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좋아하는 것
몇 년 전 당뇨로 오래 아프셨던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밤늦은 시간 손님들이 다 돌아간 장례식장에서 삼촌들과 엄마는 자연스럽게 당신들의 아버지의 삶, 그리고 어머니의 삶에 대해서 회상했다. 나는 그 옆에 앉아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의 전형 같기도 하고 개별적이기도 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이 되던 해 한국으로 들어오셨다고 한다. 일본어를 모국어처럼 배웠던 외할아버지는 한국어를 뒤늦게 배워 엄마와 삼촌들이 어릴 때 한국어를 조금 어눌하게 쓰셨던 것으로 기억했다. 외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좋아서 돌아온 고향에 끝도 보이지 않는 땅을 사셨고 외할아버지는 그 재산을 평생을 써도 다 못 쓸 돈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고 했다. 할아버지께서 노름으로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많았던 땅을 다 잃고 나자 외할머니께서 항구 근처에서 작은 대폿집을 하며 그 돈으로 자식 4명을 키우고 도시로 유학도 보내셨다. 자식들이 자리를 잡고 밥벌이를 하고 살아도 돈 달라 말한 적이 한 번이 없고 병간호를 하는 와중에 밭농사까지 해서 먹을 것까지 챙겨 주셨다. 자식들이 결혼을 해서 배우자와 사네 못 사네 싸우고 할머니 댁에 와 있어도 아무 말하지 않으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로부터 몇 달 전에 엄마와 둘이서 생물 생선을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 몰라서 야단법석을 떨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외할머니는 부잣집으로 곱게 시집을 왔음에도 생선 손질을 능숙하게 해야만 자식들을 먹여 살리는 고단한 삶을 사셨지만 그의 딸은 생선 손질을 할 줄 몰라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하셨다.
할머니가 나의 할머니, 엄마의 엄마가 되기 전의 한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그제야 조금씩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장례를 치르고 나자 오래 병간호를 하시던 외할머니의 생활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집을 길게 비워도 괜찮아서 서울로 놀러 오시게 되었다. 나는 가이드의 임무를 부여받았는데 여행코스를 짜려고 보니 할머니가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두루뭉술하게 할머니가 좋아할 것 같은 것들로 여행 계획을 채웠다. 비원을 예약하고 한정식 집을 예약했다. 저녁이 되면 힘들어하실 것 같아 남산타워는 갈까 말까 그때 결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예상은 완전히 다 빗나갔다. 비원은 이미(무려 30년 전이긴 하지만) 할머니가 가본 곳이었고 한정식 집은 음식이 너무 많아 할머니는 절반도 다 드시지 못해서 내가 꾸역꾸역 억지로 다 먹어야 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체력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저녁에 되니 내가 너무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남산타워로 향했다. 하루 종일 좋다 싫다 감정 표현을 하지 않고 은은하게 웃고만 계시던 할머니는 서울의 야경을 본 순간 탄성을 질렀다. 그 표정에 내가 되려 탄성이 나왔다. 야경이 너무 좋으셨는지 많이 기다려야 해서 피곤하실 것 같아 만류했던 타워 꼭대기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까지 꼭 타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남산타워를 꽤 여러 번 갔지만 정작 돈 아깝다고 한 번도 타지 않은, 외국인들만 줄 서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간 나는 반짝이는 할머니의 눈을 보며 깨달았다. 내가 고정관념의 덩어리로 똘똘 뭉친 인간이었다는 것을.
그동안 나는 외할머니를 좋아했지만 한 사람으로서 할머니를 전혀 알지 못했다. 할머니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할머니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나는 외할머니의 새로운 모습들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 해 우리는 조금 더 먼 곳으로 떠났고 내 계획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해산물이 유명한 곳이어서 조금 비싸고 좋은 곳으로 모시고 가려했는데 할머니는 바다 것은 지겹고 싫어 여기까지 와서 보기도 싫다고 하셨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데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군것질만 실컷 했다. 부들부들한 케이크도 먹고 달달한 커피도 사 먹고 편의점 음식도 사 먹고 컵라면도 사 먹었다. 할머니는 편의점 도시락에 붙은 수저와 물티슈를 신기해하셨다. 그리고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진짜 칼을 차고 있던 일본인 선생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했다. 그리고 그때 같이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의 이름을 말하며 재밌었던 일들을 말해주셨다. 나의 할머니가 아닌 한 사람의 과거를 추억하는 행복한 표정은 그것을 보고 있는 나도 같이 행복하게 했다.
김훈 작가의 '연필로 쓰기' 중 ‘할매는 몸으로 시를 쓴다’에는 늦게나마 한글을 배워서 시를 쓰는 할머니들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할머니들은 시로 개인의 이야기를 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할머니에게도 하고 싶은 것, 바라는 것들이 있다.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로 가려고 했는대
내가 못간 이유는 신발이 업서서 였다.
집신을 신고 서울로 갈 수가 업섰다.
그래서 가수가 못대다.
나한테 검정 고무신만 있었어도 서울로 가서
이미자처럼 멋진 가수가 대었을건대 참 아십다.‘
나는 할머니를 가끔은 꺼내 주고 싶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할머니이라는 프레임에서. 모진 세월을 겪은 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 그리고 바랐던 바라는 꿈들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묻고 싶고,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