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장면에 있던 노래들

한 편의 시와 (살아온 순서대로) 다섯 곡의 노래 이야기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밤새 내린 3월 하순의 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어디로 가는지 여전히 궁금해하는 나를 뜻한다.


노래를 들으며 머나먼 나라를 꿈꾸던,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조선소에 취직해야만 했던 한 청년을 떠올린다.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사실 이 글에서 나는 왜 가슴이 저려오는지 반도 얘기하지 못했다. 당치 않은 얘기겠지만, 그래도 부디 이해해주기를.


누구에게나, 무슨 일이거나 처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갓 태어난 아이의 눈과 귀처럼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다.



과거의 아빠를 떠올리는 노래

김연수 작가가 형을 끝끝내 이해할 수 없었고 궁금해했듯 나는 아빠가 세상사는 방식을 이해하기 힘들었고 궁금했다. 아빠는 결혼하기 전 서점과 문방구를 같이 하는 가게를 했다가 망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조금 큰 규모의 서점들이라면 대부분 문구류를 같이 팔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꽤 획기적인 것처럼 보였다고.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런 가게를 하려면 주변 학교들의 관계자들을 모아다 잘 부탁드린다며 일종의 접대 같은 것을 하는 게 관례였는데 그걸 하고 싶지 않아서 버티다 망했다고(아빠의 주장에 따르면) 한다. 그 후 아빠는 공무원이 되었기 때문에 사업 근처에는 다행히(이것은 엄마의 입장) 가지도 못했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수없이 반복된 그 이야기를 허풍 섞인 구전설화처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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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예 허구라고만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 집에 책과 LP가 다른 집보다는 아주 많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망했을 때 싸게 재고 정리를 하면서 팔기 싫은 괜찮은 책들을 남겨둔 것이라 했다. 4 식구가 살기에도 부족했던 방 두 개짜리 집에서 방 하나를 책방으로 써야 할 정도였다. LP도 꽤 많아서 티비 장식장은 다 LP로 채워져 있었다. 책과 LP들은 내가 어릴 때도 이미 늙고 빛바래 있었고 아빠가 그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는 것을 본 적이 없어 그것들은 개별적으로 보이기보다는 한 덩어리의 어떤 물체 같았다. 그래서 어릴 때는 방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는 생각 못하고 단지 엄마 아빠는 왜 거실에서 자는 걸까 그게 가끔 궁금했다. 아빠는 왜 매일 집에 늦게 들어오는지 또 왜 우리는 가족여행을 항상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아빠 친구 가족들과 모여서 가는지도 궁금했다.


동생과 내가 태권도 품증 심사를 보는 날이었다. 우리는 전날 외갓집에 갔다 아침 일찍 심사가 있는 체육관으로 출발했다. 그날 밤 내가 살던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꽤 많은 눈이 내렸다. 운전을 조심해야 했고 또 심사 시작 시간에 맞춰 가려면 서둘러 가야 했다. 아빠는 운전을 하고 엄마와 동생은 자고 나는 뒷자리에서 목만 내밀어 앞좌석 양 사이에 기대서 눈 쌓인 도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가 틀어 놓은 카세트테이프에서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 흘러나왔다. 노래방을 가면 아빠가 자주 부르던 노래였고 가사가 예뻐서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보면서 나도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차 안은 히터 공기로 훈훈했고 나는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 순간 차가 미끄러지면서 데굴데굴 굴러 도로 중간의 공터로 엎어졌다. 그건 나중에 알게 된 거고 갑자기 정신을 차려보니 뒤집어진 차 뒷좌석 천장 부분에 나와 내 동생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멍하니 쳐다보다 순간 무서워져 조수석의 엄마를 불렀다. 다행히 엄마도 아빠도 아주 멀쩡했다. 엄마는 바로 아빠를 째려보며 외할머니께 얻어온 반찬 다 엉망이 됐겠다고 걱정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도 그냥 뒷좌석 문을 직접 열고 나왔다. 아빠는 사고 수습을 위해 남고 우리는 다른 차를 타고 서둘러 시험장으로 향했다. 구르면서 차체에 이리저리 부딪혔는지 나와 내 동생의 이마에는 혹이 두어 개 났다. 다행히 팔다리는 멀쩡해서 시험은 무사히 봤고 체육관 관장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이불을 둘둘 감고 거실에 누워 티비를 보고 있었다. 태평하게 웃으며 차는 폐차 처리했다고 했다. 그때도 궁금했다. 대체 아빠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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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날 이후로 그 곡을 흥얼거리지 않았다. 라디오에서 나와도 채널을 돌려버렸다. 사고 나던 그 순간의 불쾌함이 다시 피부에 들러붙는 것 같았다. 아빠를 궁금해하던 마음도 조금씩 미움으로 바뀌었다. 사춘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아빠는 점점 더 가족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게 됐다. 아빠와 같이 살기 싫어서라도 대학을 다른 지역에서 다니고 싶었다. 아빠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보니 심리적으로도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되고 다양한 사람들의 가정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되니 아빠를 나의 아빠가 아닌 한 개인으로도 볼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나는 아빠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빠 한 개인의 삶을 존중해주고 싶어 졌다. 나도 가족들이 딸로서의 역할을 바랄 때 잘해주지도 못하고 나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랐으면서 아빠에게는 완벽한 아빠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 노래를 가끔 흥얼거린다. 파란 하늘 밑 공원에서 공차기를 하던 나와 동생과 아빠가 떠오른다.



