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밤 그대로의 여행

밤마다 나는 등불 앞에서 저 소리 들으며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그대를 생각하며 밤을 마주할 때, 나는 비밀이 된다. 무엇으로도 해독할 수 없는 암호가 된다.

그대는 오래전부터 내게 비밀이었다. 내가 밤을 사랑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밤에는 나도 비밀이 되니까.

밤에 그대는 내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밤이 될 것이다.

그대에게도 어둠이 스며드나니, 부디 슬퍼하지 말기를. 어둠은 늘 그대 쪽으로, 그처럼 언제나 나도 그대 쪽으로 스며드나니.



나는 밤을 두려워한다. 정확히는 어둠이. 어렸을 때부터 완전한 어둠 속에서 잠드는 것을 무서워했다. 혼자 자는 것도 아니고 동생과 같은 방에서 자면서도 불을 켜고 자면 엄마가 나중에 자기 전에 불을 꺼 줬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 엄마가 먼저 자고 내가 나중에 잘 때가 많아지면서 나는 거실에 있는 티비를 켜 둔 채로 타이머를 맞춰 두고 방문을 열어 두고 자거나 거실에서 잠들어 버리면 늦게 온 아빠가 나를 침대로 옮겨 주기도 했다. 그건 어떤 앞선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불이 꺼진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찰나에 대한 두려움에 불을 끄지 않고 차라리 잠드는 것을 선택하는. 대학을 가고 기숙사에 살 때는 오히려 편했다. 거기는 완전한 어둠은 없었다. 창밖에 늘 켜져 있는 가로등불이 있었고 복도에는 늘 불이 켜져 있어 방 안 불을 꺼도 방 안에 모든 것들이 보였다.


자취를 하게 되면서 자는데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불을 켜 놓고 자는 건 며칠 해보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 포기하고 불을 끄고 누워서 초원에 있는 초식동물처럼 꾸벅꾸벅 졸면서도 푹 잠들지 못해 해 뜰 무렵쯤 잠이 들었다. 그 집에 익숙해져 잠드는 시각이 점점 일러질 때쯤 매번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면 또 그 집이 설어서 쉬이 잠들지 못했다. 문틈으로 창문 틈으로 무언가가 새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사람 같기도 했고 귀신같기도 어둠 같기도 했다. 그토록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들이 집을 어둡게만 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니 그렇게 생각하면 참 시시한 것들이지만 그때는 잠이 드는 잠깐의 순간이 너무도 두려운 시간이었다. 타이머 무드등을 사고 음악을 타이머 맞춰서 틀어 놓기도 하고 노트북으로 무한도전을 여러 개 틀어 놓고 자기도 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불면증 같지만 이사를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를 제외하고는 사실 눕자마자 10분 정도면 잠들었다가 눈 뜨면 아침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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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봄 두 달 정도 도중에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몇 시간을 자든 상관없이 새벽 3시에도 깨고 4시에도 깨고 일부러 늦게 잠들면 또 5시고 6시고 아무 때나 문득 잠에서 깨고 아무리 오래 누워 있어도 다시 잠들지 못했다. 나는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어둠 속에 몇 시간이고 누워있었다. 처음에는 다시 잠들려고 눈을 감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두려움에 떨면서 이불을 싸매고 웅크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시간을 모르고 누워 있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 잠결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때 차라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른 일을 하는 게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몸이 무거운 물속에 깔려 있는 듯 느리게 움직였다. 평소에는 나는지도 몰랐던 집안의 작은 소리들은 귓가에 갖다 박은 듯 크게 들렸다. 해가 뜨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의 물속에 잠겨 허우적대는 지난밤의 몰골이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몸서리치게 선명했다.


일주일 넘게 계속되니 이제는 3~4시간 정도밖에 못 자 낮에 피로할 일들이 두려웠다. 더 길어지니 이제 잠이 깨는 게 익숙했다. 어느 날은 눈을 뜨고 방을 바라봤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 선명하게 보였고 또 어느 순간에는 어둠 속에 경계가 흐릿해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있으니 그 전에 느끼던 알 수 없던 서늘함이 조금 가시는 듯도 했다. 그래도 해가 뜨지 않는 날에는 온갖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생각들을 끄집어냈다. 뇌 속을 탐험하는 작은 탐사선도 만들고 탐사선이 찾은 생각들을 뽑아내서 형광색 찰흙으로 만들었다. 그 속에서 나는 20살로도 돌아가고 25살로도 돌아가고 40살이 되었다가 10살이 되었다가 내 시간 속을 떠다녔다.


그러다 만날 수 없는 그대를 만나거나 만약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대와 나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시 만난 그대의 심중을 뒤늦게 헤아리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여름이 다 되어 갈 즈음에야 다시 긴 잠을 잘 수 있었다. 밤에 무언가 스며들어오는 것이 그대인 줄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 덜 애쓰고 잠을 잘 수 있었을까. 그대는 무슨 말을 하려고 몇 날 며칠을 나를 잠 못 들게 했던가. 지금도 여전히 노트북을 켜고 스탠드 타이머를 맞춰두고 잠을 자지만 이제는 문득 밤을 마주하는 날이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대가 내속으로 스며드는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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