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코텍
1962년생 막내고모 이영희와 1982년생 나 이애리는 늘 합이 잘 맞는 콤비였다. 고모 셋과 할머니 집이 한 동네에 다 있었는데, 고모든 고모부 든 누구랄 것 없이 세 사람만 모이면 누구네 집에서든 화투판이 벌어지고는 했다. 화투 담요가 펼쳐지면 방청객인 나는 막내고모 옆에 찰싹 붙어서 고모가 쥔 화투장 그림을 보며 고모가 딴 돈 중에 잔돈을 챙기고는 했는데, 고모가 나를 끌었는지, 내가 고모 곁에 앉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1988년에 막내 고모가 고모부를 만나 결혼을 하고 사촌 동생이 이듬해 겨울에 태어나 고모 가슴팍에서 낮잠 들 때에 나도 꼭 고모 옆에 누워 고모 젖내를 맡았다. 하도 꼬물대며 잠을 안 자니, 고모는 내게 신화 언니네 슈퍼에 가서 빠다 코코넛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보냈다. 그러면 나는 이층 양옥의 1층 한 켠에 자리한 고모의 단칸방에서 나와 주인집을 지나쳐 여름에 이파리가 무성한 토란밭을 옆에 끼고 걷다가 5일 장이면 소와 소를 사고파는 소 장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소전을 지나 빈 할머니 집에 들르지 않고 슈퍼로 곧장 가 각진 빠다 코코넛 상자를 집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홀라당 먹어버렸는지, 곧바로 고모에게 갖고 갔는지, 샛길로 새었는지 되풀이되었을 빠다 코코넛 기억은 늘 여기에서 멈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떼준 사람도 막내 고모부다. 낱말 카드에 장독이라는 글자를 그림만 보고 할머니가 부르던 대로 단지라고 불렀던 일화는 아직도 박장대소하며 우리 사이에 회자되고는 한다.
그때는 막내 고모와 고모부가 합심하여 나를 딸처럼 거둬 온 동네가 나를 돌보고 키우는 게 가능한 시절이었다.
2015년 7월 9일 이번에는 고모가 내 옆에 찰싹 붙었다. 찬란한 고스톱 시절을 보낸 우리는 대망의 '오스코텍'으로 이영희와 이애리 콤비는 다시 대동단결한다.
"애리 니가 옆에 딱 붙어있어야 운빨이 있데이."
남에게 빛이 되는 나의 사주는 어김없이 주식 투자에도 발휘하며 고모는 나의 CMA 통장으로 돈을 보내 나의 돈과 뭉뚱그려 내 종목에 돈을 함께 묻었다. 이 고모, 이게 이럴 건가 싶은데 고스톱으로 다져진 돈에 대한 감각은 실력만큼 중요하다. 하나의 오차가 화투판을 엎을 수 있기 때문에 고모는 매번 돈을 보내고는 (종목을) 샀느냐, 팔아도 가, 같이 팔자, 니도 사자는 식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급하면 전화를 하고는 했다.
오스코텍(039200)
오스코텍의 임상 파이프라인은 면역질환과 암질환에 대한 표적치료제로 구성되어 있다. SKI-O-703은 SYK 저해제로서 현재 류마티스관절염과 면역성 혈소판감소증을 위한 글로벌 2상 임상을 완료하였다.
비소세포성 폐암 치료제인 레이저티닙과 급성골수성 백혈병 환자, 그 외에도 각종 고형암에 대한 임상을 진행 중이다. -오스코텍 홈페이지 발췌
내가 가장 주목한 점은 골다공증, 관절염, 치주질환 신약개발, 연구, 치과용 기자재 등 의약 전문 업체로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2년 투자하겠다는 목표와 달리, 매도 시기가 빨리 왔다.
+2015년 7월 9일,
우리는(나는) 4,600원에 오스코텍 매수
+다음 날 4250원에 추가 매수
-한 달 만에 2015년 8월 10일,
나는 사부님의 지도 아래 8,488원에 전량매도
오스코텍 자회사인 제노스코는 국산 항암제 최초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원개발사다.
