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쪽 게르를 향해 가만-히 살핀다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그해 11월 나는 남몰래 정이 들어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유목민이었다. 염력을 익히는 게 아니라, 일단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은 사춘기였다.
열여덟 살의 11월에 나는 처음으로 그렇게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단순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사실 때문에 사랑했던 것이며, 사랑하지 못할까 봐 안달이 난 것이다.
사실은 지금도 나는 뭔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여전히 나는 사춘기.
열여덟 살의 4월 어느 늦은 밤. 나는 거실에서 엄마 아빠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은 고등학교 입학 후 일 년 사이에 모든 과목이 거의 4~5등급씩 떨어졌다. 엄마 아빠는 한 번도 모의고사 성적표를 본 적도 없었고 후에 수능 성적표도 제대로 본 적 없었지만 내가 하고 다니는 짓거리만 봐도 공부를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 신문을 만들어 오라는 숙제 때문에 가식적으로 가족회의를 한 이후로 한 번도 가족회의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그 날 아침 학교 가는 나에게 가족회의를 해야 하니 10시까지 집에 오라고 했다. 말이 가족회의지 일방적으로 혼나는 시간이 될 것이 뻔한데 가족회의라고 명칭이 붙은 것이 좀 웃겼다. 거의 매일 늦게 들어오던 아빠는 그날 나보다도 일찍 집에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잠옷 차림으로 거실 티비 앞에 앉았다. 티비에서는 예능 프로 같은 것에서 끊임없이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짜증나서 티비를 꺼버리고 싶기도 했고 차라리 그 소리라도 나고 있는 것이 다행인 것 같기도 했다.
잠옷 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우리의 표정은 모두 심각했다. 아빠는 요새 공부도 하지 않고 귀가 시간도 너무 늦은 것 같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1년도 넘게 남은 수능을 대비해서 지금부터 공부해야 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했다. 물론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 장판의 무늬를 연구하면서 중얼거렸다. 내 말이 끝났는데도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와 아빠는 서로에게 손짓을 하며 발언권을 양보하는 중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고 마침내 엄마가 양보를 받았는지 아빠가 말을 이었다. 특별한 내용을 말한 건 아니었다. 공부를 지금 해 놓으면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선택을 쉽게 할 수 있고 또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그런 말이었다.
엄격한 양육자의 역할은 주로 엄마가 했기 때문에 아빠와 나는 늘 친구처럼 지냈다. 티비 채널이나 외식메뉴를 가지고 싸운 적은 많아도 아빠가 나를 혼내거나 훈계를 한 적은 그때까지 한 번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말하던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나 보다.
드라마처럼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라면 그 날을 기점으로 갑자기 새사람이 되어 공부를 열심히 했겠지만 나는 단지 아빠에게 깊은 인상만을 받고 계속해서 놀았다. 이건 부모님의 시점이고 내 입장에서는 논 건 아니고 밴드 동아리 활동을 했다. 11월이 되자 밴드 활동을 하던 친구 중에 기타와 드럼을 치던 친구가 이제 그만하고 공부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머지는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 구성으로 공연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활동은 끝났고 그래서 나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대학 가서 밴드 동아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의 머리로 짐작하기로는 대학을 가면 밴드를 그만두어야 하는 환경은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을 가자마자 3월 초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때에야 나는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와 같은 동아리 활동은 할 수 없다는 걸. 제약받는 것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거기서는 선배들에게 받는 제약이 있었다. 매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동아리방에서 발성과 노래 연습을 해야 했다. 마음대로 원 없이 하고 싶었지 강제로 원 없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연습을 시켜 놓고 선배들이 다른 곡을 연습하러 가면 나는 후문으로 가서 과 선배들에게 술 한 잔과 안주 한 점을 얻어먹고 다시 동아리방으로 돌아왔다. 그 짓을 한 달하다가 관두고 나오는 길에 모든 좋았던 순간들은 똑같이 재현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걸 나도 열여덟 살에 알고 있었다면 조금 더 그 순간들을 사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