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2년 후 대학에 가는 계획을 잡았고 그러기 위해선 토익 점수가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영어 학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루 스무 시간을 관리실에 상주하고 있기에 남는 시간 중에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그 시간이 오전 여섯시에서 열시까지였다. 시간이 몹시 애매했다. 대전 내의 토익 학원 시간표를 다 뒤졌지만 그렇게 일찍 오픈하는 학원이 없었다. 단 한 곳만이 직장인을 위한 오전 영어 회화반을 운영했다. 어차피 언어란 다 통하는 구석이 있기 마련이라 생각하며, 아쉬운 대로 아침 영어 회화반을 등록했다. 지금 다니는 학원이다.
처음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굉장히 놀랐다. 학생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강의실 가운데에 앉아있던 사람이 들어오는 나를 보고 환히 웃었다. 약간은 잠긴 듯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그가 자기를 소개했다.
“수 맞죠? 전 낸시에요.”
사전에 공지 받은 담당 선생님 낸시였다. 난 어색하게 마주 웃으며 주변을 가리켰다.
“왜 아무도 없나요?”
“원래 여섯 명까지 계셨는데 전부 레벨업 하셨어요. 한 분 빼고요.”
“그분이 아직 안 오신 거군요.”
“바쁘신 분이라 조금 늦게 오시거나 조금 일찍 가시거나 해요.”
그는 학원 근처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 이랬다. 비교적 프리한 직업군의 영어강사와 마사지사였지만 우리의 시간도 중요했기에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기로 했다. 낸시쌤이 내 영어 이름과 직업을 묻고 내가 더듬더듬 영어로 대답하던 중에 그가 왔다.
“루이스, 하우 알 유?”
낸시쌤은 내게 한 것과 같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루이스는 반듯한 정장 차림이었다. 커피 한 잔을 쥐고 들어온 루이스가 유창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길이 좀 막혀서.”
젠틀하고 군더더기 없는 말투였다.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교재를 꺼내 준비를 했다.
“오케이, 루이스. 우린 오리엔테이션 중이었어요. 수는 테라피스트인데 새벽까지 일을 하고 퇴근 후 온 거래요. 어젠 쏘 타이어드해서 결석했고요.”
쌤이 내 소개를 끝마치자 나는 루이스를 향해 어색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루이스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굉장히 한국적인 인사였다. 낸시쌤이 수업을 시작했다.
방식은 간단했다. 예시를 읽고 서로 번갈아가며 대화하기. 문장도 아주 단순했다.
아이 니드, 히 니즈, 쉬 니즈, 위 니드.
두 아이 니드? 더즈 히 니드? 더즈 쉬 니드? 두 위 니드?
아이 돈 니드, 히 더즌 니드, 쉬 더즌 니드, 위 돈 니드.
학생이 둘뿐이어서 조금만 작게 해도 상대방의 목소리만 크게 들렸다. 한국어는 완벽하게 구사하는 멋쟁이 직장인 루이스는 홀로 진급을 하지 못 한 아픔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부끄러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아랫배에 힘을 줘서 또박또박 크게 읽었다
아이 니드. 히 니즈. 쉬 니즈. 위 니드!
뭐가 필요한진 모르겠지만 우린 글을 처음 읽는 아이처럼 책에 코를 박고 열심히 읽었다. 낸시쌤은 그런 우리를 향해 굿, 그레잇, 퍼펙트하다고 했다. 발음이 틀려도 굿이고 목소리가 작아도 그레잇, 문장이 어색해도 퍼펙트였다. 퍼펙트하다! 완벽하다는 칭찬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첫날부터 이 수업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수업이 금방 끝난다는 것도 마음에 쏙 들었다.
루이스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와 걸으며 스몰 토킹을 했다.
“수는 야간 근무를 하고 오시는 거라고요? 대단한데요!”
“루이스도 출근 전에 공부하시는 거잖아요. 그게 더 대단해요.”
“함께 수업받던 학생들이 전부 레벨업을 해서 혼자 수업받을 줄 알고 긴장했는데, 수가 와서 다행이에요.”
“둘이서 수업을 받으니 학원이 아니라 과외 받는 기분이에요.”
“그렇죠? 학생이 적으니 그런 점이 좋네요. 하하하.”
초면인 루이스지만 주 4회씩 보게 될 거란 점에서 벌써부터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서로 내일 보자고 꾸벅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는 직장으로, 나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서브웨이에 들렀다.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살 생각이었다. 청소를 하던 직원이 나를 맞이했다. 그가 물었다.
“샌드위치 고르셨나요?”
“로스트 치킨 샌드위치 15센티요. 피클이랑 할라피뇨 빼주시고 치즈는 아메리칸 치즈 넣어주세요. 소스는 필요 없고 후추만 뿌려주세요”
“쿠키랑 음료는 안 필요하세요?”
“네, 괜찮아요. 계산은 카드로 할게요. 쿠폰 좀 찍어주시고요.”
그는 주문대로 샌드위치를 만들고 계산하고 쿠폰을 찍어줬다. 아침 수업 후에 먹는 샌드위치라니, 완벽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이 정도 주문은 오늘 배운 영어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나는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아이 니드 로스트 치킨 샌드위치, 아이 돈 니드 피클 앤 할라피뇨, 아이 니드 아메리칸 치즈, 아이 돈 니드 쿠키 앤 드링스. 아이 니드 쿠폰!
펄펙트! 낸시쌤의 잠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기분이 업되어 샌드위치가 든 봉투를 붕붕 흔들며 숙소로 향했다.
2020.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