2015년 레이저티닙을 기술이전받아 얀센에 대규모 기술수출로 잘 알려진 유한양행은
2018년 미국 존슨앤드존슨(J&J)에 다시 기술을 수출했다. 이에 따라 J&J는 렉라자 매출의 일정액인 로열티를 오스코텍·제노스코에 지급하게 되는데, 이 기대감으로 2015년에 오스코텍 주가가 급상승한다.
나는 워런버핏과 존리의 가치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장투(장기투자) 마니아다. 평소 이슈가 있는 가치주에 기본 1년 이상 5년까지 투자하여, 50%~100% 수익을 얻는 것이 나의 장투 목표다.
한 회사의 이슈를 보고 투자한 만큼, 내가 선택한 회사를 오래 알고 싶다. 나는 코오롱 생명과학이란 회사로 소액투자를 벗어났는데, 내가 매수한 금액은 3만 원 대였지만 몇 년 뒤, 이 주식은 30만 원이 넘었다. 함께 매수했던 사부의 지인이 그 회사 주식을 최고가에 팔았는데 한 회사를 믿고 투자한다는 것은 저런 거구나 몸소 느꼈다.
그래서 장기투자는 종목 선정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장투 하는 종목을 확신하기 힘들다. 오히려 장투보다 1년을 넘기지 않고 차익을 실현하는 스윙주가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비상금을 털어 회사에 투자하는 일개 개미인 나는 워런버핏처럼 코카콜라 같은 가치 종목에 너무 먼 미래 가치를 보고 지속적으로 투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주식 대가들처럼 20-30년 투자하여 수익을 크게 보기는 힘들다. 인내심이 부족하지만 배포가 있는 나는 5년 이내에 50-100% 수익을 내는 장기투자를 선호한다.
일신상에 별일이 아직 없으니 마이너스인 종목을 팔 일이 없지만, 이제 내 나이가 당장 내일도 알 수가 없다. 병이 들 수 있고, 이사를 갈 수도 있다. 3년 전 내가 갑자기 가게를 차리는 때마냥 급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장투를 하는 개미는 추매 할 금액과 투자하지 않는 비상금이 늘 있어야 한다.
한 달 만에 100퍼센트 수익으로 오스코텍 전량을 매도하는 일 따위는 주식 투자 20년 인생에 손에 꼽는다. 안타깝게도 소액이었을 때나, 초심자의 행운일 때나 잠시 누릴 수 있는 찬스. 빛보다 빠른 찰나다.
오스코텍은 고모라는 초심자의 행운과 적절한 매도 타이밍을 제시한 벤저민 그레이엄의 늦게 사고 빨리 파는 안전마진 전략을 구사하는 사부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매매였다.
자칭 주식 수집가인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매도가 어렵다. 고장 난 손으로 한때 악명을 떨쳤던(?!) 나는 투자회사의 주식 가격이 오르면 올라서 , 본전이 오면 더 오를까 봐, 떨어지면 추매 하다가 이대로 투자 회사의 대주주가 되는 게 아닐까 염려하기에 이른다. 나 혼자였더라면 제때에 매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지금도 나는 소유한 모든 종목이 5년 이상 장투 중이다. 사부의 입김 없이 멋대로 산 한 종목은 몇 년째 거래 정지인 데다, 어쩌다 우량주가 아닌 가치주를 최대 수량으로 최장기로 수집하게 되었는데.
고스톱에서 못 먹어도 고를 외치던 고모가 말하길, 내가 너무 크게 먹으려고(수익을 내려고) 하는 욕심 때문이란다.
중국 무술에서 최고의 무예가 36계라고 했던가. 무림 고수 이호광 저서인 <<고스톱 X파일>>에는 고스톱 50 계명 중 제36 계명에 '적당히 먹고 적당히 도망가는 것도 작전이다'라는 말이 있다. 주식 수집가에다 고장 난 손인 나는 결국 이 지점 때문에 몇 년 뒤 고모와 결별을 한다.
