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편 속에 있던 노래들

한 편의 시와 (살아온 순서대로) 다섯 곡의 노래 이야기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자신이 뭔가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like a rolling stone의 배음을 지켜가는 알 쿠퍼의 오르간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런 자신이 어설프게만 느껴진다면 밥 딜런의 말처럼 '소리를 키우도록.'


고향은 거기에서 멀고 다만 보이는 것은 층층이 밀려오는 파도뿐이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 쪽에서 보자면 극히 작은 일부분이었으리라.



어리석은 파편의 노래

대학 3학년 1학기 학사경고를 받은 나는 엄마의 격한 반대에도 내년에 반드시 휴학을 해야만 한다고 다짐했다. 본가에만 있었던 방학과 전 학기 학사경고 덕분에 강제로 적게 들어야 했던 수업은 할 일 없는 나에게 번뇌의 시간을 끝없이 만들어주었다. 대학 3개 원서를 넣으면서 전부 같은 과를 쓰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건 대학 와서 알았다. 그 정도로 전공에 확신하며 대학에 와서는 3년 만에 전공을 버려야 한다는 확신에 차게 되었다. 나는 그제야 지난 3년 간 내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그토록 하고 싶어서 와 놓고는 대체 뭘 했던 건지. 입학할 때의 확신과 자신감은 3년 뒤 정확히 그만큼의 자책으로 돌아왔다. 2학기를 마치고 자체적으로 휴학을 결정한 나는 그 해 12월 같은 처지의 친구 한 명과 자취방을 구했다. 휴학한다고 하면 용돈은 끊길 것이 분명했고 달마다 꽤 큰 금액을 내야 하는 하숙집은 부담이었다.


그 집으로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소라 7집이 나왔다. 지금도 가끔 이 앨범을 들으면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면 옆 집 벽돌이 코앞에 보이는 방 앉은뱅이책상에 앉아서 친구들과 채팅을 하는 내가 떠오른다. 그때 늘 흥얼거렸으면서도 그 가사에 대해 깊게 공감하거나 곱씹어 본 적이 없었다. like a rolling stone의 주인공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겪은 세계 그만큼의 폭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었다고 스스로는 생각했지만 아직 그 앨범 전부의 가사를 귀담아들을 만큼의 세계를 겪지는 못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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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한 해 나는 바로 앞의 목표만 보면 되는 아주 단순한 삶을 살았다. 그 해 10월 유럽 배낭여행을 갈 거였고 9개월 동안 500만 원을 모으는 것 그게 목표였다. 돈이 빠듯했지만 같이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과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올 때도 있었고 아침 9시까지 가야 하는 날은 탈의실에서 자기도 했다. 그 돈만 안 썼어도 다른 알바를 하나 더 해서 12시간이 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만큼 돈을 벌고 그만큼 쓰고 저축하는 게 바로 가늠이 되니 몸은 힘들어도 재밌었다. 여행을 떠나서는 이런 생각도 했다. 꼭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그렇게 조급하려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저 이렇게 돈을 벌고 밥을 먹고 술을 먹고 어딘가를 걷고 잠을 자고 이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 그런 생각.


그런 여유로움을 실행하기에 내가 주변의 눈을 너무도 의식하는 사람이라는 건 아직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상태로 품은 그 결론은 복학한 나에게 큰 상처로 돌아왔다. 내 머리의 이상과 마음의 허영은 현실을 제각각 떠다니고 부딪히다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내 머리의 이상은 쿨하고 여유로운 사람이었고 마음의 허영은 대단하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사람이었지만 현실은 조급하고 늘 실수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 혼란과 상처는 정리되기까지 예상치 못한 긴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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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기적이 일어나야만 내가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절대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잠깐 멈추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았고 단지 그것만으로도 나는 편해질 수 있었다. 그제야 이제까지 나를 두렵게 했던 건 예상할 수 없는 불행들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틀려도 되고 쉬어도 되고 망해도 된다고 이상과 허영과 현실을 일치시키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기만 해도 된다고, 그것들은 늘 일치하지 않는 거라고 나에게 말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또 오랜 시간이 걸려 알게 됐다. 그제야 그렇게도 자주 들었던 그 노래들의 가사가 들렸다.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서야 가사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track 1 좀 더 틀려도 돼. 얼른 같이 해봐.

