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전 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대관령의 눈은 한번 내렸다 하면 마을 전체를 파묻어 버리고 한치앞을 내다 볼수 없을 정도였다. 꼼짝 달싹을 못하게 눈이 빠지는 날, 딸을 친정으로 보내기 위해 횡계 시외버스터미널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군대간 남편은 제대하려면 1년이나 남아 있었고,아이와 둘이서 분가를 하여 생활하고 있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나는 직장에 다니고.
눈오는 날이 많아지자 어린이집은 예정보다 일찍 방학에 들어갔다. 미쳐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대안도 마련할수 없었다. 남편있는 여자가 혼자 친정오는것은 보기 안 좋다며 아범없이는 절대 집을 오지 말라던 친정 엄마를 불렀다
아이와 어머니가 연착된 버스에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을 빠져 나가려고 할때, 아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차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일곱밤만 자면 엄마가 갈테니 할머니 하고 잘 놀고 있으라는 당부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아이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걱정 뿐이었다. 춥기도 춥거니와 눈은 폭설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스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정체되는 버스 속에서 아이가 소변이 마렵다고 하면 어쩌지, 배가 고프다고 어떡하지.. 외갓집에 잘 도착하였는지 알수 없어 걱정이 되었고, 아이를 떼어 놓은것이 불안했고, 혼자 남게 되어 쓸쓸했다.
그날밤 뉴스에는 대관령에 폭설이 내려 차는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있는다는 뉴스가 계속 나왔다. 폭설에 갖힌 수 많은 차량속에 아이와 엄마가 탄 버스가 없기만을 바랐다. 그러고 1주일 후 나는 주말을 맞아 친정으로 향했다.
아이는 일곱밤을 세었는지, 마당으로 달려 나왔다.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방으로 들어가자 엄마는 일주일간의 소식을 소상하게 알려 주었다.
대관령을 떠나던날 버스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 4시간이나 버스 속 갇혀 있었다. 오랜시간 버스 속에서 손녀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쉴새 없이 조잘거렸는데, 대부분의 이야기는 엄마(나)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 아픈 이야기는 " 엄마가 힘들까봐 어린이집도 잘 다니고, 혼자서 다 한다. " 였다. 어머니는 애가 어른스러워서 더 안스럽다고 했다.( 참 아이러니이다, 어른스러운것도 유전이란 말인가, 지금 손녀딸도 재 엄마처럼 이야기 하고,행동한다)
다행이 아이는 외갓집에서도 방학동안 잘 지내 주었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면 아이를 보러 친정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군대간 남편을 대신해서 벌어 먹는 내가 안쓰러운지 주말에 쉬라며 오지 말라고도 하였다. 정말 그 말을 믿고 가지 않았고, 2주일만에 아이를 보러갔다.
철대문이 삐그덕하고 열리자 아이가 달려 나왔다. 엄마가 갈때는 일곱밤을 자면 온다고 했는데, 열밤이 넘어도 오지 않자 아이는 점점 기가 죽고, 잘때는 끙끙 소리를 낸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 언제 와요 ?" 하고 묻지는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의 사랑도 엄마의 사랑보다 더 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을 텐데도, 아이는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말은 못하고 속으로 앓는것이 안스러워, 그 다음부터 친정 엄마는 힘이 들어도 오라고 했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초등학교 입학 할때 까지는 방학때 마다 봐 주었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급할때마다 달려왔다.
그로 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친정엄마가 자신의 외손녀를 돌봐 주었듯이 나역시 나의 외손주를 돌보아 주고 있다. 어머니가 손녀를 봐 줄때는 양가 부모님중 한쪽 부모님이 손주 육아를 책임지는 일이 많았다.
점차 세월이 흘러 내가 손녀딸 육아를 맡았을때는 " 골병 드는데, 왜 손주를 봐주느냐" " 느들이 알아서 하라" 며 자기인생을 더 소중히 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난 그런말에 귀담아 듣지 않았다.
딸이 임신을 했다고 했을때 나는 정부에 제도개선도 건의했다. 할머니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할머니가 육아휴직을 하면 좋은 이유
1. 젊은애들이 일을 계속할수 있어 경력단절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이익이다.
2. 나같이 연차가 높은 사람이 휴직을 하면 월급이 적게 나가 경제적으로 이익이고, 새로운 출산대체인력을 쓸수 있어 ,출산대채인력에게는 기회제공이 되어 좋다.
3. 아이들이 할머니 손에 크면 정서적 안정이 된다.등 나머지 2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5가지 이유를 써서 제출했다.
(당시 할머니도 육아휴직하게 해달고 건의 했다가 주변으로 부터 욕만 실컷 먹음. 다들 그렇게 아이들 키운다며.) ( 내가 힘들게 키웠다고, 우리 미래 세대가 같은 힘듦을 겪게 하는것은 말이 안된다. 우리가 힘들었기에 우리 자식들은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라며 항변함)
할머니 육아휴직은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하는 사안임으로 지금 상황으로은 채택을 할수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내가 생각해도 시기상조이긴 했다. 60살이 정년인 우리나라에서 할머니가 육아 휴직을 한다고 해서 혜택이라고 할까.. 육아 휴직을 쓸 대상자가 얼마나 될것인가 말이다. 현재는 할머니도 자녀돌봄휴가를 무급으로 쓸수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육아 조건은 제 부모이다. 하지만 한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가족이라도 해도 선뜻 육아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내가 선뜻 손녀 육아를 선택한것은 내 아이를 친정 어머니가 싫은 내색없이,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금전적인 보상도 없이 육아의 일정 부분을 맡아 주었기에, 나도 할머니가 되어 손녀의 육아가 필요 하다면 내 어머니가 내딸을 보살펴 주었듯이, 나또한 내딸의 자식을 보살펴 주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갚는일은 어머니가 나한태 했듯이 나또한 딸이 나를 필요로 할때 도움이 되어 주는것이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의 육아를 도와 주었듯이 내가 내딸의 육아를 도와주는것이 내리사랑이라고 하면 억지 스러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