처음의 마음을 마주하는 노래

나는 고등학교 1회 졸업생이다. 그건 당연하게도 후배는 있지만 선배는 없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학년을 올라갈 때마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새 교실을 썼다. 그리고 선배가 없으니 우리끼리 동아리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사람끼리 모여서 이름을 만들고 규칙을 정하고. 사실 그때는 몰랐지만 2학년이 되어 1학년 면접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런 허접한 동아리에 들어오는데 면접까지 봐야 하다니. 선배가 없으니 친구들끼리 불만이 없으면 하고 싶은 동아리는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밴드와 댄스부 두 개를 했다. 그건 엄청난 일이 아니라 그중에 절반이 그랬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있는데 뒤에서 친구가 뛰어 와서 ‘하자! 할 거지?’ 거기에 고개를 끄덕인 것으로 밴드의 보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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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동아리명을 바보 같이 지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과 연습할 곳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연습을 얼마큼 해야 하는 지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그래서 얼떨결에 만들어진 동아리에 큰 기대를 걸 수 없었고 다른 학교의 체계 잡힌 동아리들을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우리는 점점 미쳐갔다. 처음이란 그런 것. 연습할 공간으로 체육관 창고가 주어져도 너무 좋았다. 연습시간이 부족하자 점심 저녁을 굶고 그 시간에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야자시간에 몰래 무용실에 올라가서 연습하다 걸려서 엉덩이를 맞아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가스파드.jpg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 중 역경의 밴드 I


이대로라면 엄청난 실력자가 되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밴드 연주를 할 노래를 고를 때 노래가 좋고 싫고를 떠나 우선 우리 실력으로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지 여부가 우선이었다. 그래서 처음 공연할 곡으로 고른 노래가 제목을 적기도 어려운 sk8er boi였다. 에이브릴 라빈의 음색이 아주 매력적인 곡인데 그래서 부르기가 묘하게 어려웠다. 영어 가사라 가사도 한 번 멈칫하면 통째로 까먹기 일쑤였고. 하지만 나를 지적할 수 있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자기 연주하기 바빴기 때문에. 그래도 우리는 체육관 창고 매트에 앉거나 뜀틀에 앉아서 틈틈이 연습했다. 공연은 우리 기준에서는 성공이었다. 우리의 실력은 아주 미세하게 늘었다. 할 수 있는 곡의 수도 조금씩 늘어나고 공연도 두 어번 더 했다.


자신감이 붙은 우리는 어느 대학에서 주최한 대회에 나갔다. 예선은 엉망이었다. 기타 이펙트는 어찌 된 영문인지 소리가 나지 않았고 곡 소개를 하는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심사위원은 질문은 하지도 않았다. 딱 하나 키보드가 우리 것이냐고 만 물었다. 예선 결과는 그 날 저녁 전화로 알려준다고 했다. 패배자의 심정으로 카페에 모여서 합격여부를 알려주기로 한 친구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우리는 돌아가면서 각자의 실수를 말하며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친구는 전화를 끊고 말했다. 우리는 키보드를 빌려주는 조건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갑자기 동시에 우리는 괴성을 지르며 카페를 뛰쳐나가 번화가 한가운데를 뛰어다녔다. 키보드 때문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미칠 듯이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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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sk8er boi를 들으면 뮤직비디오 마냥 길 한복판을 뛰어다니는 내가 떠오른다. 대회에서 부른 곡은 정작 다른 곡인데도. 그 곡과 장면은 나에게 처음의 마음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 생생한 처음의 감정과 순간들을 잊지 못해 대학을 가서도 비슷한 동아리를 했지만 그때의 순수한 즐거움은 절대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무언가를 하려 할 때 처음의 그 마음을 기억하면 잘할 수 있다는 건 뒤집으면 처음의 그 마음을 간직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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