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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초순보기 Jul 05. 2022

할머니 육아 감격의 그날

아침 sns에 과거에 올렸던 소식이 알림으로 왔다. 평소에는 알림이 오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호기심이 발동했다. 과거의 오늘? 내가 어떤 내용을 올렸을까?   9년 전 오늘은 나와 신랑이 감격에 취했던 날이었다. 다름 아닌 손녀가 처음으로 걷기 시작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손녀는 태어나자 마자 우리 집으로 왔다. 2013. 4.5일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처음으로 손녀가 우리 품으로 들어왔던 날이기 때문이다.  딸이 출산을 하러 병원을 간다는 연락을 받고 어떻게 병원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속초에서 서울까지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꼭 움켜쥐고 병원까지 도착했던 기억만 떠오른다.


처음 면회가 되고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그 많은 신생아들 틈에서 손녀를 대번 알아볼 수 있었다. 딸을 처음 낳았을 때 그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첫 만남 이후 출산휴가가 끝나는 3개월 후 손녀는 우리 집으로 왔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의 중심은 손녀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남편과 나의 개인생활은 다 내 팽개쳐도 좋을 만큼 하루하루가 신세계였다.


손녀딸을 낳을 당시 딸은 육아휴직을 낼 상황이 아니었기에, 엄마가 봐주마 하고 데려 왔다. 직장 생활하는데, 엄마가 어떻게 봐줘하며 걱정을 하였지만, 엄마한테 그냥 맡겨, 그 한마디만 던졌고, 우리 부부의 손녀 육아가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먹을 분유는 통통이 담아 소분해 놓았고, 기저귀며, 갈아입을 옷을 다 개어 놓았고,  아이의 용품을 준비하는 것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재확인하였다.  하지만 나의 출근 준비는 로션 하나 바르는 것으로  끝내고, 누워 있는 아이를 쳐다보며, "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있어 ~~" 하면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옹알이 를 하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한참을 아이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리고 있으면  낮동안 손녀를 돌봐줄 사람인 내 동생이 도착한다.


출근을 해서 업무를 하는 동안에도 나의 정신은 온통 손녀딸에게 가 있었다. 우유는 잘 먹고, 잘 자고 있는지, 궁금했다. 사정을 알고 싶어도 간섭하는 것 같아 연락도 못하고 있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부리나케 달려 집으로 왔고, 낮 손녀의 상태를 전달받았다.


퇴근 이후 가장 먼저 한일은 아이를 메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세상 견문을 넓혀 주겠다는 이유로  가까운 바다로 나가고, 시장으로 나갔다. 서점에도 데려가고, 속초에서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지만 몇 번이고 갔다. 아이가 처음 보는 세상을 다양하게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많이 간 곳은 이마트 2층 가장 안쪽 공간이었다.  그곳은 손녀가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다양한 열대어가 어항 속에서 놀고 있는 곳이었다. 또 어항옆에는 햄스터와  도룡농 등 작은 동물들이 쉴새없이 움직였고, 쳇바퀴를 돌렸다.


아이는 그런 동물과 열대어에서 눈을 떼지 않아고, 알아 들을수 없는 말을 내 뱉었다. 같은 동물을 그림으로 보여주어도 별반 관심이 없었지만,  아이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에는 반응했고 좋아했다.


 추운 겨울은 바다로 산으로 갈 수 없어 출퇴근하다시피 이마트로 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수많은 동물과, 꽃, 생물을 보여준 손손녀는현재 관심이 없고,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둘쩨가 관심이 많고, 생물학 자겸 과학자가 꿈이다)


주말에는 좀 더 멀리 나갔다. 인근 고성과 양양으로. 축제장은 더 자주 갔다. 축제장에서는 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모두 누구냐고 물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셋째냐는 말이었다. 그때 당시 우리 부부 나이는 50을 갓 넘겼던 때라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늦은 나이에 셋째를 낳는 사람도 당시에는 유행이었으니까.


아이의 성장 속도는 육아수첩에 나와 있는 데로 잘 커가고 있었고, 매일매일 딸 부부에게 보고를 했다. 책 속에 나와 있는 성장 속도에 맞추어 잘 크고 있었지만, 걷는 것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집 아이들은 모두 돌 전에 걷는다는데, 우리 집 손녀는 돌이 지나도 걸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아니다. 기어 다니지도 않았다. 앉아서 엉덩이로 날아서 다녔다. 엉덩이를 들어 올려 통통통 하며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했다.  우린 그 모습이 신기해서, 일부러 시켜 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돌을 지나고도 두 달이 지났는데, 아이는 걸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육아책에 적혀 있는 데로 분유를 먹였고, 이유식까지 했다. 아이 전용 냉장고도 들였을 만큼 아이 먹거리에 대해서는 철저를 기했다.


제 엄마가 15개월을 넘겨서 걸었는데, 그 딸도 그렇겠지.. 하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가 걸을 수 있도록 퇴근 후  걷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장난감도 사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걷지를 않았다. 아예 걸으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여전히 통통 걸리며 엉덩이로 다녔다.


그런데 2014. 7. 5일. 오늘로부터 9년 전이다. 그날도 우리 부부는 퇴근 후 아이를 데리고 영랑호를 갔다. 영랑호 둘레길에  넘어지려는 아이를 억지로 세워 놓고, 우리 부부는 멀리 떨어져. " 보배야!! 보배야!! 할아버지한테 와봐 ~~" 아이는 뒤뚱뒤뚱하더니 풀썩 하고 엉덩이를 땅바닥으로 탈썩하고 주저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내가 달려가려고 하자, 남편이 가만있어보라며, 다시 아이를 불렀다. 그런데 아이가 일어나더니 한 발을 떼는 것이다.


한 발을 뗀 후에는 다시 넘어졌다. 우린 흥분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잘했다며, 사진을 찍고, 제 부모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야말로 호들갑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걷기 시작했다.


만 15개월이 지나도록 걷지 않던 아이가 지금은 다리로 하는 스포츠는 모두 잘하고 있다. 겁이 많아서 서는것도차 두려워하던 손녀가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고, 댄스를 배우고, 늘 뛰어 다닌다.


아이가 15개월이 지나, 제 집으로 돌아가고,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조부모 육아는 끝이 났다. 하지만 처음 손녀딸이 걷던 날 7월 5일,  할머니 육아를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그때처럼 걷지 못해서 애태우지도 않고, 등교 준비를 스스로 하고 혼자서 현관을 나서고, 학교가 파한 후에도 혼자서 집으로 온다.


10년 후의 육아는 거저먹기다.  등교하기 전 밥을 챙겨주고, 돌아오면 간식을 챙겨 주는 정도다.  주위에서는  아이를 돌봐주면, 내 시간을 뺏기고, 퇴직 후 인생을 즐겨야 하는데, 왜 봐주냐고, 알아서 하게 놔두라고 한다.



처음 손녀가 우리한테 왔을 때, 처음 걸었을 때, 그 기쁨을 잊을 수 없고, 자기  옆에서 오래오래 있어달라는 손녀를 거절할 수 없다. 그리고 처음 육아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기도 하다. 등교하고 나면 오롯이 다 내 시간이다.  지금처럼 카페에서 여유롭게 보내며,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앞으로 제2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설계도 한다.


육아를 한다는것은 골병드는 일이라고 주위에서 만류했지만, 난 해냈고, 앞으로도 다시 해야한다면 , 다시 할것이다. 지금부터의 육아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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