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鳥)화(花)로운 가족
집에서 블루투스 이어폰 끼는 남자
그 남자는 내 남자다. 아직까지도 회사에서 마음 맞는 한 두 명 동료와 코인 노래방에 가서 코인을 다 쓸 때까지 노래를 부르는 감성적인 그는 언젠가부터 집에서 헤드셋을 끼며(귀를 처막고) 나한테서 한 소리 듣고 싶다는 듯, 내 앞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고 촐싹대며 돌아다닌다. 그즈음부터였을까. 남들이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지 못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대명사인 호소력 짙은 내 목소리가 킹콩 같은 고함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예전에는 그나마 화장실 문이라도 닫고 울부짖었다면, 지금은 현관문 밖에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 앞 집 남자분께도 들릴 정도로 이성을 잃고 괴성을 자아낼 정도로 내 목소리는 한계 없다. 그러나 이 음성은 남의 집 앞에는 들릴지언정, 두 딸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마법의 고함 소리인데, 이 남자도 부를(부릴) 수 없는 공허한 목소리가 되고 말았다. 자기야는 물론, 최대추!!! 백만 개 느낌표가 느껴질 정도로 불러도 못 듣던 그는 내가 핸드폰을 들고 그의 웃긴 모습을 사진 찍는 순간은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고 도망간다. 불현듯 저 밉깔스러운 남자는 내 목소리를 차단하려고 방음용으로 헤드셋을 착장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소파에 기운 없이 널브러져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나, 헤드셋 한쪽을 들어 진짜 노래가 나오는지 확인을 했다. '무관심한 가슴을 가질 수 있게' 하림의 출국이라는 노래가 구슬피 끝나며, 어남선생 김수영과 탤런트 박하선 부부의 도드람 한 돈 라디오 광고가 이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 전,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 시디를 모으던 친오빠에게 아직도 음악을 듣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역시 오빠한테서 바쁜데 그런 거 들을 시간이 어딨 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집에서 청소를 하거나, 운전을 할 때 라디오부터 켜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핸드폰에 다운로드하여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 끼고 듣는 남편이 꽤 낭만적으로 보이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집에서건, 차에서건 영어로 된 오디오 북을 틀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은 물론, 라디오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남의 나라 말로 된 책마저도 아이들이 숙제를 한답시고 거실로 나오자, 집에서는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하루 배당된 책을 읽기에도 버거웠던 나는 음악이 없어도 아쉬울 게 없었지만, 남편은 탈출구를 찾아 이 방 저 방으로 방황했다. 그러나 집안일을 병행하면서 음악을 들어야 했던 그는 결국, 쿠팡에서 후기가 좋은 가성비 뛰어난 흰 헤드셋을 샀다. 때마침 젊은 아이들도 헤드셋을 끼고 돌아다니는 게 유행이라 그런지, 그런 그가 나름 힙해 보였다. 그는 아주 당당하게 시도 때도 없이 낭만으로 똘똘 뭉쳐진 자신만의 세계로 단단히 빠지고야 말았다. 세 여자를 잊을 만큼.
언젠가 건수 잡아 응징하리라 벼르던 찰나, 어떤 사소한 이유로 큰 아이와 싸우는데, 주방 한 켠에서 힙한 헤드셋을 끼고 노래까지 부르는 남편을 보자, 우리의 불똥이 그에게 튀었다. 우리 모녀는 그간에 쌓인 원한을 쏟아내었다. 꼭 그 헤드셋 써야 하냐. 당신은 남의 집 사람이냐. 난 소외감 든다. 이 집이 싫으면 나가라. 그에게 들은 답을 그대로 옮기자면 헤드셋 음질이 너무 좋아서 음악 들을 맛이 난단다. 나는 당연히 우리 집 사람이고. 앞으로 소외감 안 들게 하겠단다.
이제 그는 설거지를 할 때 작은 귓구멍에 딱 안성맞춤인 아이폰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다. 마흔 다섯 생일 선물로 스스로에게 주었다며, 아주 만족스러워한다. 재간둥이 그를 당할 재간이 내게는 없다. 물론, 내 목소리의 한계는 더 없다.
