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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튤 Oct 23. 2020

좋아하는 얼굴

그 얼굴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해 왔다

내 친구 멩이는 돌멩이처럼 생겨서 멩이다. 돌멩이처럼 작고 동그란 얼굴에 광대가 유독 단단히 튀어나와 있다. 조금만 입꼬리를 올려도 엄청나게 웃는 표정이 되어버리는 그 얼굴을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해왔다.

우리는 고등학생 때 만났다. 멩이는 전학 와서 어색하고 어벙벙 해있는 내게 다가와 어색하고 어벙벙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제 와서야 필히 우린 친구가 될 운명이었다고 회상하지만, 고등학생 때 멩이는 많은 친구들 중 평범한 한 명이었다. 날렵하고 민첩하게 나를 낚아챈 애들과는 달리 멀리서 다른 친구들과 놀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정도, 급식실에 함께 가지만 바로 옆자리에 앉지는 않는 정도. 우리는 그 정도의 거리를 두고 은근하고 꾸준한 우정을 유지했다. 그랬던 멩이와 폭발적으로 가까워진 건 성인이 된 이후였다.


구미 산업공장 단지로 조기 취업을 나갔던 멩이가 청주에 놀러 왔다. 나는 독립을 핑계로 집으로부터 도망 나온 후 청주의 한 도넛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끝날 때까지 도넛을 먹으며 기다린 멩이에게 달콤하고 기름진 냄새가 배어 있었다. 우리는 3시에 늦은 점심을 먹고 성안길을 조금 걸었다. 거리에는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은 대학생 무리가 몰려다녔다. 우리는 공강 시간을 여유로이 보내는 새내기처럼 한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멩이가 대뜸 청주는 살기 좋은 곳 같다는 이야길 했다.


“어떤 면이?”

“교통이 좋아.”

“그건 그래.”

“있을 것도 다 있어. 너도 있고.”


멩이는 커다란 눈을 양옆으로 몇 번 굴리더니 권태기가 온 연인처럼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 올까 봐.”


우리 커피나 시킬까, 같은 톤이었다.


“회사는 어쩌고?”

“그만 둘까 봐.”


나는 조금 더 고민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멩이가 이사 왔다. 파란색 용달차에 한가득 짐을 싣고서 구미에서 청주로. 경상북도에서 충청북도로. 아주 명랑한 얼굴이었다.

이사를 오기 전부터 멩이는 바쁜 일정을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부지런히 구미에서 청주를 왔다 갔다 하며 집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기왕이면 나와 같은 동네에 살고 싶다고 했다. 시간이 맞지 않아 함께 다니진 못 했지만 원체 꼼꼼한 멩이는 채광 좋고 넓은 집을 저렴한 비용을 주고 구했다. 틈틈이 이력서를 돌리고 쉬는 날에 내려와 면접을 본 후 취업까지 확정 지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청주에 온 멩이의 이사가 갑작스러우면서 또 갑작스럽지만은 않은 이유였다.


연고 없는 지역에 학창 시절 친구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매일매일이 파티였다. 도덕과 윤리 수업의 지식들이 억눌러놓은 욕구가 성인이 되자마자 솟구쳤다. 열아홉과 스물이 어떻게 다른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사회는 당시의 내가 이제 ‘그런 짓’을 해도 된다 허락했다. 앞자리가 바뀌었을 뿐인데 우리는 섹스와 술, 담배 같은 ‘그런 짓’을 해도 제지 받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일주일에 일곱 번 술을 마시고 저녁 여섯시에 시작한 술자리를 새벽 여섯시에 끝냈다. 헌팅도 했는데 또래 남자애들 셋을 술로 이겨버린 적도 있다. 내 남자가 네 남자가 되는 일도 허다했다. 파이팅 넘치는 나날이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멩이의 사람들이 겹치며 만남은 더욱 풍성해졌다. 잡식성 동물처럼 이것저것 주워 먹다 보니 뭐랄까 조금 질 나쁜 사람들도 만났는데, 그때 담배를 배웠다. 그들과 라이터 하나에 모여앉아 의리 비슷한 것을 다졌다. 남의 담배를 줄줄이 태워서 혼나기도 하고 입담배를 핀다는 오지랖을 받기도 했다. 알고 보면 얄팍한 의리였다.

20대 초입의 우리에겐 대체로 우스꽝스러운 일 천지였지만 나 개인에게는 끔찍한 일도 있었다. 나는 전남친1의 자기 파괴적인 사랑 방식에 자해를 하게 된다. 두 번은 미수에 그치고 세 번째엔 성공한다. 내 왼쪽 팔에 담배빵이 있다. 다섯 번을 지졌지만 상처끼리 엉겨 붙어 세 개가 되었다. 당시 나를 좋아한다 고백한 애(=전남친2)가 검붉게 타오른 내 팔뚝을 붙잡고 화를 내다 한숨짓다 울었다. 다 큰 남자애가 우는 건 내겐 조금 곤란한 일이었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2는 외롭고 지치고 또 아픈 나를 간호해 주었다.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오길래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 애는 나를 돌보는 동시에 나를 건드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성적으로 어쩔 줄 모르는 상태였달까. 나를 앞에 두고 자위를 한다거나 사귀지도 않는데 가슴을 만진다거나 하는 것들. 물론 그건 둘이 있을 때만 일어난 일이어서 누구도 알지 못했다. 2가 나를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 나조차도 알지 못했으니까. 2랑은 3년인가를 더 만나고 헤어졌다.

