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짬뽕이 있던 상가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자라 청년이 됐는데 가게나 그 거리는 몰락하기 시작한 셈이다.


한때 손바닥처럼 그 내력을 낱낱이 알던 가게들의 거리가 낯선 곤충의 껍질처럼 무감각해졌다.


최북에게 그림을 요구했는데 최북이 이를 거절하자 그 귀인이 최북을 위협했다고 전한다. 이에 최북은 분노해 ‘남이 나를 저버리느니 차라리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라고 말하며 송곳으로 한쪽 눈을 찔러 애꾸가 됐다고 한다. ~ 나는 그 오기의 세계가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다른 어떤 동물도 죽을 줄 아는 길로 걸어가지 않는데, 왜 사람만은 그게 자기를 파멸시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눈을 찌르는 것일까?



우리 가족은 내가 7살부터 대학을 가고 2년 정도 후까지 한 집에서 오래 살았다. 그 후에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내 꿈에 나오는 집은 언제나 그 집이다. 대학을 가고 나서 살게 된 집에는 내가 오래 머무를 일이 없으니까 당연히 그렇지만 꿈을 꾸고 나면 언제나 기분이 묘하다. 이제 그곳은 세상에 없는 곳이니까. 꽤 오래 살았기 때문에 타이타닉 엔딩처럼 집뿐만 아니라 주변도 꽤 선명하게 꿈에 나올 때가 많다.


아파트 바로 맞은편에는 상가가 있었는데 거기에 많은 가게들이 있었다. 지하에는 한 때 내가 중독 수준으로 미쳐 있던 펌프가 있던 오락실이 있었고 그 옆에 선뜻 들어가기 무서워 보이는 만화방이 있었다. 오락실 가는 길에 누군가 들어가며 열린 문 틈 사이로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이 담배를 피우며 만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곤 했다. 1층에는 꼬마자동차 붕붕, 호호 아줌마 비디오를 빌리러 가던 비디오 가게가 있었고 2층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던 피시방이 있었다. 베란다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정말 바로 앞에 있는 곳이었는데도 어릴 때는 멀리 놀러 가는 것 마냥 그 상가에 가는 게 설렜다. 잘 가보지 않던 3층만 올라가도 모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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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가끔 주말 점심때 짬뽕과 탕수육을 시켜 먹던 중국집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두 달에 한 번쯤 그 집에서 배달 온 짬뽕과 탕수육을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티비를 보면서 맛있게 먹었다. 가끔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베란다 창문으로 거기를 바라보며 아저씨가 배달통을 정리하고 그릇 정리하고 배달하러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이번 주에 짬뽕시켜 먹자고 해야지 입맛을 다시곤 했다. 그때는 맨날 거기서만 시켜먹으니 그 집이 그렇게 맛있는 집인지 몰랐는데 이사를 가고 나서 다른 중국집에 음식을 시켜보니 그제야 거기가 정말 맛있는 곳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사를 가고 얼마 되지 않아서 예전 집으로 도착한 우편물을 가지러 엄마와 같이 갔는데 그 중국집이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와 나는 그 중국집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면서 이제 영영 그 짬뽕은 못 먹겠네 아저씨 연락처라도 받아 놓을 걸 그랬네. 그런 말을 농담반 진심반을 섞어서 이야기했다. 이제 그 짬뽕은 닿을 수 없는 추억이라는 향수까지 덧붙여서 전설의 짬뽕이 되어 버렸다. 거기에 매일 가던 오락실도 문방구도 주말마다 라면을 사러 가던 슈퍼도 피시방도 다 사라지고 없었다.


어딜 가나 그 사라진 주인들에 대한 뒷이야기는 있어서 슈퍼 주인 부부는 마음을 곱게 안 쓰더니 다른 데 편의점을 한 곳 더 냈다가 망하고 이사 갔다더라 피시방 주인아저씨는 돈을 많이 벌어서 아파트를 두 채나 샀다더라 문방구 주인 할아버지는 자식 따라 이민을 갔다더라 건너면서 이리저리 조금씩 부풀려졌을 이야기들을 엄마에게 가끔 전해 들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그 길을 왜 가는 걸까 나도 읽으면서 궁금했다. 확증편향이 어쩌고 저쩌고, 욕심에 눈이 멀어서, 허세 때문에 수 만 가지 대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베풀 줄 몰랐다던 슈퍼 주인 부부에게 왜 죽을 줄 알면서 그 길로 들어섰냐고 물으면 사람 약 올리냐고 화를 내면서 그 길이 그런 줄 알고 들어서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잘 될 줄 알고 그랬다고 대답하겠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한 동안 떠올릴 일이 없었는데도 이렇게 글을 쓰려고 그 장소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 사람들의 얼굴은 꽤나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의 일부인 사람들. 그렇지만 다시 볼 수 없을 사람들. 그 사람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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