오스코텍 이후로도 우리는 1-2 년 동안 나의 CMA 통장에서 함께 종목을 사고팔아서 수익금과 원금을 고모에게 보내는 식으로 주식 거래를 했다. 그러나 단타로 적게 먹는 기민한 투자 스타일을 선호하는 고모와 장기 투자하는 게으른 스타일을 고집하는 나 사이에는 종종 다툼이 생겼다. 꼭 고모는 돈을 함께 묻어서 같은 종목에 투자하길 바랐는데, 고모는 수익이 나면 내 주식도 함께 매도하길 바랐다. 물론 나는 매도하지 않았고, 고모 돈으로 산 주수만큼 수수료를 제하고 수익금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귀찮고 짜증스러워져서 결국 마이너스인 종목을 팔아 원금을 고모에게 돌려주고는 갈라섰다.
모 아니면 도인 고모도 결국에는 집 근처 증권사로 가서 CMA를 만들었다. 그때 엄청 젊고 예쁜 직원이 매수할 종목을 어찌나 친절하게 알려주는지 모른다고 깐보는 고모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당시에 나는 바짝 약이 올랐지만 한 편으로 진정, 다행이라고 여겼다.
고모는 최근에 챗GPT에다 지브리 스타일로 꾸며 달라며 하얀 반려견과 산책하는 고모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대구에서 남산꽃집을 하던 고모는 몇 년 전 남산시장 근처에 풀하우스라는 옷가게를 열었는데 장사가 잘 안 되어도 좋아하는 옷을 사입하고 판매하니 즐겁다고 했다. 불현듯 나를 어루는 말인가 싶었는데, 내가 책방을 열 때나 글을 쓸 때 모른 척 해준 사람이 고모였다.
오랜만에 사진으로 보는 막내고모의 희미한 미소가 편안해 보인다. 문득 이 불경기에 옷 가게를 몇 년째 꾸리며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고모를 살폈더니, 막내고모는 장사가 아닌 주식 거래로 매일 일당을 벌고 있었다. 두고두고 생각하기를 그 방법도 꽤 나쁘지 않은 이유가, 매일 반찬값 정도 되는 만큼인 1,2만 원만 버는 게 얼마나 재밌을지 상상이 되는 것이다. 원래 주식 거래는 반찬 값, 학원비 버는 재미가 제일 쏠쏠하고 보람이 크다. 고모는 테마주 위주(요즘은 정치, 탄핵 이재명주)로 장중에 플러스가 되는 종목만 매도하고, 마이너스 종목은 나중에 오를 때 팔면 하루에 플러스만 생긴다고 한다. 미심쩍어도 생각하기 나름인데, 총 자산금액은 마이너스지만 매일 수익금은 생기는 구조랄까.
나보다 주식 거래는 늦게 시작했지만, 고스톱과 부동산을 거친 고모의 연륜은 직감적으로 돈 냄새를 알아보는 데다, 시니어들만의 탄탄한 네트워크, 세계 경제와 국제 정세를 통한 주식 시장을 예견하는 바가, 돈을 묻으면 거들떠도 안 보는 나보다 한 수 위다. 나의 심간을 깐보는 듯 고모가 주식에 대해 썰을 풀면 나는 묵묵부답, 정말 아는 게 없다. 물론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도 있지만. 당장에는 재치 있는 고모만의 투자방식이 썩 재미있어 보인다.
오스코텍 매도 10년 뒤인 2025년 오늘. 오스코텍은 장중에 28,900원을 달리고 있다. 그 사이 3배가 더 올랐다는 사실이 놀랍겠지만, 하루를 사는 고모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2배까지만 먹기로 한 나도 아쉬울 게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투자 방식에 자족한다.
지금 오스코텍은 제노스코를 상장하려는 경영진과 쪼개기와 중복상장이라고 반발하는 소액주주 간에 분쟁 중이다. 지금까지 렉라자 수익은 오롯이 오스코텍 주식 가치로 반영되었지만 제노스코가 상장하면 오스코텍 가치는 분산된다. 주총에서 주주들은 김정근 대표의 재선임 건에 대해 과반 이상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과연 앞으로 오스코텍의 주가는 우상향 할 것인가. 우하향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