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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순 Aug 04. 2020

미로 같은 사람

모로코 - 페스

  여기는 고급자 코스다. 이런 혼돈은 오랜만에 겪는다. 이곳에서는 구글 지도가 무용지물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숙소 직원의 말로는 이곳 페스의 메디나가 세계에서 가장 큰 메디나(이슬람 전통 도시)라고 하는데 규모도 규모지만 정말 메디나에 발을 내딛는 순간 혼돈이 시작된다. 골목골목에 지키고 있는 아이들은 이제 공포의 대상이다. 아이들은 가죽 염색 작업장인 태너리Tannery로 안내해 주겠다며, 혹은 식당을 안내해 주겠다며 외국인 여행자들을 이끈다. 일단 소년을 따라나서면 그걸로 끝이다.



  처음 페스에 도착해 예약한 숙소를 찾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데, 과연 전문가는 이런 여행자를 놓치지 않는다. 한 사내가 오더니 숙소를 알려주겠다며 앞장선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서 아, 과연 페스는 미로의 도시구나, 혼자서는 절대 숙소를 찾기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골목길로 들어서서 한참을 가 숙소에 당도했다. 정말 보통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을 지나갈 무렵 사내는, 미국에서 온 뚱뚱한 남자는 이 골목을 못 지나갔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런데 숙소 앞에 당도하자 30디람을 요구한다. 신시가지에서 웃돈을 충분히 얹어주고 20분간 타고 온 택시 요금이 30디람인데 5분 거리에 있는 숙소를 안내해 주고 30디람이라니. 자기들 요금이란다. 조금 실랑이를 하다가 그냥 줬다. 나중에 페스의 지리에 조금 익숙해진 후, 알고 보니 그 사내는 큰길을 놓아두고 일부러 좁은 길로 나를 이끌었던 것이다. 큰길로 3분 거리에 있던 숙소를, 골목길로 돌아돌아 안내했던 것이다. 이로써 페스의 첫인상은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Medina, Fes


  이번에는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가 또 제대로 한 번 당했다. 평이 좋은 식당 다르 따진Dar Tajine을 찾아 나섰다. 한참 헤매고 있는데(그러나 아는 길인 척 여유롭게 걷고 있는데) 웬 청년이 길을 가다가 무심코인 듯 내게 말을 던진다.

“어디 가?”

“응, 다르 따진 레스토랑.”

“마침 잘됐네. 우리 엄마가 거기 주방에서 일하고 계시거든.”

  물론 거짓말이었다. 나는 내가 찾던 다르 따진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골목에 있는(같은 이름의 식당이 또 있을 줄이야) 다르 따진으로 바보처럼 안내된다. 식당은 후미진 골목 구석에 있었고 불은 꺼져 있었으며 메뉴는 오로지 값비싼 140디람짜리와 150디람짜리 세트 메뉴 두 종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콜라 한 병에 20디람을 받고 부가세까지 더하니 170디람이 넘는다. 그렇다고 음식이 괜찮을 리도 없잖아? 빵 두어 개와 재료비가 얼마 하지 않을 것 같은 양념들, 치킨 따진이 전부다. 물론 청년의 엄마 같은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고, 청년은 주인에게 인사하고 곧바로 사라졌다. 이렇게 페스에서의 험난한 여정은 시작되고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페스에 대한 첫인상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Medina, Fes


  메디나를 헤매면서 길을 잃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길을 잃으면 좀 어때. 메디나에서의 목적은 오로지 길을 잃는 데 있다. 그렇지만 날이 저물어 숙소로 돌아가야 할 때나 화장실이 급할 때는 좀 난감하기는 하다. 사람이 미로의 메디나를 만들었고 어느덧 미로가 사람들을 만들었다. 그래서 페스 사람들은 미로 같다. 알 것 같기도 하면서 알 수 없는.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어려운. 페스 사람이 미로 같다는 건 결코 비유나 과장이 아니다. 페스를 여행하고 나서 페스에 대해 애증의 감정이 생긴다면 당신은 이미 상급자 코스를 훌륭하게 마친 것. 그래서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땐 어서 떠나고 싶다가, 떠나려 할 땐 떠나기 싫어진다.

  알 수 없는 사람들. 테너리를 보여주겠다며 데리고 올라간 옥상에서 20디람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내는 그냥 구경만 시켜 주고 돈을 안 받기도 한다. 그 미로를 걷다 보면 여러 차례 듣게 되는 말이 꼬마들의 ‘치누아’(중국인)라는 말과 ‘closed’라는 말이다. 멀쩡하게 길이 터져 있는데 closed를 외치는 소년들. 페스의 소년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영어 단어는 closed가 아닐까. 그들이 인사처럼 closed를 외쳐댔기에 소년들 목소리만 들어도 공포스러웠다. 가끔은 closed라는 말을 듣고도 무시하고 가다가 금세 막다른 길에 당도해 당황하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동된다. 사람들이 미로 같다.



  어느 날은 메디나에 갔다가 저물녘이 되어 숙소로 돌아오려는데, 역시나 길을 못 찾고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런데 웬 청년이 나타나 자기 집도 내 숙소 근처니 데려다 주겠단다. 나는 필요 없다고, 따라오는 그를 보며 괜찮다고, 그냥 내버려두라고 했다. 청년은 지쳤는지 한참 같이 길을 걷다가는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난 가슴이 큰데 당신은 가슴이 작군요.”

내내 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

  페스는,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곳이기도 하고 계산만 하다가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을 믿었다가 상처받고 믿지 않았다가 상처받는다. 그래서 페스는, 페스 사람들은 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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