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 두고 온 머플러와 만원

추운 국경에는 떨어지는 매화를 볼 인연 없는데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2001년 겨울도 끝나갈 무렵, 나는 삼일포 부근 어딘가에 장갑 한 짝을 남겨두고 왔다. 가끔 그 빨간 털장갑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내게 손을 흔들던 그 여자아이들도, 서울에 두고 온 여자들을 그리워하던 그 50대도, 변경의 밤을 빽빽하게 메우던 눈보라도.



여행. 특히 해외여행은 이 곳에 다시 오기 힘들다는 점에서 모든 순간을 특별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북한이라면 더욱. 밥만 먹고 잠만 자다와도 특별했을 텐데 눈 오는 금강산에서 마라톤이라니. 눈 오는 금강산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유럽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를 문득 떠올리면 궁금한 것,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휴학하고 돈을 모아 간 거라 돈이 넉넉하지 않았고 하필 그때 1유로당 이천 원을 육박하던 다시는 없을 때여서 친구들과 나는 더욱 가난해졌다. 게다가 10~11월이라 가을 옷만 챙겨 갔는데 난데없이 뉴스에 나올 정도로 눈까지 내리는 이상기후까지 나타나 우리를 더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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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로고에 나오는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가는 날이었다.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꽤 시골이었는데 갈아타는 곳에서 전에 탔던 기차에 친구의 머플러를 두고 내린 것을 알게 되었다. 역 직원에게 물어보고 기차 안 직원에게 물어봐도 소극적인 대답뿐이었다. 우리는 모른다. 돌아가서 종착역 유실물 보관소에 가 봐야 한다. 처음에는 머플러가 없어진 것 자체에 허탈해하고 있었지만 당장 당면한 문제는 성이 산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도착하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가보니 사람들은 아예 겨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얇은 운동화에 가을 카디건 복장이었다. 우리는 덜덜 떨면서 팔짱을 끼고 올라갔고 사람들은 우리가 안쓰러운지 신기한지 눈길을 주며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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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서 알게 됐다. 성은 멀리서 바라볼 때 예쁘다는 걸. 산도 마찬가지. 산꼭대기에 있어서 사진을 찍으려니 사진에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 원래는 그 계절쯤이면 먼 곳에 있는 다리까지 가 볼 수 있는데 눈이 많이 와서 가지도 못했고 우리는 추위에 덜덜 떨면서 어딘지 알아볼 수도 없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머플러를 찾아보려 유실물센터로 전화를 했지만 자동응답만 나올 뿐 머플러를 찾아 머무를 시간도 돈도 없는 배낭여행자는 그저 머플러를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독일 기차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성으로 가기 전날 기차를 예약할 때 유레일을 최대한 이용하려 했는데 창구 직원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 서로 답답해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역무원 한 분이 나타나 본인을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아직도 우리 쪽을 향해 슈퍼 히어로처럼 걸어오던 그 모습이 기억난다. 가 보니 유레일 이용하는 학생들을 위해 따로 안내 창구가 있었고 거기에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 그 역무원 아저씨와 얘기를 나누게 됐다. 우리를 고등학생 정도로 봤던 건지 사과를 한 알씩 주며 너무 불안해할 것 없다며 아이 달래듯 씨익 웃었다. 덕분에 복잡할 뻔했던 기차표 예매를 무사히 끝내고 감사하다고 하니 한국에 놀러 갔던 경험을 얘기하며 친구에게 1000원을 선물 받았다며 보여주었다. 1000원을 자기 아이에게 보여주면 1000유로인 줄 알고 엄청 놀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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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숙소에 있는 만 원권을 갖다 줄까 잠깐 생각만 하고 다음 날 나와 한 친구는 성으로 가는 기차를 탔고 다른 친구는 다른 곳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그 날 일정을 보내고 돌아와 호스텔에서 친구를 만나니 아침에 기차를 타러 갔는데 그 아저씨를 또 만났다고 했다. 친구가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지나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어제 예약해 준 목적지를 기억하고 있었는지 친구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여기가 아니라고 친구의 짐까지 대신 들쳐 메고 건너편 플랫폼으로 같이 뛰어갔다. 기차는 간발의 차이로 출발해 버렸고 그는 친구보다도 더 아쉬워하며 다른 표로 다시 바꿔줬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뭔가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만 원권을 가지고 그 창구를 찾아가니 다른 직원만 있었다. 그래서 전달을 부탁하고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했다. 가끔 유럽여행을 떠올리면 궁금하다. 친구의 머플러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그 돈을 잘 전달받았을까. 그의 아이에게 보여줬을까 아이는 천 원을 볼 때보다 더 놀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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