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을 빠져나오는 편지

제발 이러지 말고 잘 살아보자

by 알이




김연수 님의 청춘의 문장 중 좋은 문장을 옮기고,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같으면 ‘기왕 이렇게 된 것 열심히 적장비인원식별이나 마스터하자’고 생각했겠지만 이십 대 초반의 사고체계에는 긍정적인 회로란 없었다. 예컨대 그 회로에 ‘학점을 잘 받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긍정적인 문장이 입력되면 곧바로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응답과 함께 회로가 먹통이 된다.


즐거워하되 음란하지 말며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

웃음을 그치고 담배꽁초를 줍는데 다시 배시시 웃음이 터져 났다. ‘이러지 말자’가 아니라 ‘이르지 말자’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자꾸만 내 머릿속으로는 공자님이 김일병 이러지 말자 우리 아무리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라고 애원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무엇도 잘 못 쓴 그 금언만큼 큰 깨달음을 주지는 않았다. 삶의 길은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하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라도 상심에 이러면 안 된다. 슬프되 상심에 이러지 말자. 잘 살아보자.



군대라는 게 여러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군대를 가야 하는 사람, 가 있는 사람, 가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걱정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괴롭게 만든다. 물론 간 사람이 제일 괴롭겠지만. 얼마나 웃을 일이 없었으면 화장실 문 앞에 붙이는 문구의 오타에도 웃음이 새어 나왔을까. 나도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울어도 보고 면회도 갔던 사람으로 같이 답답하긴 했다. 대체 왜 한창 하고 싶은 게 많은 20살부터 징병 대상자가 되는 걸까. 하긴 그렇게 따지면 난데없이 끌려가기 좋은 나이가 어디 있을까. 그러니까 연예인들도 최대한 미루고 미뤄서 늦게 가는 거겠지. 어쨌거나 그땐 주변에 아는 남자애들은 모두 입영통지서를 받고 갈 예정자이거나 가 있거나 둘 중에 하나였으니까 괴로워하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너른 마음으로 군대 무용담을 들어주거나 수신자부담 전화를 부담 없이 반가워하며 받아 준 건 아니다. 생색과 구박을 번갈아 가면서 던지곤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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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떠올려 보자면 나 역시 막연한 희망만 가득 차서 나에게 닥친 안 좋은 일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희망으로 가득 찬 나에게 어찌 이런 시련이 이런 쪽으로 먼저 생각이 가 닿는 시기였다. 그때 만약 내가 군대에 가서 그런 문구를 읽었다면 그 이후에 삶을 좀 잘 살아보려 했을까. 아마 대충 읽고는 오타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즐거워할 일은 없어 음란할 기회는 없고 슬퍼서 상심에 이를 일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내 슬픔이 제일 커 보였고 영원할 것 같아서 걸핏하면 상심에 빠졌다.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술 마시고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도 해보고 길거리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걸어보고 병원 가서 수면제 처방도 받고 별 짓을 다 해보니 내려가면 올라가기도 한다는 것을 조금씩 느꼈다. 내려간 거에 비해 너무 조금 올라가서 약간 실망하긴 하지만 적어도 늘 혼자 진흙탕에 처박힌 기분은 아니었다. 같이 진흙탕에 빠져 뒹굴어 준 친구들 덕분에.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 너무 아깝다고 버나드 쇼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젊음의 시간이 귀한 줄 모르고 걸핏하면 상심에 빠져 수업도 빠지고 술독에 빠졌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건 그것대로 괴롭고 헤어지면 헤어져서 괴로워했다.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하거나 허튼짓을 할까 무서워 각자의 자취방을 멀쩡히 두고 카페에 앉아 밤새 머리를 맞대고 신소리나 해대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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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결혼하는 친구에게 아주 오랜만에 손편지를 받았다. 좋은 사람 만나서 무사히 결혼할 수 있도록 떠난 사람 때문에 울고 연락을 하네 마네 할 때 앞에 앉아서 지켜봐 주고 욕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편지를 읽으면 그 시절의 고난들이 머릿속을 지나가 슬며시 웃음이 났다. 우리에게 애원하는 공자님은 없어도 옆에서 헛짓하는 서로의 모습을 지켜봐 주고 상심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죽기 직전에 건져 잘 살 수 있게 도와줘서 조금 덜 추잡한 모습으로 상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삽질 후 제발 이러지 말자 반성하고 또 삽질을 하는 영원히 반복될 것 같던 흑역사도 이제 어쩌면? 끝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편지에 살아봐야 알 것 같다고 쓰여있긴 했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토록 절망스러웠던, 영원할 것 같았던 순간들도 일단 지나고 나면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걸. 이제야 당장 눈앞의 상심만 볼 수 있던 시절을 지나 삶의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이라는 걸 겨우 짐작이나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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