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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튤 Sep 29. 2020

꼬마 작가와 늙은 편집자

어느 날 할아버지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고 있던 나를 조용히 불렀다

나는 혼자 만화를 보거나 돌멩이를 괜히 차고 다니는 외로운 어린이였다. 온 집 안의 관심이 아픈 언니와 어린 동생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걷고 있던 나를 조용히 불렀다. 할아버지 앞에는 작은 밥그릇이 엎어져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그것을 열어보라고 했다. 밥그릇 안에는 작은 청개구리가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뇌졸중으로 하반신이 불구가 된 지 오래였다. 내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할아버지는 기어 다녔다. 그런 할아버지가 어떻게 개구리를 잡아올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종종 개구리, 참새, 잠자리, 나비를 잡아와 나를 깜짝 놀래켰다. 나는 마법같이 벌어진 일에 호기심이 일었다


아픈 할아버지와 아프지 않은 나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는 자주 비밀스러운 회동을 가졌다. 잔디가 가장 푹신하게 자란 곳에 돗자리를 깔면 마당까지 기어 나온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는 민들레 줄기를 빨대 삼아 비눗방울 놀이를 하거나 함께 엎드려 지점토 고양이를 만들거나 갓 난 강아지의 보드라운 털을 만지며 노곤 노곤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놀이였다. 할아버지와 함께여서 가장 좋아했던 건 인형 놀이였다. 인형들끼리 파티를 하는 건 내 인형놀이의 주된 컨셉이었다. 나는 농협 마크가 새겨진 달력을 찢어 초대장에 쓸 그림을 그렸다. 글씨 칸은 늘 비워져 있었다. 일곱 살이 되도록 글을 읽고 쓸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내겐 교사 출신의 고스펙 편집자가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이 너무 느려 작업의 효율은 떨어졌지만, 글씨도 못 쓰는 꼬마 작가 혼자보단 훨씬 나았다. 차를 마시러 놀러 온 병아리에게 다음에 또 오라고 편지 쓰는 생쥐! 그것이 내가 가진 이야기의 전부였다. 나는 부지런히 곁가지로 쓸 이야기를 떠들어 댔고 할아버지는 중구난방인 내 이야기를 편지글로 만들어줬다. 모든 이야기가 끝나면 할아버지는 어눌한 발음으로 글을 읽어줬다. 병아리는 생쥐에게 차가 너무 맛있었다 답장을 하고 생쥐는 다음에 있을 파티를 위해 또 꽃을 따러 나간다… 인형놀이는 언제나 열린 결말로 끝났다. 다음번에 또 놀기에는 그 편이 좋았다.


오일장이 열리는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평소처럼 시장에 가기 위해 대문 밖을 나섰다. 나는 모로 누운 할아버지 옆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만화를 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할 일이 생각났다며 몸을 뒤집었다. 할아버지가 기어간 곳은 부엌이었다. 부엌은 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할아버지와 나는 동굴 같은 부엌으로 함께 내려갔다. 나는 무언가에 골똘한 할아버지 곁에 턱을 괴고 앉았다. 뭘 하는지 묻지 않기로 했다. 할아버지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눈이 마구 감기며 갑자기 잠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턱을 괸 채 꾸벅이던 나는 어어, 하다가 영문도 모른 채 쓰러지고 말았다. 나를 깨운 건 시장에서 돌아온 할머니의 비명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먹인 동치미 국물을 토하며 간신히 일어났다. 아이고, 살았네, 살았어. 할머니는 나를 껴안고 울었다. 나도 할머니 품에 안긴 채 엉엉 울었다. 무서워서 운 것은 아니었다. 왜 살아, 어, 왜 살아!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향해 외치는 말이 나를 울린 것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후에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뒤에서 하는 이야기로는 할아버지가 연탄난로 배기관을 뜯어고치려고 하셨다고 했다. 낡았지만 멀쩡히 기능하는 난로 배기관을 왜 만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드디어 노망이 났다고 했다. 그 뒤로 할아버지랑 함께 있으면 할머니가 질색을 하셔서 나는 할아버지와 데면데면한 척해야 했다. 나는 할머니 몰래 할아버지와 인형 놀이를 이어나갔다.

 

할아버지는 3년 후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은 집에서 치렀다. 조문객이 많이 오가는 통에 나는 슬퍼할 새가 없었다. 손님 술상을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잠든 깊은 밤에서야 나는 할아버지가 없는 외로움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발단과 전개만 있던 인형놀이와 달리 할아버지와 나 사이엔 위기, 절정, 그리고 결말이 있었다. 소중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결말을 받아들이기에 열 살은 몹시도 어린 나이였다. 스물여덟이 된 지금이라고 다를 바는 없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이야기를 한데 모아 엮고 다듬는 작업을 하는 이제야 할아버지의 편집 능력에 대해 진심으로 감탄하게 되었다는 점뿐이다. 글을 쓰는 밤이면 수많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러나 뿔뿔이 흩어지는 이야기를 붙잡아오는 일은 쉽지 않다. 이제는 혼자 해내야 하는 일이지만 나는 가끔씩 종알종알 떠들고만 싶은 충동이 든다. 내 얘길 멋진 형식으로 꿰매어주는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한 외로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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