track 4 모두 널 그리워해 사진 속에 널 부르고 있어 참 너답게 아름다울 때 아름다웁게

track 5 좀 외롭거나 생각이 많은 날 누워/내 음을 실어 내 말을 빌어서 부른다

track 6 한없이 불안해 보이는 곳/빈 하늘 무겁게 떠 있는 곳/단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곳 나 있는 곳

track 7 한 움큼 날 재워준 약 어디 둔 거야/나 몰래 숨기지 마 말했잖아 완벽한 너나 참아

track 8 꼭 그래야 할 일이었을까/겪어야 할 일이었을까/혼자서 남겨진 방/그 마지막 끝

track 11 함께 우주에 뿌려진 우린 수많은 별/그중에 처음 마음 내려놓을 곳 찾아 헤매었죠

이 별을 만난 건 나에겐 행운이었죠/한 번 스치는 별 아니 뭔가 다르게 더 이끌렸죠


외로운 파편의 노래

첫 출근한 날 팀 회식을 하고 새벽 2시에 귀가했다. 지금이라면 아마 여긴 미쳤어 외치며 출근을 안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회사를 다니는 건 다 이런 건 줄 알았다. 예상 가능한 전개대로 팀장이 퇴근 30분 전에 회사 메신저로 회식을 하자고 하면 모든 팀원이 10번 중에 9번은 모두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런 일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반복됐다. 더 최악은 팀장과 대리가 술을 마셨다 하면 집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주사를 가진 것이었다. 2차까지 가면 입사한 지 1달도 안 된 나와 1년 된 직원 한 명을 제외하고 다들 취해서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 대리는 노래방을 가자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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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 마시고 절대 노래방을 가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무 직급도 없는 말단사원이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이 아니었다. 마시자면 마시고 가자면 가야 했고 부르라면 불러야 했다. 직급 역순으로 한 곡씩 부르고 나면 먼저 부른 순서대로 좀비가 되어 갔다.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의문을 가졌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집에 가기를 싫어하는 걸까. 대리의 아이들은 아빠 핸드폰으로 2차로 넘어가는 시간에 언제 집에 오느냐고 전화를 했다. 팀장의 와이프는 새벽 세시가 되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수화기 밖으로 다 들릴 정도로 욕을 했다. 그래도 그들은 집에 가지 않았다. 두 달 정도 지나니 아무리 어리바리한 신입이라도 이런 회사를 계속 다녀도 괜찮을까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회식을 했고 노래방을 갔고 대부분 팀원이 잠든 것 같았다. 어차피 깨우면 시간 남은 건 다 쓰고 가야 한다고 우길 것이 뻔하니 그냥 혼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들을 불렀다. 영화 레미제라블 OST on my own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잠든 줄 알았던 대리가 옆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 노래! 레미제라블이지! 너무 슬펐어. 이것도 불러봐." 라며 I dreamed a dream을 예약했다. 버벅거리며 부르는 내 노래를 들으며 갑자기 대리는 영화가 너무 슬펐다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아이가 있으니 앤 해서웨이가 아이를 잃고 부르는 그 노래가 유독 마음에 와 닿았던 모양이다. 대리는 노래방을 갈 때마다 그 노래를 자꾸 부르라고 했고 나는 알 수 없는 의무감에 그 넘버를 자주 들으며 노래 연습을 했다.


3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팀장과 면담을 했다. 다른 부서로 전근해야 한다고 했다. 예상했던 프로젝트가 기약 없이 연기되어 내가 팀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봤을 때 예상하긴 했지만 막연히 팀장을 믿었던 것 같다. 회식 때마다 팀장은 나에게 말했다. "나와 같은 대학을 나와서 그런지 일을 아주 잘해." 미운 정이라도 들었던 건지 내가 아무 말을 못 하고 황망한 표정으로 앉아 있으니 팀장은 주절주절 말을 꺼냈다. 거기서 다른 파트 일을 배우고 있다가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되면 팀으로 다시 부르겠다고. 나는 가고 싶지 않고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팀장은 지금 그만두면 뭘 할 거냐고 물었다. 알 게 뭐냐고 성질이라도 내고 싶었지만 대학원 준비할까 한다고 했다. 그 말에 팀장은 좋은 생각이라며 자신은 사법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와이프가 임신하는 바람에 취직하게 됐다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꼭 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그만 두면 힘들지 않겠냐고 그만두는 것은 그 부서에 가서도 늦지 않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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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걱정이 되면 나를 보내지나 말지 라고 생각하는 내 속마음이 들렸는지 묵묵부답인 나에게 팀장은 미안하다며 오늘 회식을 하자고 했다. 나는 일단 이동하겠다고 말하고 회식은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3개월 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드디어 했지만 목이 메어 말을 못 할 정도로 울기 직전이었다. 퇴근 후 대리는 그래도 같이 가자고 했다. 안 가겠다고 말을 하는 순간 눈물이 흘렀다. 나도 대리도 당황했다. 죄송하다고 돌아서서 집 방향으로 이어폰을 끼고 오래도록 걸었다. i dreamed a dream 이 나왔다. 그때쯤에는 눈물도 다 그쳐서 헛웃음이 났다. 2년쯤 지났을 때 나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고 여전히 팀장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그즈음의 어느 날 팀장이 술 때문인지 간이 안 좋아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누군가 전해줬다. 우습게도 이제 그 부서로 나를 불러 줄 사람은 없겠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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