 다치는 바람에 그만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좀 힘들더라도 계속 타서 배웠어야 했나, 하는 후회도 있지만 과거의 나에게 자전거는 멍들고 피나는 아픈 기억만 남겼기 때문에 다시는 타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알약을 못 먹는 사람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아마 어릴 때 부모님의 권유로 시도는 해봤겠지만 알약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고 목에 걸려 고생을 한 경험이 있다든지, 트라우마 같은 게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알약을 못 삼키는 본인 마음은 오죽 답답할까. 아마 누구보다도 본인이 제일 답답하고 불편할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어갈수록 절대 안 되는 일이나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의 경험치가 쌓이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너그러워지고 사고방식 또한 좀 더 유연해진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내 기준에 맞춰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