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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튤 Oct 23. 2020

자전거 탄 풍경

나는 어서 빨리 겨울이 오길 바랐다

아침 운동으로 물한재 터널까지 올라가기로 한 날이었다. 높은 지대에 위치한 물한재 터널로 가는 도로는 구불구불한 커브가 많아 꽤 난이도가 있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오빠들 사이에 끼어 느리지만 열심히 페달을 밟던 중 한참 앞서있던 선두가 고개를 틀어 오른 편을 주시하는 것을 보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뭔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앞서가던 다른 사람들도 같은 곳으로 시선을 던졌고 곧 고개를 작게 저었다. 내가 그 자리를 지나가는 차례였다. 아직 양방향을 자유자재로 보기 어려워 오래 쳐다볼 수는 없었지만 그건 갓길에 버려진 인형이었다. 그곳을 지나치며 어쩐지 계속 마음이 쓰였다. 인형이 왜 여기에? 인형이 참 커다랗네, 그런데 왜 저렇게 리얼하게 생겼지? 차라리 생각을 멈추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뒤늦게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인형이 아니었다. 그건 목이 꺾인 채 죽은 고라니였다. 끔찍하게 죽은 고라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득 차자 핸들 바를 잡은 두 손이 덜덜 떨리고 페달 밟은 다리에 힘이 쏙 빠졌다. 내가 비정상적으로 비틀거리자 앞서가던 선두 오빠가 속도를 늦춰 내 곁으로 왔다. 그가 내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말을 걸었다.

“수야, 혹시 봤어?”
내가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이자 그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쟤 사실 자고 있는 거야. 고라니는 원래 저렇게 자.”
뒤에서 후미를 보던 오빠도 거들었다.

“저거 피 아니고 케첩이야. 쟤네 주식이 감자튀김이거든.”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는 오빠들을 생각해 입꼬리를 올려 웃는 척했지만, 실은 죽은 고라니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물한재 터널을 빠져나온 뒤로도 내 귓가에는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후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는 풍경 속에서 죽음을 발견하는 일이 잦아졌다. 차에 치인 족제비나 고라니, 고양이와 개처럼 눈에 띄는 죽음을 어찌어찌 피할 수 있지만 뱀이나 개구리, 쥐와 곤충처럼 타이어에 깔린 채 맞이한 납작한 죽음은 죽음인지도 모른 채 지나치기 일쑤였다. 피하거나 지나치거나. 두 가지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마주친 죽음은 기어코 내 안에 쌓여 무덤을 이뤘다. 자전거를 타며 바라본 풍경이 몹시도 잔혹했어서 나는 어서 빨리 겨울이 오길 바랐다. 동물들이 모두 잠에 들고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없는 계절이 되어야만 이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침대 위엔 반려묘 탱자가 고롱고롱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루밍이 잘 된 털은 윤기 있게 빛이 났고 분홍 콧구멍에서 건강한 숨결이 느껴졌다. 나는 작고 부드러운 탱자를 쓰다듬었다. 아, 나란 인간은 왜 이리도 치졸한가. 나는 탱자 앞에서 작게 안심하고 작게 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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