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기숙사로 향하는 꿈

백만 마리 황금의 새들아, 어디에서 잠을 자니?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밤에 관사에서 부대로 넘어가려면 헬기장을 넘어서야만 했다. 그 헬기장을 지날 때면 나는 늘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리온, 카시오페아, 큰 곰자리 같은 별자리들, 그 별자리들은 무슨 힘으로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떤 힘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왜 거기 있지 않고 여기 있는 것일까?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인 것일까?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1학년 초 나는 지금이라면 돈을 주면서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온갖 동아리를 닥치는 대로 기웃거렸는데 그런 바람에 거의 매일 술자리에 참석했다. 신입생이니 돈도 거의 내지 않아도 되고 기숙사에 들어가도 할 것도 없고 사람이 고프기도 했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는 시간은 11-1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문제는 기숙사의 통금이 12시라는 점이었다. 통금은 학생들의 건전한 생활을 위해 있는 제도였지만 오히려 나의 건강한 생활을 해쳤다. 인원점검을 하긴 하지만 매일 하는 건 아니었고 12시에서 5시까지 말 그대로 통행을 금지하는 거니까 거의 매일 밤을 새워야만 했다. 기숙사 코앞에서 마시긴 했지만 서로서로 다 죽자고 못 가게 하기도 했고 11시 50분에 벌떡 일어나 뛰쳐나온다는 건 새내기에게는 특히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 시각에는 밤새 마시고 다 같이 1교시 들어가자고 서로를 붙잡지만 결국은 3-4시가 되면 다들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고 술자리가 파했다.


갈 곳 없어진 나는 첫 차를 기다리느라 마찬가지 처지인 애들과 선배들이 작업실로 얻어 놓은 반지하 셋방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5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 1-2시간은 1분에서 그다음 1분이 시간이 멈췄다 움직이는 듯 느리게 흘렀다. 사랑하는 님이 돌아오기를 영겁의 시간 동안 기다리다 돌으로 변하는 동화의 주인공처럼 온몸이 뻐근해졌다. 살짝 졸 때도 있고 미래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후회로 채우곤 했다. 나는 내가 잘 곳을 코앞에 두고도 갈 수가 없나 아까 가방을 버리고 그냥 기숙사로 뛰어갈 걸. 애초에 오지 말고 과제나 할 걸. 벌점을 많이 받아서 기숙사에서 쫓겨나야겠다 등등. 그렇게 돌로 변하기 전에 마침내 5시가 되면 졸고 있는 동기를 발로 차서 깨우고 여전히 새벽 3시 같이 어두워 대체 해가 뜨기나 할는지 믿을 수 없는 새벽 5시의 풍경을 뒤로하고 추위에 이를 덜덜 떨며 기숙사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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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술자리가 그렇듯 외로워서 사람들 속에 섞이지만 오히려 더 외로워졌다. 그때는 그런 인생의 흔한 진리 같은 건 전혀 몰랐고 조금만 더 반복하면 이런 과정에도 익숙해지고 즐기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은 아무리 계속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밤을 많이 새운다고 새벽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에 익숙해지는 일도 없었고 시간이 빨리 가게 할 수도 없었다. 1년 가까이 하루 걸러 하루 밤을 새우면서 알게 된 건 해가 뜨기 전에 잠들지 않으면 일어나서 온몸 관절이 모래 낀 것처럼 변한다는 것뿐이었다.


다음 해 기숙사 면접에서 학교 코앞에 외삼촌이 산다고 말해서인지 성적이 형편없었기 때문인지 다행히 기숙사에서 탈락해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거기선 아무 때나 잠을 잘 수 있었지만 낮잠을 자면 거의 대부분 악몽을 꾸곤 했다. 그러다 가끔 본가의 집에서 자고 있는 꿈을 꿀 때도 있었다. 그러다 해가 질 즈음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시간 눈을 뜨면 한참 동안 그대로 누워 눈을 꿈뻑꿈뻑 깜빡이며 느리게 주변을 둘러본다. 시간도 장소도 내가 원래 있던 시간 눈을 뜨면 있을 거라 예상한 곳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그 순간에는 내가 집을 떠나서 대학을 오고 혼자 낮잠을 자다가 깬 것이 꼭 고등학생인 내가 꾸는 꿈같았다. 몸의 감각이 돌아오고 여기가 어디인지 정확히 인지하게 되면 어떤 장소가 꿈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한편으로는 내가 고등학생이 아니라서 다행이다가 또 한편으로는 살아도 살아도 낯선 고시원에 내가 누워 있는 현실이 이상했다. 그렇다면 이건 고등학생인 한 소녀가 꾸는 꿈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꿈은 악몽일까? 그럼 소녀의 악몽을 재밌는 꿈으로 바꿔줘야 할지도. 아니면 소녀는 잠에서 깨어나 대학을 가지 않으려 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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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있는 소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너무 무서운 선배가 주는 술을 버리고 싶거든 바닥에 버려야지 물 잔에 버리면 안 된다고 그랬다가는 네 동기가 그 물 잔의 술을 마시고 걸려서 벌주를 두 배나 마시게 될 거라고 아니 11시 50분에는 그냥 술집을 달려 나와 기숙사로 들어가 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그렇게 미친 듯이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너와 함께 속 시린 시간들을 지나 줄 친구들이 생길 거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외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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