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누나의 장례식장에서

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지속된다.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한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


매미소리가 천지를 울리다가 문득 멈춘 상태. 그 찰나적인 상태가 바로 견딜 수 없는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이니까.


우리가 잊고자 애쓰는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저도 아직 잊지 못하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 속에 쌓아두면서 왜 그때는 그렇게 가혹하게 소리쳐야만 했을까?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쫓아왔네 라고 말할 때는 이제 그만 자신을 잊어달라는 소리였겠지만 아직도 그 아이의 마음은 구급차를 쫓아가고 있을 듯. 귀를 울릴 듯 매미소리가 들리다가 일제히 울음을 그치는 그 순간, 앞으로 찾아올 그 모든 슬픔의 시간이 단단하게 압축된 빈 공간이 찾아온다.



작년 초 평생 처음으로 젊은 사람의 장례식장에 갔었다. 죽음에는 젊고 늙음이 없다고 하지만 젊은이의 죽음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친구의 누나였는데 그 전 해에 갑자기 암에 걸려 여러 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만날 때마다 좋지 못한 예후에 지쳐간다는, 누군지 알아보기조차 힘들 만큼 말라버린 누나 얼굴을 보기도 싫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중에 완쾌하면 네가 이렇게 행동했던 것을 누나가 서운해하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나중에 누나를 다시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네가 후회할 것이다 그런 의미나 다름없는 얘기였다. 알면서도 다들 모른 척했던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럼에도 내 일이 아니라 그 일을 가끔 떠올리기도 했고, 자주 잊은 채로 지냈다.


이상하게 유난히 따뜻했던 그 해 겨울 어느 날 다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 친구의 누나가 죽었다고.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 급하게 장례식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얘기했다. 미래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웃기도 했고 분노하기도 했다. 회사를 도중에 나와 어딘가를 간다는 게 좋기도 했다. 젊은 사람의 장례식장에 간다는 게 어떤 건지 그때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 앞에 당도해서도 오랜만에 본 사람들과 안부 묻는 것에 집중해 그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 보지도 못했다.


피곤하면서도 놀라는 친구 얼굴을 보니 그제야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비로소 인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지만 영정 안의 사진이 너무도 젊어서 영정사진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정사진으로 쓸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 같은 활짝 웃는 사진이라서 속이 시렸다. 아직 초등학교를 들어가기도 전의 어린 딸이 장례식장을 너무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어서, 나에게 아주 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면서 과자를 나눠주어서 속이 뜨거워졌다. 그 외에는 여느 장례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80904_224404.jpg


친구는 웃으면서 더 많이 먹으라고 음식을 계속 가져다주었다.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그 묻는 말에 또 여기가 어딘지 잊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부모님은 괜찮으시냐 하니 가족 모두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고 치료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모두 거기에 감정 소모를 다 해버린 것 같다고 했다. 늦게까지 이야기하다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다음 주에 볼 자격증 시험을 대비한 요약본을 읽었다.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너무 피곤하기도 했고 과자를 건네주던 식장 입구에 서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배꼽인사를 하던 그녀의 딸이 자꾸 어른거렸다.


슬픔을 장례식처럼 시간을 정해 한 날 한 시에 다 쏟아 버리고 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의 슬픔의 시간은 너무도 이르게 찾아와 울 기운마저 다 앗아가 버리고 그녀의 딸의 슬픔의 시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 같아 자꾸만 마음이 일렁거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입학할 때, 졸업할 때, 대학생이 되었을 때 결혼을 할 때 그 모든 순간순간마다 엄마의 빈자리를 슬픔의 시간으로 채울까 걱정이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유물론에 가까운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죽으면 끝이지 세상에 뭐가 있다고 신이 있고 내세가 있고 그랬으면 세상이 이렇게 개판이겠냐고 다 산사람이 만들어 놓은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죽으면 끝이 아니어야겠다고. 귀신이든 영혼이든 내세든 꼭 있어야겠다고. 친구의 누나는 그녀의 딸이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모습, 중학교,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모습 수능을 친 딸의 모습 예쁜 대학생이 된 모습, 결혼하는 모습, 그 모든 모습을 보고 싶을 거고 안아주고 싶을 텐데 이 많은 마음이 이대로 끝이면 안 될 것 같았다. 딸에게도 친구에게도 기회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 모든 시간이 지나가고도 엄마를 누나를 만날 수 있을 기회가 꼭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산 사람이 만든 장치일 뿐이라도. 정말로 그런 일이 있도록 해 달라고 난데없이 기도 했다.


keyword
이전 08화벽에 비친 폭죽의 불빛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