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내 의욕을 끌어올리기에 열을 올리셨고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선생님께 (上)
쓰기와 읽기에 매료되어 본격적으로 글을 배우던 참이었다. 글쓰기는 멋진 일이었지만 내가 가진 기술은 멋을 부리기에 지나치게 비루했다. 글을 배우던 세 달 동안 창작의 즐거움은 고작 첫 달뿐이었고 얼마 없는 글감을 다 태우고 난 후로는 창작의 고통이 계속되었다. 충만했던 에너지는 급속도로 방전되었다. 나는 매주 잉크가 아까운 글을 써내거나 핑계를 대며 수업을 한주 씩 미루곤 했다. 나의 글선생님은 스물여덟 살 먹은 학생을 여덟 살 아이 대하듯 어르고 달래며 글쓰기를 독려했지만 곤두박질친 의욕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보다 겨우 다섯 살 위인 선생님은 이 난감한 상황 앞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고 다음 시간에는 가위를 챙겨 오라고 말했다. 그동안 쓴 글을 재배열하여 시를 쓰는 놀이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내 의욕을 끌어올리기에 열을 올리셨고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거의 한 달간 요리조리 피해 다녔던 글 수업을 놀이라고 생각하자마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위를 사기 위해 문구점에 갔다. 쇼핑 목적과 달리 내 발은 편지지 코너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해가 뜨겁게 내리쬐는 여름이었으나 가을 시즌 디자인의 편지지가 매대에 가득했다. 지나간 감정에 관한 에세이 쓰기에 (벌써) 지쳐버린 나는 가을이 물든 편지지를 보고 새로운 유형의 글쓰기를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주 멋들어진 편지를 써야지! 매대 앞에 쭈그리고 앉아 디자인을 골랐다. ‘사랑합니다’ 같은 글씨가 튀어나오는 팝업 카드와 개와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편지지, 유난스럽게 사랑과 우정을 강조하는 편지지 사이에서 수신자와 어울리는 디자인을 고르는데 보낸 긴 시간에서 나는 산뜻한 기분을 느꼈다. 계산을 하러 사람들 틈에 끼고 나서야 현기증이 몰려왔는데 글 쓰고 싶은 기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고도로 집중해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 바보 같지만 어쩔 수 없는 행위는 집으로 가는 만원 버스에서도 계속되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산뜻함을 유지하기 위해 방을 정리하고 식물에 물을 주고 샤워를 했다. 얼굴과 온몸에 로션을 바르고 물기 없이 머리를 바짝 말리고 오일로 정돈한 뒤 편지지와 볼펜을 가지고 좌식 책상 앞에 앉았다. 수신자는 다정하고 친절한 나의 글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아는 중 가장 인텔리한 사람이다. 선생님에게 편지를 쓸 생각을 하니 가슴을 간지럽히던 바람이 멈추고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 듯 했다.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진지하게 임하는 차분함에서의 가라앉음이었다. 바깥에서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일정한 기계음과 세탁물을 옮기는 동료들의 묵직한 슬리퍼 소리가 들렸지만 나의 내면은 막힘이 없었다…
실은 편지글을 쓰며 점점 들뜨고 말아 내가 아는 모든 단어로 재간을 부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나의 다정하고 친절한 글선생님은 스물여덟 살 먹은 학생의 재롱을 보고 웃어 줄 사람이었다. 확실히 보장된 미래를 동봉하여 책상 한편에 고이 놓아두고 나는 잠시 잠을 자기로 했다.
선잠을 자면서 어렴풋이 깨달은 건 내가 오늘 가위를 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선생님께 (下)
내 일주일의 시작점은 글 수업이 있는 목요일이다. 우리는 대부분 대전역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나는 야간에 일을 하기 때문에 늘 보노보노에 나오는 너부리 같이 까칠하고 사나운 얼굴로 아침을 맞이하지만, 목요일 아침은 최대한 기분을 정돈한 뒤 카페에 나타난다. 물론 최선의 노력이 언제나 최고인 법은 아니어서 수업 중에 눈을 뜬 채 졸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고 보면 한번도 선생님을 멀쩡한 정신으로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선생님께 편지를 전해주던 날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날은 예외적으로 은행동에 있는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만남을 가진 날이었다(아마도 자리가 넓은 곳에서 ‘시 만들기 놀이’를 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선생님은 원활한 수업을 위해 음료를 시킬 때마다 우리가 위치한 자리의 음악 소리를 조금 줄여 줄 수 있는지 직원에게 요청을 하는데, 개인 카페에서는 가능한 주문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어려운 부탁이었던 것 같다. 직원이 양해를 구했지만 역시 케이팝이 쩌렁쩌렁 울리는 카페는 공부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쉽지만 스피커와 최대한 먼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음료를 마시며 일주일 간의 근황을 공유하다 잠시 대화가 끊겼을 때 나는 서둘러 가방에서 편지를 꺼냈다. 올여름을 강타할 후크송 덕분에 무드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선생님은 곧바로 기쁜 표정을 지었다. 노트북과 책에 깔려 모서리가 살짝 구겨진 편지를 건네며 난 머쓱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반성문 같은 거랄까요. 열심히 수업도 안 듣고 그래서….”
“와, 편지는 진짜 오랜만인데! 읽어봐도 돼?”
선생님은 내 끄덕임과 동시에 봉투를 봉한 스티커를 떼고 편지를 꺼냈다. 일주일 전에 써둔 편지라서 무슨 내용인지 가물가물했다. 감정이 철철 넘치는 글을 써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해졌다. 선생님이 편지를 읽느라 눈동자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나는 불안감과 머쓱함에 어쩔 줄 몰라서 식은땀이 나는 두 손을 맞잡고 어서 이 시간이 지나길 빌었다. 사락, 선생님이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어 처음과 같이 스티커를 붙여 봉했다.
“잘 썼다.”
봉한 편지는 얌전히 선생님의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가방 속을 열어 내게 보였다. 그 안엔 편지지와 봉투 몇 장이 있었다.
“사실 나도 편지지 가져왔는데. 글이 안 써질 때 편지 쓰면 좋거든. 오늘 보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 잘 썼다.”
글 자체를 잘 썼다는 것일까, 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이 잘 했다는 것일까. 궁금해하는 동안 선생님은 이 순간이 잊힐 즈음 답장을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답장을 바라고 쓴 건 아니에요. 써 주신다면 너무 좋겠지만..”
답장을 바라고 쓴 건 아니다, 그건 사실이었지만 답장을 써 주시면 너무 좋을 것이다, 이건 진심이었다. 선생님은 20대 청춘을 전부 글 쓰는데 보냈다고 하셨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정제한 선생님의 언어가 나만의 위한 편지글이 된다니, 근래 들어 이렇게 기쁜 날이 없었다.
세 시간 동안 내 글을 오리고 배열하고 다시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선생님과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쓰기의 멋짐과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인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선생님의 정갈한 언어와 나의 투박하고 소박한 언어가 교류하던 그날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내가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있기에 편지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싶다. 언제쯤 이면 받을 수 있을지 나는 실눈을 뜨고 가늠해보았다. 설마, 평생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선생님께 독촉 메시지를 남겨야겠다. 나는 선생님의 연락처를 찾기 위해 급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20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