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2002년, 대학 새내기로 입학하여 부푼 꿈을 안고 교정으로 들어선 뒤, 앞으로의 4년, 길면 5년이 내 생각하고 다르게 돌아갈 거라는 확신이 든 건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너무나 내성적이었던 나. 나 말고는 전부 이미 친구를 사귀어 삼삼오오 모여서 강의를 들으며 돌아다녔고,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 고독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아웃사이더'의 교과서적인 인물이 되었다.
당연히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공학 수학의 첫 장, 입실론 델타 이론을 도서관에서 세 시간째 들여다보았지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열람실의 무겁고 텁텁한 공기.. 부유하는 먼지와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의 무기력감에 졸음이 쏟아져 내렸다. 뭐든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때는 핫식스와 같은 에너지 드링크가 없던 시절.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는 식상하고, 콜라는 배부르고, 망고주스는 부르주아의 음료인데... 이건?
밀크티. 호기심에 뽑아 먹었던 첫맛은, 내가 그때 찾던 바로 그 맛이었다. 잠이 확 깨는 맛. 더 정확히는 토할 것 같은 맛. 욕지기가 나오는 맛을 입에 물고 알 수 없는 공학 수학을 보고 또 보았다.
그 후로 나는 졸릴 때마다 이 음료를 뽑아먹었다. 도대체 이 망할 음료는 누가 만든 것인가. 그렇게 한 달, 두 달 뽑아먹다가 언제부터인지 그 맛을 즐기게 되어버렸다.
재미있는 것은, 부단히 외로움과 싸우고 학점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첫 학기는 학사경고를 받았다..) 그 고생을 했건만, 지금 남은 것은 데자와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때의 노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만, 어찌 보면 그것들이 그렇게 인생에 치명적인 요소들은 아니었다. (공대를 졸업한 직장인들, 공학 수학 학점이 A+이건 D-이건 간에 지금 현실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악연으로 시작한 데자와는 내가 즐기는 별미가 되어 지금도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되었다.
직장인 9년 차에 새로운 팀에 배치되어 적응에 애쓰는 지금의 내 모습은 2002년의 나와 몹시 닮아있다. 쉽지 않은 건 2002년이나 2019년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데자와로부터 배운 것에 의하면, 나를 괴롭히는 이 상황(혹은 사람)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이것이 훗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기억(혹은 인간관계)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내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