2가 해온 것들을 생각해본다. 음습하기 짝이 없는 체위라든지, 씻지 않은 손으로 음부를 만진다든지, 생리 중의 섹스라든지, 콘돔 없는 섹스라든지, 질 내 사정이라든지, 엉덩이를 때리던 손버릇이라든지. 생리 중에 하면 아기 안 생겨, 질 외 사정하면 콘돔 안 껴도 돼, 콘돔 없어도 임신 안 돼, 사실 나 고환에 문제 있거든. 그런 것들. 나쁜 섹스의 파편들. 그게 폭력이었다는 것을 인지한 건 스물여덟 살의 여름이었다.


스물여덟 여름의 나는 스무 서너 살의 멩이를 떠올린다. 당시 내 곁에 있던 정신없는 인간들 중 가장 제정신이었던 사람. 그 애에게는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적확한 단어로 표현해낼 순 없었어도 더듬더듬이나마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야길 했다. 실은 이런 일이 있었어. 걔가 나한테 이랬어. 그래서, 힘들었어. 스물여덟의 멩이는 놀랐다. 그리고 욕을 했다.


“미친놈이 돌았나? 야, 난 전혀 몰랐어.”

“미친 새끼.”

“아악, 개새끼!”


2를 정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멩이가 있었으니까. 오래 걸렸지만 멩이의 욕 한마디에 2를 드디어 미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4년 만에 재개한 연애에 또 실패했다. 이제 막 전남친이 된 3은 나더러 너무 부정적이라고 했다. 너는 상처가 너무 많고 그런 네게 실수할까 봐 무섭고 널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초라해진다고도 말했다. 모두 맞는 말이라서 헤어지자는 3을 향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끝이 났다. 1과 2에 비하면 산뜻한 결말이지만 이별은 이별이라 꽤나 상심했다.

멩아, 나 3이랑 헤어졌어. 너무 슬퍼.


멩이는 칭얼거리는 내 메시지에 이렇게 대답했다.

3이 누구여.
얼마 전에 사귄다고 했던 애 있잖아…
아, 임팩트가 없나 봐. 기억도 안 나네.

한국 가면 나랑 놀아. 재미없는 애들이랑 놀지 말고.
구미에서 청주로 넘어온 것처럼 한국에서 일본으로 훌쩍 떠났던 멩이였다. 한국이 싫어서, 그 이유 하나로 일본으로 떠났던 멩이는 3년 만에 다시 귀국을 준비했다.


짜증 나.
뭐가?
밥이 맛없어. 짜고 달아.
여행 다닐 땐 맛있었다면서.
콩깍지였나 봐.
그래서 다시 한국 오는 거야?
한국하고 다를 바가 없으니까.
그래.
너도 없고.
그래.
귀국하면 쭈꾸미 먹으러 가자. 아니면 공주 칼국수.
그래. 얼른 와.


멩이를 기다리는 동안에 많은 일을 저질렀다. 신경 쓰였던 담배빵을 가리고 싶어 타투를 했다. 과거를 정화시켜달라는 의미를 담은 연꽃을 올렸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치료할 필요도 있었다. 감정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좀 더 잘 쓰고 싶어 글선생님을 모셔왔다. 그림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합하면 꽤 큰 지출이었다. 건강을 위해 쓰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저축했을 법한 목돈이었다. 그러나 만족스럽다.
곧 만날 멩이를 위해 귀국 선물도 준비했다. 마지막 지출이라 굳게 마음먹으며 투명한 유리 문을 열었다. 직원의 인사를 뒤로하고 흰 대리석 바닥을 밟고 천천히 들어섰다. 나는 직원에게 물건을 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직원이 물었다.


“친구분이 어떻게 생기셨나요?”

“얼굴은 작고 동그란데요, 광대가 좀 있는 편이에요. 웃을 때 보거스가 돼요.”

“피부색은요?”
“조금 노래요.”

“콧대는 어떤가요?”

“높지도 낮지도 않아요. 살짝 퍼진 것 같기도 해요.”


직원은 대화 후 몇 가지 물건을 꺼내왔다. 이를 하나하나 써보며 멩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특히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볼록하게 올라올 멩이의 광대와 유독 잘 어울릴 법한 한 가지를 골랐다. 그리고 같은 것을 하나 더 구입했다.


일주일 뒤에 멩이를 만나기로 했다. 그때 우정타투를 하기로 했다. 닭띠라서 병아리를 새기기로 했다. 나이 들면 주책 아니냐는 내 말에,


“그럼 그땐 털 다 빠진 늙은 닭을 그리자.”


라고 말해 나를 웃음 짓게 했다. 타투를 다 받고 저녁으로 매운 쭈꾸미가 아니면 공주 칼국수를 먹기로 했다. 소화시킬 겸 근방의 쇼핑센터를 돌기로도 했다. 그게 아니면 카페에 가서 근황 토크를 할 것이다. 그리고 분위기에 공백이 생길 때 깜짝 선물을 줄 것이다. 우린 같은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을 것이다. 예쁜 척, 귀여운 척을 하며 필터를 잔뜩 입힌 사진을 보고 우리는 또 깔깔 웃을 것이다. 그러면 광대에 밀려 멩이의 선글라스가 들썩일 것이다. 좋아하는 멩이의 얼굴을 오래토록 보고 싶지만, 느끼한 것을 싫어하는 그 애가 진저리칠 테니, 나는 그 애가 쓴 선글라스에 비친 나를 바라 보는 척 할 것이다.


선글라스에 비친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기왕이면 웃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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