그러던 작년 연초부터 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헤드셋이나 블루투스를 끼지 않더니, 이 여자들은 치우지는 안 하고 맨날 늘어뜨리기만 한다느니, 자기는 청소만 한다느니, 전생에 무슨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여자들을 쫓아다니며 어디선가 많이 들었을 만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세 자매(세 모녀 아님)로부터 공공의 적이 된 그를 어떡하지, 나의 시름 또한 깊어졌다. 역시 이럴 땐 가장 큰 언니인 내가 나서서 그의 고충을 알아주고, 어루만져주며 수습할 수밖에.
그는 출퇴근 길에 매일 똑같은 라디오를 듣는데, 하필 남편의 아침을 책임졌던 <김태훈의 프리웨이>라는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었단다. 부들부들 나의 입술은 떨렸지만, 특별히 밤에 <김상호의 드림팝>을 거실에서 크게 들을 수 있게 허하며 다독였다. 그러나 남편은 김태훈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공허감이 커서 다른 프로그램조차 들을 맛이 안 난단다.
<오늘 아침 정지영입니다>부터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까지 91.9 mbc 라디오만 고정적으로 듣는 나는 kbs 라디오를 드는 그에게 이제 mbc로 넘어올 때라고 말했는데, 그는 계속 우울해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한동안 라디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미리 알고 있었지만 김태훈이 없는 빈자리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쓸쓸히 말하는 남편의 말에, 일면식 한 번 없는 김태훈 목소리를 이 정도로나 애정한다는 게, 나에게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내 목소리를 못 듣는다고 저러지는 않을 텐데, 좋아하지나 말았으면 싶은데 말이다. 남편을 홀린 세이렌 같은 남자, 김태훈은 내게 깊이 각인되었다.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겠기도 한 상태로 그 일은 그렇게 잊혀 갔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에 없지만, 남편은 라디오를 다시 듣고 있었다. 원래의 낭만 남편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여전히 그는 106.1, 나는 91.9 주파수 라디오를 듣는다. 아침에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게에 가기 전에 책 배달을 간다. 맑고 투명한 저음의 정지영 언니 목소리를 기대하며, 차에 뛰어오르자마자 라디오를 켠다. 그러면 깔깔 웃는 언니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먼저 터져 나온다. 나는 무슨 이야기였는지도 모르면서 언니를 따라 깔깔 웃는다. 웃음소리가 차 안에 진동하는 아침, 출발이다.
그러던 몇 달 전, 라디오에서는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파수를 확인하고 , 일일 DJ 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켤 때마다 내가 원하는 음성이 아니다. 출장을 간 지영언니 대타로 DJ를 하는 김소현 뮤지컬 배우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지영언니가 그리웠다. 오늘 돌아오나, 내일 돌아오나 아침만 되면 집착처럼 라디오를 켜게 되었다. 어제도, 오늘도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면 연인으로부터 배신당한 기분 끝에, 우울함이 전신을 훑었다. 계속 라디오를 켜지 않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왔다.
"이거 지."
그저 배시시 웃음이 난다. 굳이 라디오를 켜지 않아도 안심이 되었다.
오랜만에 지인과 약속이 있어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을 하는데 왠지 언니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운전 중이라 그런지, 기분 탓인가 생각하는데, 갑자기 언니는 마지막 날이라며 이문세의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남기고 떠나갔다. 급작스러워 믿을 수 없는데, 눈물이 앞을 가린다.
11시 약속 시간이 다 돼, 노래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지인들도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금세 눈물을 지우고 웃으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10년 넘게 나의 아침을 책임졌던 정지영 언니. 이제 라디오는 못 들을 것 같다고 출장 간 남편에게 전화로 한껏 우울하게 말했더니, 남편은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다시 괜찮아지더라며 무심상하게 말한다. 흥, 여태 김태훈 목소리 다시 듣기 하면서 그의 말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저, 그때 김태훈을 그리워하며 몹시 우울해하던 남편이 이제야 이해가 된달까.
남편이 우리 집에 잠시 들른 오늘 아침, 아이들은 늦잠을 잔다. 우리는 거실에서 볼륨을 높이고 <오늘 아침 윤상입니다>를 함께 듣는다. 고경표의 '사랑했잖아', 에코의 '마지막 사랑'이 나오는 순간, 우리는 바이브레이션을 넣으며 따라 부른다. 주옥같은 선곡이 계속 이어지자 우리는 행복한 부부가 된다. 토이의 '그럴 때마다'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남편은 두둥두둥 신 나게 흥얼거리며 청국장을 끓인다. 덩달아 나는 둠칫둠칫 리듬을 타며 글을 쓴다.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라디오는 우리 집을 음악으로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