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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약사 Nov 13. 2021

설사약 하나 줘요!

"약사님, 나 설사약 하나 줘요!"


이런 말을 들으면 요즘은 한 번 더 생각하고 묻는다. 지사제를 줘야 될지, 변비약을 줘야 될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다.

            

예전에는 설사약을 달라고 하면 당연히 설사가 나니까 지사제를 달라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말은 실제로 지사제를 달라는 의미인 경우도 있지만 반대의 의미인 경우도 있다. 약국 근무를 오래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변비라서 변이 안 나오니까 설사가 나오게 하는 약'을 달라는 의미로 '설사약'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데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 잠시 앉아서 쉬는 중이었다. 60대 중반쯤 된 아주머니께서 약국으로 들어오더니 역정을 내셨다.


"아니 내가 설사약을 달랬는데 이걸 주면 어떡해! 안 그래도 화장실을 못 가는데 이거 먹고 일주일째 화장실을 못 가서 갑갑해 죽겠어. 바꿔줘!" 


무슨 약인지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지사제였다.


"어머니, 설사약을 달라고 하시니까 이걸 드렸죠... 화장실을 못 가시면 변비약을 달라고 하셨어야죠;;"


"응...? 그래?!(잠시 정적) 암튼 그럼 그걸로 좀 줘봐! 아휴 갑갑해 죽겠어."


약국 일이라는 게 손님이 조금씩 꾸준히 오는 게 아니라, 폭풍우같이 몰아칠 때는 정신없이 바쁘고 반대로 한가할 때는 한참을 조용히 앉아있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처방 조제와 복약 설명으로 바쁠 때는 여유가 없어서 환자의 말만 듣고 바로 약을 건네줄 때도 있다. 사실 한두 마디 대화를 더해보면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부분인데, 그 아주머니도 아마 바쁜 시간에 와서 약만 사 가지고 간 경우인듯했다.


안 그래도 변비 때문에 고생하셨을 텐데 지사제를 먹고 얼마나 더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생각을 하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변비약을 드리며 한 번 더 신신당부를 했다. 


"어머니, 다음에는 꼭 변비약 달라고 하셔야 돼요. 아셨죠?"


나도 요즘은 설사약을 달라고 하는 손님에게는 한 번 더 꼭 묻는다.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을 드릴까요? 아님 화장실을 못 갈 때 먹는 변비약을 드릴까요?"


바쁠 때도 한 번 더 질문을 하고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다정한 배려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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